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재발견-남해] 거센 물살은 멸치를 몰아오고 바닷바람은 마늘을 살 찌웠다

창선교는 삼동면 지족~창선면 지족을 잇는다. 1980년 놓이면서 창선면을 외로운 섬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런데 한번은 창선교에 큰일이 있었다. 1992년 7월 30일, 교각 11개 가운데 하나가 무너지면서 상판 80m가 바다에 내려앉았다. 다리 위를 지나던 행인 한 명이 목숨까지 잃었다. 당시 사람들은 다리가 무너진 이유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냈다고 한다.

1992년 붕괴된 바 있는 창선교. 그 아래 지족해협은 물살 세기로 유명하다. /박민국 기자

그 가운데 하나가 '거센 물살'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심한 유속 때문에 애초 공사를 어설프게 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렇듯 창선교 일대 지족해협은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다. 좋지 않은 기억도 남겼지만, 사실 이곳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안겼다.

지족해협은 물살이 시속 13~15km에 달하며, 물폭도 좁다. 흐르는 물은 폭포수처럼 힘찬 기운을 내뿜는다. 이 덕에 튼실한 어류를 죽방렴(竹防簾)으로 쓸어담을 수 있다.

   

죽방렴은 대나무발 그물을 세워 물 때에 휩쓸려온 고기를 건지는 원시 어업이다. 죽방렴은 여러 지역에서 이용되지만, 〈경상도 속찬지리지(1469년)〉에는 남해군 지족해협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수심이 얕고, 물 폭이 좁아 어구 설치하기도 제격이었던 듯하다. 오늘날 이곳에는 23개 되는 죽방렴이 있다. 여러 어종이 들어오지만, 멸치가 가장 큰 수확거리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잡히면 금방 죽는다. 그래서 곧바로 삶고 말려야 한다. 죽방렴은 이 점에서 유리하다. 뜰채로 떠서 코앞에 있는 육지로 바로 옮기면 된다. 멸치 질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 먼바다 나가 잡은 놈들은 그물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훼손되기도 하고, 돌아오는 동안 질도 떨어진다.

지족해협 원시어업 죽방렴. /박민국 기자

이 지역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죽방렴 멸치 한 마리가 아이스크림값'이라고 말한다. 찾는 이가 많지만, 풍족히 내놓을 수 없어 비싸다는 얘기다. 오늘날 지족해협 일대에는 멸치음식점이 여럿 있다. 멸치 크기가 어른 손가락보다 커 구이로 나오기도 한다.

미조항은 남해 오른쪽 남단에 자리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어선들이 은빛 갈치를 싣고 속속 들어온다.

가을이 제철이라 '10월 갈치는 돼지삼겹살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가을에는 남해 앞바다에서, 겨울에는 제주도에서 들여온다.

미조항은 갈치로 유명한 곳이다. /박민국 기자

미조항에는 갈치요리를 내놓는 식당이 늘어서 있다. 특히 양파·미나리·풋고추·참기름·초고추장 같은 것을 버무리고, 막걸리식초로 비릿함을 없앤 갈치회무침은 별미로 통한다.

남해 전통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어밤젓이다. 전어 내장 가운데 완두콩만 한 타원형 담낭으로 담근 젓갈이다. 주산지인 남해읍 선소리 사람들은 "한번 맛본 이들은 그 맛을 못 잊어 남해를 다시 찾는다"며 으쓱해 한다.

또한, 육지 사람들은 미역국에 소고기를 주로 넣지만, 남해 사람들은 "미역국에 감성돔·도다리·낭태·광어 같은 생선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고 한다.

남해마늘은 해풍 덕에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박민국 기자

이곳 바다는 땅에서 나는 것에도 힘을 보탠다.

'남해 마늘' 앞에는 '해풍을 먹고 자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해풍에 나트륨이 실려와 양분 이동을 돕고, 맛·때깔을 높인다고 한다. 마늘은 추위·더위에 약한 편인데, 남해는 일교차·연교차가 비교적 적은 이점도 더해진다. 이제 벼농사보다 소득이 쏠쏠한 마늘재배에 너도나도 눈 돌리고 있다. 재배면적이 늘면서 이 지역 농업총생산액 30~40%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량은 도내 35%·전국 5%가량 된다.

남해에서는 어느 식당에 가나 밑반찬으로 시금치가 나온다. 식당 주인들은 한결같이 "별다른 양념 없이 내놓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단맛이 줄줄 흐른다. 이곳 시금치는 바닷바람 때문에 길쭉이 자리지 않고 옆으로 퍼진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뿌리·줄기·잎에 영양분이 고루 퍼져 당도가 높다고 한다. 이동면에서 시금치 하는 어떤 이는 "여기서 키운 건 모두 대도시 서울·부산 사람들이 먹는다"며 단단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재배시기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라고 하는데, 특히 1월 말 나오는 것이 가장 달다고 한다.

시금치는 겨울을 나는 동안 따듯해야 잘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포근하고 눈이 적게 내리는 남해가 제격이다. 이곳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눈이 좀 내리고 기온도 떨어지길 바라는 눈치다. 상대적으로 이곳 시금치 값이 껑충 뛰기 때문이다.

남해에는 '3자'가 있다. 유자·치자·비자다.

유자에 대해 전해지는 얘기가 있다. 장보고(張保皐·미상~846)가 당나라에서 유자를 선물 받고 돌아오다 풍랑을 만났다고 한다. 흘러들어온 곳이 남해였는데, 도포에 있던 유자가 깨져 그 씨앗이 이곳에 뿌리내렸다고 전해진다. 1970년대에는 나라에서 농가소득을 위해 유자나무를 보급했다 한다. 이 지역에서는 유자 팔아 자녀 공부시켰다 하여 '대학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치자는 1973년 이 지역 군화(郡花)로 지정됐다. 흰꽃은 조경수로 활용되며, 홍적색 열매는 공업용 천연염료 혹은 약용으로 쓰인다. 비자는 1979년 이 지역 군목(郡木)이 되었다. 달면서 떫은 열매는 기생충 없애는 약으로, 목재는 바둑판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치자·비자는 예전만큼 보기 어려워 '남해 3자'도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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