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시장 5] 고성공룡시장

“읍에 가모는 새 시장도 있지만 우시장도 있는데….”

“우시장? 소 시장이라쿠는 거는 전부 상설이 아이고 장날이 정해져 있을낀데.”

“그기 아이고 읍에서 위쪽에 있다꼬 우엣시장, 우시장이라쿠데예.”

“아하, 우엣장.”

“어쨋든 그 시장이 우리 어렸을 때부텀 있던 장이라예. 원래 중앙시장이었어예.”

경남 고성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는, 지금도 친정집이 고성군청 앞에 있다는 후배를 길잡이 삼아 떠난 시장 취재 길이었다.

“한 20년 넘게 폐쇄됐던 겁니더. 고성시장 취재한대서 새 시장 취재하는 줄 알았습니더. 아무래도 주민들도 새 시장을 이용하고 또 더 규모가 큰 시장이라….”

고성군청 이수열 행정과장은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새 시장도 좋겠지만 요즘 시장들이 현대화시설 하면서 다 엇비슷한데, 공룡시장은 아직 개발바람을 타지 않아 오히려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더. 규모는 작아도 고성 사람들과 역사가 보이던데예.”

“그렇기야 합니더. 고성읍성 생길 때부터 생긴 시장이라허니. 얼마전에는 전국시장박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습니더. 시장 상인들 단결력이 대단하지예.”

호루라기 불어 아침인사 나누는 곳

시장의 규모에 비해 ‘공룡’이라니, 어울리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고성군이 내세운 트레이드마크가 ‘공룡’인 걸 생각하면 바뀐 시장 이름이 이해가 되고 살갑기조차 했다.

고성공룡시장 / 사진 권영란기자

공룡시장은 고성군청 옆 담벼락을 따라 바로 붙어 있었다. 여느 지역을 가더라도 대부분의 시장은 행정기관과 그리 멀지 않다. 마을이 형성되면서 이짝저짝 걸음하기 쉽게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마을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이 여럿 생기고 또 그 시장들 중 없어지는 것도 있다.

장날도 아닌데다 추위가 들이닥친 이른 아침이라 오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문이 닫힌 가게들도 있고 문을 연 가게는 주인장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시장이었다. 읍 아래쪽 새로 생긴 고성시장이 몇 백 개의 점포를 가진 중형 시장이라면 공룡시장은 점포가 100개도 채 안 되는 아주 오래된 동네 시장이었다.

두리번대며 사진기를 들이대니 모자를 쓰고 콩나물을 다듬던 할아버지 한 분이 가까이 다가온다.

“머하는 기고? 이 추븐데…. 우리 시장 홍보해줄 끼가? 그라모 이것도 함 찍어가라.”

그렇게 말을 건네준 구구상회 여상조 아재는 딸을 시집보낸 뒤에 할머니가 다치는 바람에 가게 일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그때였나 보다. 갑자기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시장 안에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오십시오.”

웬 사람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여기저기 가게 안에서 구호를 따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상인회 김광우 총무였다.

“매일 아침 상인들끼리 인사 나누고,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소비자들에게 친절하게 하자고 시작했는데, 벌써 1년이 넘었습니더. 이리 하니까 상인들끼리 단합도 잘 되고, 아침 8시면 매일 모여 시장 쓰레기 청소부터 합니더….”

달달 긁어모아도 상인 100명이 안 되는 작은 시장이 대형마트나 현대화시설을 갖춘 다른 상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안간 힘을 쓰고 있었다.

시장 1세대들이 있어 사랑방 같아

공룡시장의 상인들은 대부분 1세대였다. 30년, 40년, 50년 가까이 이곳에서 장사를 해온 사람들이 아직도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노점이 아니라 점포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상호가 없는 집도 많았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내다보니 그냥 옆에서 자식들 이름이나 장사하는 사람 이름을 붙여 말하는 것 같았다. 식이상회, 영자상회, 옥순상회 등….

“상호가 머꼬? 이곳에서 55년 동안 장사혀도 그런 것 없다아이가. 그냥 식이상회라고 하모는 다 안다.”

건어물 파는 김정숙(80) 아지매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동동 두른 채 가게 앞에 앉아있었다.

“아지매는 추븐데 말라꼬 나와있습니꺼. 넘들은 화로라도 가지고 있더만.”

“아이다. 내도 요 궁디밑에 전기요 깔고 잇나.”

아하, 같이 웃고 말았다. 그 옆에는 한마음상회라고 간판을 달고 있었다.

   
     

“어장도 끝나고 추워서 아무 것도 안 온다아이가. 그래도 문은 열어야제. 아파서 이태동안 드러누워 있었다아이가. 아들이 2년 동안 하다가 돈도 안 벌리고 자식도 몬 챙긴다꼬 몬하겟다더라.”

친정이 진주라는 정숙희(78) 아지매는 전기난로에다 반쯤 담요를 둘러놓고 있었다.

“열이 딴 데로 새지말고 내 앞으로만 오라꼬 이래노코 잇다.”

간만에 손님이 오는가 싶더니 며느리 구덕순 씨였다.

동원상회 이윤선(82) 아지매는 김장용 스티로폼 상자를 팔고 있었다. 잔돈이 없는지 옆에 있는 각시방 화장품으로 들어가 돈을 들고 나왔다.

“우리 시어머니라예.”

각시방 천두옥(54) 아지매. 시장 안에서 ‘새파랗게’ 젊은 축이었다.

“한 집에 살고 장사도 이리 같이 허고 있어예. 요즘 시어머니하고 24시간 붙어있는 며느리는 보기드물지예(웃음).”

며느리는 화장품 팔고 시어머니는 그릇을 팔고 있었다.

시장골목 밖에 생선을 파는 정갑순(79) 아지매는 53년째 생선장사를 하고 있었다.

“내는 구암부락에 살고 잇는데, 맨날 새복 4시나 되모는 택시타고 여게 온다아이가. 택시비가 한 달에 30만원이다. 자가용 기사두고 시장에 장사하로 오는 사람이 내말고 또 잇는가 찾아바라. 업을끼다.”

“장사도 안 될낀데 그냥 집에 펜히 있제 말라꼬 나옵니꺼?”

“그래도 이리 나와야 맴이 펜허다. 집구석에 잇어모는 벵이 들끼거만. 몸 움직일 수 잇을 때 움직이고 사람만나는 기 젤인거라. 요새 우리 시장이 또 좀 잘 나간다아이가.”

고성공룡시장 / 사진 권영란기자

갑순 아지매는 그리 말해놓고 크게 웃었다.

‘작지만 이야기가 있는 시장’이 경쟁력

시장을 돌아나오는데 눈발이 날리더니 금세 흰 떡가루 같은 눈이 쏟아졌다.

“이제나 저제나 한바탕 올 것 같더니만, 끝내 오시네예.”

부식가게 아지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밖에 내놓은 손수레와 다라이에도 줄에 걸어놓은 생선들에도 눈이 채곡채곡 쌓이고 있었다.

“한 20년 넘게 폐쇄됐던 겁니더. 고성시장 취재한대서 새 시장 취재하는 줄 알았습니더. 아무래도 주민들도 새 시장을 이용하고 또 더 규모가 큰 시장이라….”

고성군청 이수열 행정과장(왼쪽)과 홍보담당 정맹훈 씨 / 사진 권영란기자

고성군청 이수열 행정과장은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새 시장도 좋겠지만 요즘 시장들이 현대화시설 하면서 다 엇비슷한데, 공룡시장은 아직 개발바람을 타지 않아 오히려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더. 규모는 작아도 고성 사람들과 역사가 보이던데예.”

“그렇기야 합니더. 고성읍성 생길 때부터 생긴 시장이라허니. 얼마전에는 전국시장박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습니더. 시장 상인들 단결력이 대단하지예.”

“우리 공룡시장은 상인들이 정말 열심인 것 같습니더. 시장이 침체되다보니 오히려 ‘힘’이 생긴 것 같습니더. 옛 시장 모습을 그대로 살려 오히려 잘 되고 있는 데가 삼랑진시장이나 함평시장입니더.”

고성군청 홍보담당 정맹훈 씨의 말이다.

내년이면 고성공룡시장도 아케이도사업에 들어간다고 했다. 섣부른 현대화시설로 어느 지역에서나 있는 그저 그런 시장보다는 고성공룡시장만의 모습을 지킬 수 있기를 잠시 생각했다. 옛것도 살리고 상인들도 불편하지 않을, 소비자는 옛 시장의 추억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시장.

현대화사업을 하면서 그 전에 이곳 시장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1세대 상인들의 기록이 더 먼저인 것 같았다.

생활형 시장이 관광형 시장을 접목하고 지역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 되려면 사라지는 이야기와 역사를 한데 모으는 작업이 절실했다. 그래야 지역이 살고 시장이 살 수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이야기가 있는 시장이 될 수 있었다. 어려운 바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고성공룡시장의 ‘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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