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의 깊은 맛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맛집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경창상가. 이 건물은 옛 창원에서 가장 오래된 상가로 손꼽힌다. 지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창원 일대가 본격적으로 신도시로 개발될 무렵 지어졌으니 역사만 무려 30여 년에 달한다. 덕분에 옛 창원시 역사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건물로도 통한다.

내부에는 낡은 건물만큼이나 오래돼 보이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이들 식당 중에는 상가가 처음 생길 때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집도 더러 있다.

상가 1층 뒷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있는 육회전문점 ‘마산집’도 이 가운데 하나다. 이미 마산·창원 지역 일대에서는 오랜 전통과 변함없는 맛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보기만 해도 오랜 세월의 때가 켜켜이 묻은 철제 미닫이문이다. 문에는 ‘83’으로 시작하는 두 자리 수 국번이 선명하다. 마산·창원 일대에 세 자리 수 국번이 보급된 것이 90년대 초니 이것만 봐도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어머니에서 아들·며느리로 대를 이은 맛집

시어머니로부터 맛을 이어받은 며느리 홍순임 씨./김구연 기자
‘마산집’은 대를 이은 맛집이다. 현재 주인인 서창규 사장은 8년 전 어머니 이종남(71) 여사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았다. 어머니가 이전에 있던 가게를 맡아 꾸려 온 것이 1984년이니 햇수로 만 31년이 됐다. 어머니 손맛은 며느리 홍순임(44) 씨가 물려받았다.

이름은 이종남 여사 친정이 마산이어서 ‘마산집’이 됐다는 설과, 원래 이름이 ‘마산집’이던 가게를 이종남 여사가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왔다는 설이 있다. 전자는 이종남 여사 설명이고, 후자는 아들 서창규 사장 설명인데, 세월이 오래된 만큼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마땅치 않다.

분명한 건 이 집 메뉴는 육회비빔밥, 소고기 국밥, 양 수육, 육회 단 네 가지로 31년 동안 변함없다는 점이다. 모두 소를 이용한 음식이다. 메뉴가 많으면 이 맛 저 맛 섞여 웅숭깊은 맛을 낼 수 없다는 어머니 이종남 여사 뜻이 담겼다.

이 집 모든 음식의 주재료가 되는 소고기는 김해 주촌 도축장에서 들여온다. 육회에 쓰이는 고기는 한우로 매일 아침 하루 쓸 분량만 들여오고, 비빔밥에 쓸 고기는 육우로 일주일에 한 번씩 사들인다. 야채류는 어머니 때부터 거래를 해 오던 마산어시장 도매상으로부터 들여온다.

이밖에 양념에 쓰이는 조선간장과 고추장은 직접 담근 것만 사용한다. 고추장 만들 때 쓰는 고춧가루와 참기름은 어머니 때부터 30여 년 동안 거래를 해 온 상남시장 내 방앗간 것만 받아쓴다. 오랜 신뢰로 맺어진 재료 수급 망이 인상적이다.

전통 마산비빔밥 명맥을 잇는다?

마산집의 주 메뉴 중 하나인 육회비빔밥./김구연 기자

맛을 보고자 네 가지 음식을 모두 주문했다. ‘육회비빔밥’은 양은냄비에 담겨 나온다. 특별한 이유 없이 배달할 때 손잡기 편하고 손님들도 비비기 편해서 담아내기 시작했는데, 그게 이 집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렸다.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에 선홍빛 육회와 각종 나물이 그득 올려져 있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나물은 콩나물, 고사리, 도라지가 기본이다. 여기에 계절별로 여름에는 단 배추, 봄에는 유채나물, 겨울에는 겨울초가 곁들여진다. 서창규 사장은 이들 가운데 봄에 유채나물을 넣은 비빔밥이 으뜸이라고 치켜세운다.

시어머니로부터 맛을 이어받은 며느리 홍순임 씨./김구연 기자

“아무래도 봄에 유채꽃이 피기 때문에 이 시기에 채취한 유채나물은 유채가 가진 은은한 향이 짙게 풍기어 입맛을 돋웁니다. 향은 밥에 식용 생 꽃잎을 넣어 먹는다는 ‘꽃밥’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다른 계절 나물도 다 특징이 있습니다. 겨울철 쌉싸래한 겨울초는 알싸한 맛이 몸에 열기를 돌게 해주고, 여름 단배추는 물이 많이 나와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내기 때문에 주로 씁니다.”

나물은 하나같이 심심한 것이 자극적이지 않다. 소금을 전혀 쓰지 않고, 직접 담근 조선간장과 참기름만으로 조물조물 무쳐내기 때문이다. 싱겁다 싶으면 나물을 조금 더 얹어 먹으면 된다.

특이한 것은 시뻘건 고추장이 한 큰 술 가득 올려졌음에도 비벼 먹었을 때 전혀 맵거나 짜지 않다는 점이다. 도리어 나물, 육회와 어울리면서 전체적으로 고소한 향미를 짙고 묵직하게 자아낸다. 비빔밥에 든 육회는 날고기를 못 먹는 이들을 위해 익혀서도 내놓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비빔밥에 따라나오는 탕국도 인상적이다. 개조개, 두부, 조선간장으로만 맛을 내는데, 별다른 양념이 들지 않아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낸다.

‘마산집’ 비빔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뜯어보면 ‘전통 마산비빔밥’이 가진 특징을 고스란히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음식연구가 김영복 교수는 지난 2007년 <경남도민일보>에 한 기고문에서 “마산비빔밥은 물 좋은 마산 장맛에 미더덕과 조개가 어우러진 육즙으로 무친 나물을 넣고 비벼 감칠맛이 특히 뛰어나다. 먹어 본 사람이 아니고는 그 맛을 모른다”고 적었다.

이를 바탕으로 ‘마산집’ 비빔밥을 반추하면 미더덕과 조개가 어우러진 육즙으로 나물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마산에서 나는 해산물을 쓴 탕국으로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마산집’이 ‘전통 마산비빔밥’ 명맥을 잇는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옛 조리법을 어렴풋이나마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싼 부위에도 가격 부담 없어

마산진 주 메뉴의 하나인 육회./김구연 기자

다음은 육회. ‘육회’는 도축 및 도체 분할 후 바로 냉동한 ‘우둔살’을 사용한다. 우둔살을 직접 담은 조선간장과 상남시장 참기름만으로 조물조물 무쳐낸다. 입에 넣자마자 마치 셔벗을 먹은 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입 안에 녹아내린 고기는 부드러운 질감에 몇 번 씹지 않아도 어느새 목을 타고 넘어간다. 신선한 재료 덕에 육회 자체에서 나는 특유의 달콤함이 짙게 배어난다.

한데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향이 강한 깨소금이 너무 많이 뿌려져 신선한 원재료가 가진 맛을 살짝 가린다는 점이다. 육회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으면 깨소금을 넣지 않거나 적게 뿌려 달라고 주문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마산집 주 메뉴의 하나인 양 수육./김구연 기자

‘양 수육’에는 신선한 양과 선지 그리고 아롱사태가 함께 나온다. 부드럽게 잘 삶아진 양은 질기지 않아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어 좋다. 양념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그냥 먹어도 고소한 맛이 산다. 흔히 수육으로 쓰는 부위 중 맛도 가격도 으뜸으로 치는 ‘아롱사태’도 큼직하게 썰어 넣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하다. 이렇게 비싼 부위들을 싼 가격에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더불어 ‘소 양’을 삶아 낸 물을 육수로 쓰는 ‘소고기국밥’도 큼지막한 아롱사태와 선지가 들어 있어 눈 맛과 입맛을 돋운다. 비빔밥과 마찬가지로 양은냄비에 담겨 나오는데 푸짐한 양에 한 그릇만 비워도 속이 든든해 일상의 힘이 된다. 하지만, 맛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렵다.

마산집의 상차림./김구연 기자

이는 ‘소 양’이 무미(無味)한 탓으로 보인다. 육수를 낼 때 정육을 쓰지 않았으니 여느 국밥처럼 소고깃국이 가진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진한 맛이 나지 않는다. 대신 깔끔하면서도 개운한 국물 맛이 인상적이다.

정리하자면 음식점마다 맛을 내는 비결이 다 다르지만, ‘마산집’의 맛내기 비결이 어쩌면 가장 정석이라고 볼 수 있다. 원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가장 적은 양념을 사용해 해치지 않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다. 양 수육과 소고기 국밥처럼 원재료를 다양한 방면으로 사용할 줄 아는 지혜 역시 ‘마산집’이 30년 넘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