[진주 사람] 장일영 문화해설사

장일영(70·사진) 문화해설사는 진주성을 두 시간가량 거닐며 이 지역에 관한 얘길 쏟아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우리 성을 최초로 지켜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 최초의 장군이 김시민이지요. 지금도 일본 전통 가극에 김시민은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그만큼 그들도 김시민에 대해 치를 떠는 거지요."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한 이들을 모시는 창렬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그 위치에 관한 얘길 꺼냈다. 창렬사는 성내에서 비교적 외지면서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구석이면서 남향 아닌 서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넓은 성안에 좋은 자리 찾으려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말이죠. 저는 이렇게 추측해 봅니다. 차라리 왜를 등지고 서쪽을 바라보게 한 것이라고 말이죠. 서쪽은 또 어딥니까? 호남입니다. '무진주 무호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주가 무너지면 호남도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호남 사람들이 진주성 전투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진주는 예로부터 유명한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풍부한 물산·기생·대나무다.

"땅이 기름집니다. 동국여지승람에 '나라에 바치는 공물 가운데 진주가 영남의 반을 차지했다'라고 나와 있어요. 기생이 빠질 수 없죠. 나라 잔치를 하면 전국 기생 가운데 평양이 제일 많이 뽑히고 그다음으로 진주였고, 또 그 다음은 대구였습니다. 대나무는 봉황을 섬기려는 마음, 선비의 기개, 홍수 조절, 생활용 같은 이유로 많이 심게 됐죠."

멋과 맛, 그리고 풍류에 관한 얘기로 옮겼다.

"일제 초기 신문기사에 '오늘은 어떤 한량이 남강에 배를 띄우고 기생들과 온종일 풍악을 울리며 진탕 놀았다'라는 내용이 자주 실렸죠. 먹을 게 많고, 사람도 많고, 기생도 많고, 그러니 풍류가 있을 수밖에 없죠. 진주가 한국가요 고향입니다.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라, 그런 지나온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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