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사업·사회 활동, 모두 잡는 멀티플레이어

진주를 대표하는 맛은 여럿 있지만, 손에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육회비빔밥, 냉면 그리고 ‘장어구이’다.

진주성 촉석문 앞 강변도로변에 줄지어 늘어선 장어거리는 진주를 대표하는 명물이다. 이들 장어거리 내력은 대략 40년 넘게 보는데, 처음에는 남강 다리 아래 야외 포장마차에서 평상을 펴놓고 시작한 것이 맛과 소문이 퍼진데서 비롯된다.

한 20여 년 전 강변도로가 개통된 이후 본격적으로 장어구이집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한 집이 하나 둘씩 생겨나 현재 장어 거리를 이루고 있다.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서 깊은 집으로 이름난 데가 바로 ‘유정장어’다. 진주에서 ‘유정장어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싶을 정도로 장어 거리 내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진주 사람들은 흔히 장어 거리를 일군 첫 번째 집으로 꼽는다.

유정장어 내부./권영란 기자

진주교에서 진주성 촉석문 쪽 강변도로를 향해 바라봤을 때, 화려한 한옥 기와가 인상적인 집이다. 멋들어진 외관에 먼저 눈을 빼앗기고, 내부로 들어서면 독특한 인테리어에 다시 한 번 눈이 휘둥그레진다. 강변도로 옆에 난 입구로 들어서면 흰 사슴 머리 박제 장식이 손님을 반긴다, 계단 양 옆 진열장 내에는 수석들이 가득 진열돼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부에 들어서면 더욱 놀라게 되는데, 벽면과 진열장에는 각종 동물 박제와 수석, 자수정, 산호들이 가득하다.

박제는 거북, 악어, 도마뱀 등 파충류는 물론, 삵, 천산갑, 멧돼지, 삵 같은 포유동물, 각종 사슴과 소뿔, 피라니아, 심지어 펭귄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박제 거북은 수십 마리에 이른다.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면 흡사 자연사 박물관에 온 듯하다. 이들은 모두 앞서 유정장어를 일군 강문식 씨가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정장어 내부./권영란 기자

시대를 앞선 자 실패를 맛보다

이제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정장어. 현재 주인인 (주)유정 곽기영 대표는 지난 2002년부터 가게를 인수해 올해로 만 10년째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곽 대표는 ‘유정장어’ 가족회사로 LG전자 평거점과 유정출판사를 운영하는 등 진주 내 능력 있는 젊은 사업가로 이름이 높다. 사업적인 부분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건강한 진주를 만드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남다른 사업 수완은 대학 졸업 이후 그리 평탄하지 않은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진주상호저축은행(옛 진주저축은행)을 첫 직장으로 잡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 일을 그만두고는 자신만이 가진 아이템으로 음식 사업에 도전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아이템은 ‘기차를 리모델링한 레스토랑’. 대대로 교육자·공무원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 장사 경험이 전무한데다, 밑천도 없어 가족들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한 번 하고자하는 것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근성 하나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곽기영 (주)유정 대표이사./권영란 기자

수명을 다한 열차 기관실과 객차를 각각 한 량씩 구입해 지난 2000년 남해고속도로 진주 인터체인지 옆 빈터에 세우고 영업을 시작했다. 열차 앞에 소나무 두 그루를 심어 운치를 더하고는 레스토랑 이름을 ‘기차와 소나무’로 지었다. 남다른 인테리어와 독특한 아이템 덕에 처음에는 꽤 많은 손님이 몰렸다. 성공에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얼마가지 못했다. 지금이야 이 같은 이색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지만,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 간 발상이었다. 또한, ‘기차와 소나무’를 모방한 레스토랑이 진주 시내에 두 곳 생기면서 입지에서도 손해를 봤다. 이렇게 2년 만에 사업을 접은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왔다.

무너진 ‘유정장어’ 다시 일으킨 저력

전통이 깃든 유서 깊은 맛으로 승승장구하던 ‘유정장어’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줄어든 손님에, 자금유동성 악화까지 겹쳐 경매에 넘어갈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를 채권단인 진주상호저축은행(대표이사 윤철지)이 떠맡아 직접 경영까지 했지만, 적자만 더해갈 뿐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윤철지 대표이사가 곽 대표를 찾았다. 유정장어를 맡아 경영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레스토랑 실패로 말미암은 아픔이 있었지만, 냉면을 통한 재기 또한 노리던 차에 받은 제안이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이미 폐업한 상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역시도 사업에 실패 한 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죠. 한 번 가족들 눈 밖에 나니 도움을 구할 길도 없었죠.”

이처럼 폐업 직전인 가게를 당장 운영하기는 어려움이 따랐다. 때문에 윤철지 대표이사로부터 리모델링 비용 5억 원 대출 투자를 약속받은 후 제안을 승낙했다. 지역에서 돈을 푸는데 인색하기로 소문난 윤철지 대표이사가 믿고 대출을 해 줬을 정도로 두터운 신뢰 속에 영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2002년 7월부터 유정장어를 맡았다. 그해 12월에는 대출을 내 명의를 전환한 후 가게를 완전 구입했다. 진주저축은행으로부터 매입비 20억, 이자 2000만 원 대출을 조건으로 했다. 이때 전 사장이 모은 다양한 박제 및 수석 등 동산까지 모두 사들였다. 곽 대표의 큰 손에 윤철지 대표이사도 의아했단다. 하루는 “뭘 믿고 그리 간이 크나”하고 물어 볼 정도였다. “뭐 별다른 이유야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나름 이름값이 높은 곳이라 잘 운영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장어구이 맛 핵심 가운데 하나인 양념을 만드는 할머니가 허리 수술을 받게 돼 가게에 나오지 못하게 된 것. 유정장어에서만 30년을 종사한 할머니는 이제 더는 일하기가 어렵다며 그만두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곽 대표 역시 이제 갓 가게를 맡은 터라 절박한 것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삼고초려 끝에 할머니를 곁에 두고서야 앞으로 영업 계획과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유정장어 내부./권영란 기자

음식 장사 기본 지키는 ‘정도 경영’

‘유정장어’는 민물장어와 바닷장어를 함께 한다. 민물장어는 부산 내 한 양식장에서, 바닷장어는 삼천포 또는 통영 근해에서 잡은 ‘실붕장어’를 쓴다.

“삼천포 쪽 장어가 더 실하고 맛이 있는 편입니다. 섬이 많은데다 조류가 빨라 활동성이 더 뛰어나 좀 더 육질이 차지고 쫀득하거든요.” 장어는 한 번에 300㎏을 들여온다. 이를 30년 넘게 장어 손질에 몰두한 전문가들이 작업을 한다. “작업하는 어머니들 손을 보면 그렇게 정확하고 빠를 수가 없습니다. 장어가 들어오는 날이면 장어 손질의 달인 중의 달인들이 모여 작업을 하는데 마치 기계를 보는 듯합니다.” 이렇게 머리와 내장, 뼈를 제거한 장어는 연탄불에 초벌구이를 한 뒤 냉동실에서 보관한다.

장어를 냉동하는 것은 장어거리가 형성된 역사적 연원에 맞닿는다. “옛날 장어거리를 지날 때면 손질한 장어를 널어 말리는 풍경이 익숙했죠. 아무래도 당시는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았고, 사천만은 멀어 대부분 죽은 장어를 손질해 썼거든요. 오죽하면 진주 사람들은 지금도 장어거리에서 장어를 잘 안 먹는다고들 해요. 죽은 장어 쓴다고….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모두 생물을 들인 후 잘 손질해 냉동보관을 하기 때문에 믿고 먹을 수 있어요.” 이 때문에 옛날에는 꾸득하게 말린 장어에서 콤콤한 냄새가 났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단다.

곽기영 (주)유정 대표이사./권영란 기자

이렇게 냉동보관 된 장어에 비법 양념을 발라 다시 한 번 연탄불에 구워내면 비로소 손님상으로 나간다. 민물장어는 ‘고추장 양념’과 ‘한방 간장 양념’이 같이, 바닷장어는 ‘고추장 양념’을 바른 것만 나온다. 이들 양념들은 장어 뼈를 2~3일 동안 고아 걸쭉해진 육수를 기본으로 만들어진다. 특히, 간장 양념은 걸쭉한 육수에 계피, 감초 등 한약재와 마늘, 생강, 물엿 등으로 만드는데, 특이하게도 간장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단다. 단지 색깔이 간장색이 나서 간장 양념으로 부른다고…….

‘유정장어’가 다시 자리를 잡고 현재 나름 잘 나가는 만큼 프랜차이즈를 통한 사업 확장에 대한 욕심이 없을까? 단호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어구이는 다른 음식과 달리 비즈니스가 통용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맛으로 승부를 내야합니다.” 장어구이는 만드는 과정이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우리집 장어구이는 장어를 손을 직접 다 손질해서 일일이 구워내야 합니다. 초벌구이에 연탄구이까지 또 굽는 기술도 중요하구요. 이렇게 손이 많이 가서 다른 데 가서 코치하고 손을 대 주기가 어렵습니다. 더욱이 재료비 50% 중에 장어에만 35%가 들어 프랜차이즈로 수익을 내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시 탁상행정에 철거 위기 놓여

하지만, 진주 전통 장어구이를 전국에 더욱 알리고 싶은 욕심은 가득하다. “진주 장어구이는 여느 육회비빔밥이나 진주냉면처럼 스토리텔링이 없습니다. 현재와 과거를 잇는 중간 다리가 될 이야기를 통한 대중화가 필요합니다.” 그는 진주 장어도 충분히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남강에 장어가 많이 잡혀 장어구이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대표적으로 안동 간고등어 사례를 진주 장어구이에 대입시킬 수 있는데 옛날에 반 건조 장어를 쓴 거나, 지금 초벌구이 후 냉동 보관하는 것이 다 보관상 어려움 때문입니다. 장어 생산지인 사천만과 진주 간 불편한 교통망 등등 이야깃거리야 찾으면 찾을수록 많아질지 모릅니다. 진주시든 장어 거리 내 업주들이든 머리를 맞대 이러한 역사적 연원과 이야기를 함께 찾아 브랜드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장어 사랑에 열심인 곽 대표는 요즘 시름이 깊다. 진주시가 진주외성 복원 및 공원화 사업을 빌미로 장어거리를 없애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리 대상에는 유정장어도 포함돼 있다. 유정장어 더 나아가 진주 장어구이 명성이야 자리를 옮겨서 이어가면 되지만, 진주시의 현실성 없는 이전 대책을 듣노라면 매일 한숨이 절로 나온다.

“먹을거리와 관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시대입니다. 요즘은 진주성 관광객들이 진주성만 보려고 오는 사람은 없거든요. 다들 진주 관광도 하고 향토 먹을거리도 즐기기 위해 오는데, 진주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향토 음식 타운 마저 없애려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다른 자리에 향토 음식 타운을 지어 분양을 하든지 해야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라는 것은 말 그대로 탁상행정을 하는 공무원 마인드라는 생각입니다.”

청소년이 건강한 진주 만들고 싶다

이러한 지역 사회 문제에 대한 합리적 생각은 오랜 동안 이어 온 사회 활동과도 맥이 닿는다. 곽 대표는 현재 진주YMCA 청소년미디어활동위원회 부위원장, 로터리 클럽, 아버지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애착을 가지고 일하는 활동은 진주YMCA 청소년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직이다.

은사인 성태기 위원장을 따라 위원회에 몸을 담은 지 6년째. 곽 대표 마음을 이끈 것은 ‘청소년 정책 포럼’이었다. “포럼 활동을 하면서 정말 청소년들이 처한 문제에 어른들이 무관심 하구나 느꼈죠. 청소년과 어른들 사이의 소통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도 느끼게 되고.”

생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지난해부터 진주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건·전·지 프로젝트’. ‘건강하고, 건전하고, 지혜로운’ 진주 청소년 육성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사회 공헌을 ‘자선 중심’에서 ‘전략적 사회 공헌’으로 전환하고, 비영리단체와 연계를 통한 기업과 사회단체가 서로 윈-윈하는 이른바 ‘공익연계 마케팅’이다. 곽 대표는 지난해 7월 노스페이스 진주점과 진주YMCA 간 사회공헌협약체결을 성사시킨데 이어, 9월에는 청소년 도시문화탐방 오리엔티어링 행사도 열었다.

   

안타까운 점은 활발한 위원회 활동에 비해 부족한 재정이다. 위원들이 모두 가난하다보니 지원금에 의존하는 구조가 활동에 제약을 미치기도 한다.

“청소년 문제에는 지역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한창 대선 정국이지만, 청소년들은 ‘표’가 안 되니 청소년 관련 정책을 이야기 하는 후보가 없지 않습니까. 이 간극을 지역 어른들이 소통하면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왕성한 활동력과 추진력으로 사업과 사회 활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나가는 멀티플레이어. 진주 지역 사회를 좀 더 밝고 건전하게 만들고자하는 곽기영 대표의 노력이 앞으로 더욱 큰 결실로 맺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곽기영 (주)유정 대표이사(왼쪽)./권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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