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없이 행복하라

한참을 걷고 나서야
길을 잃었음을 알았다.
다시
한참을 걷고 나서야
길을 잃은 게 아님을 알았다.

1.

가만 보면
걷는 속도도
걷는 태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표준, 그런 거 없다.
자신만의 속도와 태도로
걷다 보면
문득 목적지가 보인다.

제주올레 / 사진 이서후

그렇지 않을까.
삶에 대한 온갖
지침서와 처세술과 심리학이
난무하는 이 시절
결국은
자기의 생각과 움직임을
그 직관, 감각과 느낌을
믿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신의 삶이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날 것 같은 불안함을
무거운 배낭처럼
어깨에 걸머지고 있어도
오직 자신의 느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아침 햇살에 살짝 데워진
맑고 차가운 공기 같은
그런 감각으로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닐까.

제주올레 / 사진 이서후

2.

아까부터 저 아저씨는
올레 표시를 무시하고 걷는다.
건들건들 체계도 없는 걸음걸이.
하지만 방향 하나는 정확하다.
혹시 나는
너무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제주올레 / 사진 이서후

한참을 걷다 보면
무언가에 홀린 듯
때로 어이없이
길을 벗어나기도 한다.
길을 벗어나도
길을 잃은 건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결국
삶은
아무 표시 없는 올레길을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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