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부자' 두 단어로는 담지 못할 비범함

의령에 발걸음 하기는 그리 녹록지 않다. 이 고장을 바로 스치는 고속도로는 없다. 기찻길도 없다. 일부러 찾는 것 아닌, 오면가면 들르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 땅은 비범함을 잃지 않는다. 바위, 절벽, 그리고 수백 년 된 나무들이 그 기운을 담고 있다.

의령 관문 한쪽에는 '정암루(鼎岩樓)'가 있다. 1935년 지역 유지들이 건립한 정자다. 1950년 6·25 때 무너진 것을 1963년 군민성금으로 다시 지었다. 1978년 '곽재우 유적정화사업' 때 한 번 더 손질했다. 인근은 곽재우 장군이 왜군 수만을 물리친 승전지다. 정암루는 이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정암루./박민국 기자

그래도 찾은 사람들은 정암루보다는 그 아래 '솥바위'에 눈길을 더 둔다. 정식 이름은 '정암'이지만, 솥뚜껑 모양을 하고 있다 해서 '솥바위'로 불린다. 남강에 유유히 떠 있는 모습이 제법 눈을 심심치 않게 한다. 단지 그것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부자(富者)' 이야기가 붙어있다.

조선말 어느 도인이 솥바위에 앉아 "이 주변에 국부(國富) 여럿이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이것이 '솥바위 반경 20리(약 8㎞) 이내에는 부가 끊기지 않는다'는 얘기로 전해졌다. 여기까지만이라도 사람들 귀를 솔깃하게 할법하다. 그런데 실제로 재벌그룹 창업주 여럿이 솥바위 반경 20리 내에서 태어났으니, 많은 이가 전설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솥바위./박민국 기자

의령 정곡면에서 삼성, 진주 지수면에서 LG·GS 전신인 금성, 함안 군북면에서 효성 창업주가 태어났다. 이들이 만든 기업명에는 '성(星)'자가 들어간다. 강물에 잠긴 솥바위 아랫부분은 사람 다리 같은 기둥 세 개가 받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실제 본 사람은 없다"는 전제를 달기는 한다. 그래도 다리 세 개가 '삼성·금성·효성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가 불쑥 들려온다. 오늘날에는 '솥바위 5대 부자'로 회자된다. 삼성 이병철 회장, 금성 구씨·허씨 일가, 효성 조홍제 회장과 더불어 의령 용덕면 출생인 삼영그룹 이종환 회장까지 입에 오른다.

'이병철 생가'는 산자락 끝에 있다. 그러다보니 산 기운이 모인다한다. 또한, 생가 안 큰 바위는 좋은 기운이 새는 것을 막는다고도 한다. '재물이 쌓이는 명당'을 떠올릴만하겠다. 생가는 알음알음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2007년부터 개방하고 있다. 이병철 회장 생가 주변에는 '부자' 간판을 내건 매점·민박집·고깃집·분식집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을 들을 수 있다.

이병철 생가./박민국 기자

의령에는 또 다른 기이한 탑이 있다. 정곡면 죽전리 호미산 절벽에서 남강을 내려다보는 '탑바위'다. 각각 너비 20m·8m인 돌판이 탑처럼 쌓여 있는 듯한 형상이다. 여기에도 전해지는 얘기는 있다. 애초에는 지금과 달리 돌 하나가 더 얹혀 있었다고 한다. 일대 마을 사람들은 전염병이 돌자 탑바위 탓으로 생각하고 이를 없애려 했다 한다. 줄을 매어 윗돌을 끌어내렸는데, 누군가가 깔려 죽었으니 나머지는 건드리지 못했을 터이다. 다행히 전염병은 사라졌고, 반쪽 바위탑이 지금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전설이다. 의령에서 곽재우 장군 숨결 미치지 않은 곳 없다 하겠는데, 이곳 역시 전승지 가운데 하나다.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벼랑 끝에 자리해 선뜻 다가서기는 쉽지 않다.

탑바위./박민국 기자

이 고장 서북쪽 궁류면에는 '봉황대(鳳凰臺)'라는 기암절벽이 있다. '신선이 봉황을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는 귀에 들어올 틈이 없다. 점잖으면서도 위엄찬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부족함 없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한여름 이곳을 찾으면 바위 사이사이서 부는 차가운 기운에 몸은 금세 식는다. 봉황대 바로 옆에는 세계 최대 석굴법당인 '일붕사'가 자리하며 특별함을 더한다.

부림면 신반리에 자리한 '병풍암(屛風巖)'은 암벽등반 장소로 소문나며 '바위꾼들' 발걸음을 잇게 한다. 사실 의령 곳곳에서는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암벽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의령은 '마땅히 편안한 땅'이라는 지명 뜻처럼 오래되고 생활에 도움되는 나무들이 많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목만 4개다. 600년 된 세간리 은행나무, 550년 된 세간리 현고수(느티나무), 450년 된 백곡리 감나무, 300년 된 성황리 소나무다.

이 가운데 세간리 현고수는 곽재우 생가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현고수(懸鼓樹)'는 '북을 매단 나무'라는 뜻을 품고 있다. 1592년 왜적이 침입하자 곽재우 장군은 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의병 훈련 때 두드렸다고 한다. 높이 20m·둘레 8.4m인 느티나무는 지난 세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며 보호 말뚝에 의지하고 있다.

의령이 '한지'로 유명했던 것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물을 얻을 수 있었거니와, 질 좋은 '닥나무' 덕이다. 닥나무는 줄기를 꺾으면 '딱'하는 소리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산기슭 볕 잘 드는 곳에서 자라는데, 의령 신반지역은 한반도 땅에서 생육 조건이 가장 알맞다고 알려져 있다. 한때 신반지역에서는 200여 가구가 한지 생산을 했다. 질 좋은 종이를 구하기 위해 이곳 오일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낙서면에는 근대문화유산에 지정된 '오운마을 옛 담장'이 있다. 낮은 돌담 위에 탱자나무가 울타리를 이루며 부족함 없는 멋을 자아낸다.

현고수. /박민국 기자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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