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맥주 시음으로 하루 열며 '명품 맥주 공장' 꿈꾼다

음식의 기본은 청결이듯, 술 만드는 작업도 청결함이 강조된다. 흰색 신발과 흰색 작업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손병종(52) 하이트진로 마산공장장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마산공장에서 지난 11월 20일 만났다. 하이트진로 상무인 손 공장장은 지난해 12월 마산품질관리팀, 생산팀, 양조팀을 총괄하다 지난 10월 27일부터 마산공장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말부터 9년가량 강원공장 생산팀에서 일하기도 했다.

손 공장장은 매일 아침을 공장에서 맥주 한잔으로 연다. 오전 8시쯤이면 어김없이 맥주 한 잔을 들이켠다. 자작은 아니다. 품질관리팀원 10여 명과 함께다. 그날 만든 맥주의 맛을 엄격하게 평가하려고 향을 잘 맡을 수 있는 와인 잔에 맥주를 따라 한 모금씩 시음한다. 어제 술 맛과 오늘 술 맛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루에 최소 여섯 번 이상 맥주를 맛본다.

무수한 맥주 맛 가운데 하이트진로만의 맛을 유지하고자 혀를 단련한다. 맥주 맛을 잘 감지하려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향을 맡고 맛을 보는 ‘관능검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다. 품질관리팀 등 맥주공장 곳곳에는 맥아, 홉 등으로 만든 맥즙 향이 풍겼다.

시음하는 손병종 하이트진로 마산공장장(좌측)./박일호 기자

식품공학 전공 살려 25년 오로지 한 길

경상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손 공장장은 지난 1987년 7월 조선맥주주식회사 마산공장 연구부로 입사했다. 입사를 하기 전 대학원이나 연구소 쪽으로 진출해 전공 공부를 더 하고자 하는 꿈도 있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상 학업을 이어가기보다 취업을 하는 쪽을 택해야 했다. 전공을 살려서 일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회사에 지금까지 25년간 일하고 있다.

회사는 하이트맥주를 거쳐, 하이트진로로 다시 바뀌었다. 그가 입사할 당시는 ‘회사의 간부가 되려면 가정을 버리고, 임원이 되려면 목숨을 버려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던 시절이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주량이 역량’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맥주 10병, 소주 1병은 거뜬히 마신다고 했다. 회사 임원들의 간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하자, 과도하게 마시진 않는다며 펄쩍 뛰었다.

손병종 하이트진로 마산공장장./박일호 기자

애초 마산공장은 1973년 한독맥주(이젠벡)가 모태다. 한독맥주는 전량 수출을 조건으로 정부 허가를 받아 생겼지만, 3년 만에 부도를 맞아 1977년 조선맥주주식회사가 인수하면서 현 하이트진로 마산공장에 이르고 있다.

그는 “이전 조선맥주주식회사가 ‘크라운’ 맥주를 생산하다 1993년 ‘하이트’를 출시했다. ‘하이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1998년 브랜드명을 사명으로 바꿨다. 브랜드명을 회사명으로 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당시는 ‘하이트 신화’라 불리며 일부 대학에서는 마케팅 성공 사례로 소개될 정도였다. 이 시기가 도약기였다. 지난해 진로와 통합하면서 ‘하이트진로’로 바뀌면서 글로벌 종합주류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한 역사적인 사건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지난해 마산공장에서 생산한 맥주를 500㎖ 병으로 모두 환산하면 2700만 상자다. 한 상자는 20병이 들어간다. 따라서, 지난해 총 5억 4000만 병을 생산한 셈이다. 마산공장에서는 하이트 병·캔·생맥주를 비롯해 일본에 수출하는 ‘라거 비어(Lager Beer)’, 싱가포르에 수출하는 ‘데스터(DESTER)’ 등을 주로 만든다. 이라크, 몽골 등 수출국만 60여 곳에 이른다. 몽골에는 ‘하이트 스트리트’까지 있다고 했다. 마산 공장에서만 생산하는 국내 최초 무알코올 맥주 음료인 ‘하이트 제로’도 최근 출시했다. 그는 마산공장이 업계 최초로 환경이념을 적용한 최신식 설비 공장을 도입한 곳으로도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생산 공정 중 나온 폐수를 정화해서 내보내는 ‘혐기성 소화조 ABC 시스템’을 설치했다고 했다.

손병종 하이트진로 마산공장장./박일호 기자

신제품 출시, 진로와 통합 시너지로 시장 침체 극복 의지

손 공장장은 맥주 시장이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했다. 하이트진로는 전국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이 45%, 소주 시장에서는 50%라고 했다. 경남에서는 맥주 시장 점유율이 80%, 소주 시장 점유율이 8%라고 덧붙였다. 경기 침체, 시장 점유율 하락, 제3, 4 맥주 회사의 출현, 수입 맥주 증가, 정부 주류 규제 강화정책, 웰빙 문화 확산에 따른 음주량 감소 등으로 주변 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답은 있다’는 좌우명을 가진 그는 신제품 출시, 진로와의 통합 시너지 효과 등으로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현재 회사에서 전국적으로 유럽풍의 ‘d’ 맥주와 ‘참이슬’ 소주 등을 비롯해 경남, 부산에서 무학의 ‘좋은데이’에 맞서기 위한 저도주 ‘쏘달’ 등의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손병종 하이트진로 마산공장장./박일호 기자

어려운 시기에 그는 그동안 보람을 느꼈던 때를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맥스’, ‘d’라는 신제품을 개발했을 때 동료와 밤을 새워가며 수많은 테스트를 하며 고생한 기억이 또렷하다. ‘맥주 진짜 맛있다’는 한 마디에 쌓인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맥주 맛을 좀 아는’ 그에게 어떤 게 맛있는 맥주인지 물었다. 그러자,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우문 중의 우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맥주 맛은 소비자 기호여서 ‘어떤 게 가장 맛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팔리는 맥주 종류만 해도 1만 개가 넘는다. 다만, 좋은 맥주는 한 잔 마셨을 때 또 마시고 싶은 ‘땡기는 맛’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마실 수 있음’, ‘음용 가능함’이라는 뜻의 ‘drinkability’가 중요하다고 했다.

하이트진로 마산공장에서 맥주를 만들 때 신경을 쓰는 부분은 ‘효모’라고 했다. 맥주는 발효주여서 주 원료인 맥아, 홉, 양조용수를 혼합해 효모 영양분이 되는 엑기스를 추출, 양조 효모를 첨가해 원하는 알코올을 생산, 숙성, 여과, 병입을 하는 공정을 거친다. 발효주의 특성상 어느 한 공정도 계획된 레시피를 벗어나면 브랜드만의 고유한 맛을 내기 어렵다. 모든 공정이 중요하지만, 브랜드에 적합하게 선택된 살아있는 생물인 ‘효모’의 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신선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 비열처리에도 노력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산공장이 타 공장보다 설립된 지는 오래됐지만, 제조, 제품 설비는 최신형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외부 여건상 판매량이 감소하는 추세여서 공장 증축 계획은 당분간 없지만, ‘하이트 제로’ 등 신규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부분적인 설비 보강 계획은 있다고 밝혔다.

손병종 하이트진로 마산공장장./박일호 기자

“지역사회 지원 활동… 책임 있는 기업 역할 다할 것”

또, 그는 마산공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역 공헌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마산공장은 인해원, 해강마을 등에 물품 지원을 꾸준히 하고 있고, 장애인 단체 등에 매년 지원을 하고 있다.

손 공장장은 “봉급은 회사가 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주는 것이다. 지역 사회에서 책임 있는 기업으로서 역할을 강화해 사회봉사활동이나 사회지원 활동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명품맥주를 만드는 명품 공장으로 거듭나고자 최선을 다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손병종 하이트진로 마산공장장./박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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