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행님’이 ‘갱상도 동상’을 와락 반기는

“우리 행님, 보고 짚다. 영광에 있는데….”

이 한 마디가 사단이었다. 겨울 저녁 친구들과 차 한 잔 마시다가 그 자리에 있던 한 친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들 ‘무신 행님? 갱상도 토백이가, 전라도에?’라는 뜨악한 반응이었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행님인데…. 아!”

“그래, 그럼 내일 토요일인데 다 같이 찾아가모는 되제.”

그렇게 시작된 전남 영광 여행길이었다.

전라도 어느 장소를 찾아 가는 길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훨씬 활기찼고 설렘이 있었다.

영광은 경상도 지역 사람들에게 조금 낯설고 또 발길이 드문 곳이랄 수 있다. 다만 굴비, 월출산 등을 떠올릴 뿐이다. 또 있다, 영광원자력발전소. 때마침 일행과 영광으로 가는 날은 ‘영광 원전 짝퉁 부품 사건’이 터진 직후였다. “원전 납품 업체가 지난 10년 동안 영광원전 3·4·5·6호기에 위조된 검증서를 통해 부품을 납품했다”며 라디오마다 왕왕대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며 영광으로 가고 있었다.

초행길인데 다들 조금 느슨했나보다. 차 안에서 대선을 이야기 했던가, 원전문제를 이야기 했던가 어쨌든 이야기에 열을 띠다가 영광을 지나치고 함평까지 달렸다. 그 바람에 다시 영광으로 돌아와야 했다. 생각하니 도로가 아주 좋았던 탓인가 싶다. 잘 닦여진 길에 차량도 적어 한적하니 아무 생각 없이 여유로웠던 것이다.

/ 사진 권영란 기자

아랫목에 궁뎅이 찌지며 먹는 전라도식 옻닭

영광읍 우도농악전수관. 친구가 보고 싶다는 ‘행님’은 무형문화재 제 17호 우도농악보존회 최용 회장이었다.

“밥 무거러 가쇼잉.”

인사를 나누기도 전 그의 첫마디였다. ‘밥 먹자’는 말도 좋았고 ‘~잉’하는 징헌 전라도 말투도 구수하게 들려 좋았다. 그에게 나이를 묻자 ‘나이 같은 게 뭔 소용이당가, 얼굴 보면 되제’라는 표정으로 끝내 밝히지 않았다. 다만 80년대 중반 ‘군부 독재타도’를 외치던 전남대 학생이었다니 나이를 짐작해볼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농민운동을 하다가 우도농악에 빠진 게 아닌가, 그의 이야기 속에서 또 짐작해볼 뿐이었다.

우리 일행은 우도농악전수관은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입구에서부터 최 회장의 차에 실려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면서 따라갔다.
“옻닭 좋아하쇼잉? 뜨근뜨근헌 찜질방이 기가 맥힌 곳이지라. 날도 차운데 엉뎅이를 푹 찌지고 나올 것이요잉.”

전라도 식 옻닭이라고? 옻닭이야 속이 찬 사람한테 좋다고, 또 국물의 구수함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고 찜질방에서 먹는다고? 의문이 드는 순간 차는 마을도 없는 어느 골짜기 작은 집 앞에 닿았다.

‘묵방골’. 나중에 들어보니 거기가 묵방골이라는 골짜기였다. 아랫목에 앉자마자 ‘허이구, 좋아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들어올 때 집 굴뚝에서 연기가 풀풀 나더니 군불을 지펴 방도 데우고 닭도 삶는 모양이었다. 얼었던 몸이 금세 노곤해지면서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도토리전, 장아찌류, 나물반찬들이 상 위에 차례로 나왔다. 음식은 전라도란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푸짐하고 빛깔 좋은 것들을 먼저 눈으로 먹는다. 뭔지 알 수가 없어 주인에게 연신 물어야 했다.

/ 사진 권영란 기자

“이거는 먼데예?”

“요기서 먹는 닭 육회라고 허요잉.”

생소했다. 닭도 육회로 먹는다고? 겨울초 겉절이 버무려놓은 듯이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목포 영란횟집의 민어회처럼 보였다. 젓가락으로 고기와 채소를 같이 집어 살짝 먹었더니 생각보다 연하고 부드러웠다.

“아짐, 옻술 있쇼잉? 그거 함 주보쇼잉.”

옻술이 한 잔 씩 돌고나니 이제 막 가마솥에서 건져 올린 옻닭이 떡하니 상 위에 올랐다. 기분이 잔뜩 올라 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행님, 역시 전라도 음식이네예. 옻닭 백숙도 우리 갱상도허고는 좀 다리고, 맛이 좋다예.”

무형문화재 제17호 우도농악보존회 최용 회장 / 사진 권영란 기자

“아이구, 내는 전라도 음식은 양념 맛이라고 생각허지라. 뭔 맛인 줄 모리겠다께. 내는 경상도 음식을 더 좋아허는 전라도 사내지라. 창녕 돼지국밥이며, 하이고 맛나지라. 경상도 음식은 양념이 안 발달해가지고 비릿한 맛이 나. 약간 역한 맛도 그대로 있소잉. 내는 그게 조으이. 통영엔 친구들이 있어 입맛 땡길 때마다 가는 편이지라잉.”

오랜만에, 먼 길을 달려 만난 남자들의 수다는 여자들 못지않았다.
‘경상도 동상’과 ‘전라도 행님’이 한 밥상머리에 앉아 맞잡이가 되어 동안 겨울 한나절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잿빛 바다를 휘감고 도는 백수해안도로

“추와서 벌벌 떰서도, 영광 기갱은 허고 가야지라.”

뜨근한 온돌방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최 회장이 길잡이로 자청하여 나서는 바람에 다시 길을 나섰다.

그가 우리 일행을 데려간 곳은 국도 77호선을 연결하는 군도 14호선에 위치한 백수해안도로였다. 가는 길목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선정’, ‘전국에서 9번째로 아름다운 도로’라는 팻말들이 눈에 띄었다. 길게 이어진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하기에 ‘딱’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에 맞추어 맹글었는데, 여게가 급경사지대라 바다 경치 구경하기는 좋죠잉. 저게 저기 갓봉 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서해 바다를 향해 내달리고 있고…. 캬, 기막히죠잉.”

구불구불 모퉁이를 돌 때마다 거친 바다가 보였다가 잠시 안 보였다 했다. 눈에 보이는 겨울 서해 바다는 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동해안과도 다르고 남해안과도 달랐다.

“바다 색깔이 잿빛이지라.”

“오늘 날씨 때매 바다 빛깔이 그런 거 아입니꺼?”

“아니지라. 원래 이쪽 바다는 허구헌날 저 색깔이지라. 날이 말간혀도 흐릿혀도…. 가까이 가보면 흙탕물이요잉. 지금이 만조 때라 물이 꽉 찼는디 물이 빠지모는 여게가 기냥 조게 바다 끝꺼정 개펄이라요잉.”

/ 사진 권영란 기자

영광 백수읍 백암리 석구미 마을에서 대신리를 거쳐 원불교 성지가 있는 길용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총 16.8㎞에 이르렀다. 대신리 어디 쯤이었나보다. 해안절벽으로 난 바다 데크로드와 전망대가 보였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띄엄띄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전망대에서도 더 내려가 절벽 끝에 섰다.

“저기 조게 모자바위, 저거는 거북바위, 저짝에는 고두섬이지라.”
“오늘은 잘 안 보이는데, 여게 앞바다에는 칠산도, 안마도, 송이섬… 작은 섬들이 있소잉.”

해안절벽과 만나는 해안에는 정겨운 이름의 바위들과 섬이 솟아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안은 듯한 모자바위,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막 육지로 기어오르는 거북바위 그리고 배를 타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 섬들이 있었다.

영광은 바다 낚시꾼 들이 잘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장바우는 도미, 농어, 숭어 등을 낚을 수 있는 천혜의 낚시터라 했다.

바다로 난 목책길을 따라 가까이 가보니 오매 징헌 것, 말 그대로 흙탕물이다. 바닷물 빛깔도 잿빛이다. 낯설고 신기했다. 눈 앞의 바위와 파도도 거칠었다. 파도는 마치 수백 마리 시커먼 용들이 뒤엉켜 뭍으로 뭍으로 전진해오는 것 같았다. 아찔했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데, 마침 물이 꽉 차게 들어왔단다. 물이 빠지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개펄이 펼쳐진다고.

“저기 저게가 원자력발전소지라. 저게 가보자 허몬 내는 절대 안간다요잉. 저런 데는 쳐다도 안 봐야혀.”

멀리 오른쪽 바다만 끝에, 위조서류 부품 문제로 가동이 정지된 영광원자력발전소 돔형의 지붕이 보였다. 최 회장은 “며칠 전에 원전 가동중지를 촉구하며 인구 5~6만의 영광군에서 주민 3천명이 모여들었다”며 격분을 삭히지 못했다.

/ 사진 권영란 기자

온 국민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이었다. 하물며 영광군민의 충격과 분노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지 않을까.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운영되는 원전에서 ‘짝퉁’ 부품을 하다니…. 3호기와 4호기의 제어봉 안내관에 균열이 발생했는데도 원전 당국이 그걸 은폐하려 했다카데예.”

그 후로 한참동안 ‘갱상도 동상’과 ‘전라도 행님’은 원전문제며, 정권문제를 얘기했다.

백수해안도로를 돌아 나오는 길에는 백제불교 최초도래지를 먼발치에서 보고, 원불교성지를 돌아보았다. 최 회장은 원불교성지 안 정자에 앉아 “이 곳은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라 소개했다. 요란하지 않은 정원 꾸밈새하며 낮은 산들에 둘러싸인 땅기운 탓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기운이 센’ 곳이기도 했다.

앞산 절벽 바위에는 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원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일원상, 즉 동그라미 형상을 표시해놓은 듯했다. 마치 과녁처럼 멀리서도 뚜렷이 보였다. 그건 바위의 눈 같기도 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내내 움찔움찔댔다. 내 등에 바위의 눈이 달린 것도 같았다. 귀에서는 최용 회장의 징헌 전라도 토박이말투가 옛이야기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무형문화재 제17호 우도농악보존회 최용 회장 / 사진 권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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