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담은 맛, 신개념 오리 철판구이

몇 해 전 창원시 의창구 상남동에 경이적인 실내장식과 쏠쏠한 이벤트로 전국적인 관심을 끈 ‘횟집’ 하나가 문을 열었다. 이름은 ‘바다루’. 매장 내부를 가로지르는 초대형 배 모양 수족관 안에 매일 새벽 통영에서 공수해 온 싱싱한 횟감들이 노니는 풍경이 매우 이색적인 집이었다.

손님들은 대형 수족관을 배경으로 자신이 먹을 고기를 직접 낚아 회를 떠먹을 수 있었다. 매일 저녁이면 낚시 이벤트가 열렸는데, 대어를 낚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경품을 덤으로 주기도 했다. 굳이 바다나 강으로 나가지 않고, 도심 한복판에서 싱싱한 횟감을 바로 낚아 먹는다는 콘셉트는 곧장 소문을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KBS <무한지대Q>와 같은 국내 방송 3사 교양·정보프로그램을 독식했다.

서원곡 ‘무학산 맑은 농장’ 신개념 오리 철판구이./박일호 기자

하지만 채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영업이 잘되지 않아 문을 닫고 가게를 내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물주가 부도마저 냈다. 임대보증금, 권리금도 한순간에 다 날아가게 될 판이었다.

이렇게 망치로 머리를 연이어 두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고통 속에 인생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지려는 순간, 다행히 지인 한 사람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사정이 딱하니 내가 사주마.” 시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약간의 돈을 가지고 나왔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성공한 맛집

서원곡 ‘무학산 맑은 농장’ 신개념 오리 철판구이./박일호 기자

마산 무학산 밑자락. 물 맑고 공기 좋아 백숙 맛있기로(?) 소문난 서원곡 계곡에 살포시 자리 잡은 ‘무학산 맑은 농장’. 이 집이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주인 이성철(38) 사장이 겪은 ‘바다루’ 실패담이다. ‘바다루’ 실패라는 정신적 기반 위에 '맑은 농장'이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이성철 사장은 이 돈을 가지고 창원 귀산동에 오리 훈제 바비큐를 전문으로 하는 ‘맑은 농장’을 차렸다. 친구네 식구들이 운영하던 횟집 건물을 임대해 마련한 것이었다. ‘맑은 농장’은 2008년 마창대교 개통과 함께 소위 ‘대박’을 쳤다.

서원곡 ‘무학산 맑은 농장’ 신개념 오리 철판구이./박일호 기자

도심을 살짝 벗어난 드라이브 코스에 자리 잡은 지리적 환경, 마창대교와 조용한 밤바다를 내려다보며 먹는 음식, 한창 참살이 음식재료로 각광받던 오리로 만든 요리까지….

환상의 삼박자가 들어맞았으니 대박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 대박 행진에는 손님을 위한 배려도 한 몫 했다. 음식 가격에 상관없이 숯불에 군고구마와 감자를 구워먹을 수 있도록 했다. 오리는 공장 가공육을 쓰지 않고, 손수 키운 생 오리를 잡아다가 직접 참숯에 훈연시켜 손님상에 냈다. 훈제 오리 연구에만 꼬박 3개월을 매달렸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또한, 메인 요리를 주문하면 된장찌개와 소면은 무료로 무제한 리필을 해줬다. 이들 궁합이 척척 맞아떨어졌으니 재기는 시간문제였다. 어느 정도 돈이 쥐어지자 임대를 접고 직접 내 가게를 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만든 것이 ‘무학산 맑은 농장’이다. ‘맑은 농장’은 도내에 모두 세 개가 있다. 창원 귀산, 마산 서원곡, 거제. 귀산은 현재 이성철 사장 이후 이를 인수받은 사람이 운영 중이고, 마산 서원곡은 이성철 사장이 직접 운영한다. 거제는 이성철 사장 밑에서 일하던 직원이 거제로 가 따로 점포를 냈다.

이들은 같은 이름을 쓰지만, 체인 형태로 묶여 있지 않다. 그래서 메뉴 또한 같지 않다. 기본적으로 오리 훈제 바비큐, 삼겹 훈제 바비큐, 오리 생고기 등은 같지만, 나머지 메뉴는 가게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해 내놓는다.

알싸한 깻잎 향 은은한 오리 주물럭 인상적

서원곡 ‘무학산 맑은 농장’ 신개념 오리 철판구이./박일호 기자

이성철 사장이 운영하는 무학산 맑은 농장이 주력하는 메뉴는 ‘산더미오리철판구이 코스’다. 여기에는 산더미오리철판구이, 오리만두, 오리탕이 곁들여진다.

메인 요리인 ‘산더미오리철판구이’는 일반적인 오리 주물럭에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신선함 가득한 갖은 채소를 더해 볶아먹는 메뉴다. 일반적인 오리주물럭에는 부추가 주로 들어가는 데 반해, 이 집은 ‘깻잎’을 기본으로 부추, 단호박,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당근, 파 등 다종다양한 채소가 입맛을 돋운다. 특히, ‘깻잎’ 특유의 향과 오리주물럭 간 향미의 조화를 꾀했다.

서원곡 ‘무학산 맑은 농장’ 신개념 오리 철판구이./박일호 기자

“주물럭 양념에 깻잎 향이 은은하게 배어들어 한층 감칠맛을 돋게 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혹시나 남아있을 오리 군내는 제거하고, 깻잎 향미를 돋워 알싸하면서도 쌉싸래하게 먹을 수 있죠.”

깻잎은 시중에서 파는 것과 다르게 이상하리만큼 향이 강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쓰는 깻잎은 모두 장모님이 손수 재배해 보내주십니다. 어머니가 딸 먹일 생각으로 정성껏 길러냈으니 맛과 향이 뛰어날 수밖에요. 하하.”

서원곡 ‘무학산 맑은 농장’ 신개념 오리 철판구이./박일호 기자

겉으로는 붉은 기운에 매운맛이 강하게 돌 것 같은 철판구이는 조리를 하고 나면 매운 기운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대신 깻잎향이 내는 독특한 감칠맛이 구미를 당긴다. 이는 2개월 동안 맛을 내고자 한 노력 끝에 완성된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먹어도 맵지 않게 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아이들이 먹는다는 생각에 화학조미료를 일체 넣지 않고 고춧가루, 마늘, 양파, 간장 등 모두 10여 가지 천연재료만으로 맛을 냈습니다. 특히, 화학조미료는 매운맛은 맵게 짠맛은 짜게 특징지어주는 역할을 해 사용하려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운맛을 원하시는 분들은 주문할 때 맵게 해달라고 따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손님 배려 돋뵈는 메뉴 선정과 재료 수급

서원곡 ‘무학산 맑은 농장’ 신개념 오리 철판구이./박일호 기자

아무리 신경을 써도 붉은 기운이 강한 칼칼한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입에서나 속에서나 은근히 불이 나기 마련이다. 이런 화기를 잡아주는 데는 ‘오리 만두’와 ‘오리탕’만한 것이 또 없다. 그 중에서도 오리탕이 눈에 띈다. 다른 집 오리탕이 흡사 잔칫날 먹는 소고깃국에 소 대신 오리가 든 형태를 띠는 데 반해, 맑은 농장이 내놓는 것은 마치 곰국처럼 뽀얀 국물이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맵싸한 메인 요리를 먹고 또 자극적인 짠맛을 더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리 뼈로만 뽀얗게 국물을 내 뒷맛이 깔끔하게 떨어지도록 맞췄습니다.”

서원곡 ‘무학산 맑은 농장’ 신개념 오리 철판구이./박일호 기자

오리 뼈는 시간 조절과 불 세기가 생명이다. 이를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뼈가 타 쉬이 국물이 검게 변하기 때문에 한시도 감시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이런 갖은 노력을 통해 우려낸 뼈 국물에 대파, 마늘, 대추, 팽이버섯을 넣어 향을 돋운다. 간은 따로 내놓는 소금으로 하면 된다. 맛이 여느 소 곰탕 못지않다. 독특하게도 첫 맛이 구수하다면 뒷맛은 고소하게 떨어진다.

이들 음식의 주요 식재료인 오리는 창원 동읍에 위치한 한 오리 전문 가공업체에서 들인다. 이성철 사장이 경남 전역에 있는 가공 업체 10곳을 돌아 선택한 곳이다. 아크릴 판 너머로 작업 공전 전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당당한 자신감에 반해 거래를 하고 있다. 오리 만두는 다른 업체에서 제공받는데, 이 역시 관련 업체 십 수 군데를 돌아 맛과 위생을 꼼꼼히 따져 납품을 받고 있다.

복합 외식 문화 공간이 목표

무학산 맑은 농장은 원래부터 ‘가든’ 형태로 지어져 넓은 대지에 건물만 4~5동이 넘는다. 여기저기 빈터도 많아 다양한 공간 활용이 필요하다. 이성철 사장은 이를 앞으로 외식과 놀이가 함께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단다. “음식을 파는 공간 아래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점도 열어 운영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작은 풀장이 하나 있는데, 이를 여름에는 풀장, 겨울에는 아이들 썰매장으로 만들어 가족단위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습니다.” 이들 가능성을 시험하고자 작년에는 극단 마산이 운영하는 인형극 팀을 초청해 맑은 농장 내에서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무학산 맑은 농장’ 입구는 귀산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마솥 장작불이 피워져 있다. 옆에는 알루미늄 포일로 정성들여 싼 감자가 한 상자 놓였다. 모두 방문객들을 위한 배려다. 음식이건 사람이건 모두를 만족하게 할 줄 아는 배려가 돋보이는 집. 손님들을 가족처럼 아끼려는 마음이 깃든 집. ‘무학산 맑은 농장’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메뉴 및 위치>

◇메뉴: <바비큐류> △모듬스페셜A 5만 원(4인 기준) △모듬스페셜B 2만 5000원(2인 기준) △오리바비큐 2만 5000원(2인) △삼겹바비큐 2만 원(2인) △등갈비 3만 5000원(2인) △소시지 1만 5000원(2인) <생고기류> △생오리스페셜 2만 2000원 △생오리 2만 원 △생오리 가슴살 2만 4000원 △생오리 목살 2만 2000원 <양념고기류> △산더미철반구이코스 대 3만 5000원, 소 2만 5000원 △숯불 닭갈비 2만 6000원 <탕, 찌개류> △오리탕 소 2만 4000원, 중 2만 4000원, 대 3만 2000원.

◇위치: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 468번지. 055-221-5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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