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명 : 억새
학명 : Miscanthus sinensis Andersson
분류 : 벼목 벼과
분포 :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동북 지방, 러시아 극동지방
가을하면 단풍구경이 최고지만 그에 못지않게 멋있는 구경이 또 하나 있는데 넓은 평원에 넘실대는 금빛 물결이 장관을 이루는 억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러면 머릿속에 당장 떠올리는 게 화왕산 억새이다. 한동안 갈대제로 불려 이름을 바꾸어야한다는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져 요즘은 화왕산 억새축제로 명칭이 바뀌었다.
원래 화왕산 정상에 있는 삼지(三池)에 갈대가 있어 갈대제라고 불렀다는데 현재 그곳에 갈대는 거의 없고 주변이 모두 억새로 덮여있다. 경남에는 화왕산 말고도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 여러 곳 있는데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신불산과 재약산 사자평원, 천황산과 황매산 등이다.
예전에는 신불산 간월재까지 차로 갈 수 있었으나 몇 달 전부터 산림훼손을 이유로 폐쇄되어 아래에서부터 걸어가야 하고 사자평원과 천황산은 등산을 좀 한다는 사람들이 가야할 정도로 쉬운 코스는 아니어서 발품을 팔아야만 눈이 호강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황매산은 철쭉제 때문에 길을 아주 잘 닦아놓아 꼭대기까지 차로 갈 수 있어 걷기가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좋겠지만 그 덕분에 습지는 거의 파괴되었다.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동의나물, 물매화 등 귀한 습지식물을 보러 황매산을 다녔는데 도로를 포장하면서 식물들이 없어졌다고 하길래 안다닌지 한 3년쯤 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혹시나 싶어 몇 주 전에 황매산을 다시 찾았다. 억새는 그대로인데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등산로와 인공으로 만든 연못, 공연장등이 새로이 만들어져 있었다. 또 추운 지방에만 사는(우리나라에는 중부 이북지방에서만 자람) 자작나무를 군데군데 심어놓았던데 잘 살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온도가 낮은 황매산 꼭대기라서 잘 하면 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앞에서 화왕산 얘기하다 잠깐 언급했는데 억새는 갈대와 매우 비슷하여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혼동하여 부르는 경향이 있다. 보통은 산에 살면 억새, 물가에 살면 갈대라는 건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억새 중에서 물억새는 산에 살지 않고 물가에 살기 때문에 물억새가 끼어들면 그 말이 맞지 않게 된다. 가장 확실하게 구별하는 방법은 잎으로 하는 방법인데 일단 잎 가운데에 하얀 주맥이 있으면 억새로 보면 된다. 갈대는 잎에 굵은 맥이 하나도 없이 매끈하다. 물억새도 억새이니 잎에 하얀 주맥이 있는데 억새보다 잎이 좀 좁고 부드러우며 키도 좀 작은 편이다. 그리고 억새는 꽃이 노란빛에 가까운 반면 물억새는 흰빛에 가깝다. 화왕산에 있는 건 억새고 주남저수지 둑방에 있는건 물억새다. 물론 주남저수지에는 물억새와 갈대가 함께 자라니 잎을 꼭 먼저 확인해야한다.
억새는 곤충 중에서는 메뚜기목에 속하는 녀석들이, 새 중에서는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한데 숨기에 용이하기도 하고 먹이로도 먹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억새노린재’란 녀석이 이 억새잎을 흡즙하며 산다. 메뚜기들이이야 원래 벼과 식물을 잘 먹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어찌하다 노린재가 이걸 먹고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곤충뿐만 아니라 식물 중에서도 이 억새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녀석이 있다. 이름도 이상한 ‘야고’라는 식물인데 억새에 기생하는 기생식물이다. 잎에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하니 기생하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신세이며 원래는 제주에서만 자생하였는데 가끔 서울에 있는 하늘공원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늘공원에 있는 억새가 제주에서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하니 흙속에 있는 야고 씨가 서울까지 따라간 모양이다. 하지만 따뜻한 곳에서 피는 녀석이라 서울에서 계속 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꽃은 어찌나 신기하게 생겼는지 제주도에서 만났을 때 아주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냥 주변에 아무렇게나 피는 억새 하나에도 이렇게나 많은 동식물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고리중 하나만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소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