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년 전통이 절로 맹글어지는 게 아이구나

진주중앙시장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예전부터 전국 5대 시장으로 손꼽힐 만큼 규모가 큰 시장이다. 이곳은 2010년 진주중앙유등시장, 장대시장, 청과시장으로 분리됐다. 이들 시장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 시장이 처음 형성될 때부터 ‘한 덩어리’였던 지라 시민들은 굳이 이곳 시장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상인들도 굳이 구분하여 말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경남 서부 지역민과 오랫동안 함께해 온 삶의 터전 ‘진주중앙시장’일 뿐이었다.

딴 데 새복장 허고 비교도 허지 마래이

“참 희안타아이가. 이리 잘 생기다니….”

“오늘 아침에는 와 이리 더덕뿌리가 마이 팔리노. 웬수겉헌 남펜 줄랑가, 아들놈 줄랑가?”

“밥상에 올라온 장어가 휘떡 요동치는 것 함 보실라우?”

길 양 옆으로 쭈그려 앉아 있는 상인들이 설렁설렁 주워 넘기는 말들이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챈다.

진주 중앙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진주중앙시장 새벽시장은 오전 5시부터 9시까지 열리는 시장이다. 새벽 1시가 되면 멀리 거창, 함양에서부터 하나 둘 달려온 트럭이 물건을 부려놓기 시작한다. 4시가 되면 이미 시장은 손님을 맞을 모든 준비를 끝낸다. 야채며 생선이며 과일이며 심지어 상인들 조차도 마치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 양 나름의 질서대로 정돈되고 자리를 잡고 있다.

“중앙시장 새복장 오면 엄는 기 엄고 우찌 다들 그리 사는 지 몰라. 딴 데 새복장 있다캐도 진주 장만큼 큰 데도 없제. 원체 시장이 크니께 요서 100리 넘어서도 팔러 오고 사러 오고 그리 헌다아이가.”

매일 이곳에 와서 10년 넘게 장사한다는 산청 아지매는 자식 자랑하듯 말했다. 희끗희끗한 어둠 속에서도 채소를 다듬는 손길이 여유가 있었다.

시내 한가운데지만 모든 점포들이 문을 닫은 시간이라 캄캄하기만 하다. 이곳 새벽시장은 도로에 형성된 시장이라 전기를 끌어 쓰지 못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 얼굴을 겨우 알아볼 까 싶은데 파는 사람이 있고 사는 사람이 있다. 드문드문 얼렁거리는 불빛 아래서 돈을 받는 것도 거슬러 주는 것도 익숙하기만 하다.

오전 7시, 날이 밝아지면서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마음이 바빠지는 시간이다.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띤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노점 행렬 사이로 밥차가 지나고 죽차가 지난다. 한 그릇 1000원, 2000원 하는 요깃거리 들이다. 리어카를 잠시 세워 앉아있는 상인들 사이로 몸이 재게 배달을 한다.

“이거 함 먹어봐, 주까?”

진주 중앙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콩죽을 파는 아지매는 봉래동에서 매일 새벽 리어카를 끌고 나온다. 더울 때는 시원한 콩물을, 추울 때는 뜨거운 콩물에다 잘게 썬 찹쌀도넛을 뿌려 판다. 한 그릇 먹고 나면 금세 속이 든든해지는 게 아이들 과자 한 봉지 값인 1000원이다. 여기저기 건네받은 밥그릇에서 허연 김이 풀풀거린다. 국물 한 숟갈에 새벽 추위가 한순간에 물러가는 듯 얼굴들이 환해진다. 오전 9시가 되면 시장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도로 위는 깨끗이 청소된 채 비어있다. 그제서야 상가의 점포들은 문을 열고 진주중앙시장은 다시 2막을 준비한다.

점포마다 붙여놓은 세일, 세일!!!

날이 추워지는 10월이지만 햇볕도 따뜻한 것이 한낮의 시장은 조금 여유가 있다. 상인들이 옆 가게에 마실도 가고 잠깐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노점에선 삼삼오오 모여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과일장수 아지매가 국밥을 한 솥 끓여 주위 사람들 불러 같이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가 많은 지 밥술을 뜨면서도 웃고 박수 치고 떠들썩하다. 지나는 사람들도 괜히 웃고 만다.

나란히 붙은 점포마다 붙여놓은 게 눈에 들어온다. 30%세일, 70%세일…심지어는 ‘마진 꽝’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고객들의 발을 필사적으로 붙잡기 위한 것이다.

“이리 써놔야 손님들이 그냥 가다가도 한 번씩 들립니다. 얼마나 싼 지 가격을 물어도 보고, 구경도 하고 그럽니다. 시장은 물건이 싸고 흥정할 수 있어 좋다 하니까.”

진주 중앙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속옷 가게 젊은 주인의 말이다.

물건마다 두꺼운 종이에 가격을 써놓기도 했다. 대개의 물건 값이 3000원, 5000원…만원을 넘지 않는다. 옛날과자를 파는 점포에는 ‘통일되는 그날까지 먹는 것은 공짜’라는 플랜카드를 내세우고 있다. 고객을 잡기 위해 내세운 홍보문구가 맞아떨어졌나 보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시장만의 덤과 인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주인의 여유가 느껴지기도 한다.

“평일 낮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주부아이가. 그라고 단골 손님들이고. 아무래도 오전보다 오후에 사람들이 마이 오고, 파장 때 되면 또 좀 마이 온다.”

양말장수 아지매는 허리에 두른 전대에서 돈을 꺼내 세어 고무줄로 묶어 뭉치를 만들어 다시 전대에 넣었다.

오후 6시 시장골목 유등마다 불이 켜지고

오후 5시가 지나자 전기를 끌어 쓰지 못한 난전 상인들은 이미 파장을 서두르고 있다. 천막으로 물건을 덮고 청소를 한다.

한로가 지나자 오후 햇살은 많이 짧아졌다. 금세 어두워진다. 이 시간이면 진주중앙시장 만의 볼거리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시장골목마다 알록달록하지만 은은한 유등마다 불이 켜진다. 한복거리에 들어서면 유등은 좀 더 휘황찬란하다. 전시된 오색의 주단과 한복 빛깔에 어우러져 거리는 마치 큰 전시장인 듯하다. 지나는 사람들 중 더러는 머리 위에 켜진 다양한 모양의 유등들을 신기하다는 듯 올려다보고 더러는 감탄을 하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진주 중앙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밖에만 구경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서 봐요. 사진도 마음껏 찍고요.”

한일주단 소숙희 씨는 기웃대는 사람들을 소리해서 자기 가게로 들인다.

“10월 축제 기간에는 사진 찍으러 오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이 물건을 안 사도 우리 시장을 인터넷에다 올리고 진주 비단이 최고라고 홍보를 해주더라고요. 구경 오는 사람들이 단순히 구경꾼이 아니지요.”

진주중앙시장은 비단의 주산지인 진주의 대표적 시장인 만큼 한복거리가 잘 되어 있다. 10월 초부터 중순까지 진행되는 진주 축제 기간에 ‘퓨전 한복 패션쇼’를 주관할 만큼 이곳 상인들의 관심과 결집력이 강하다.

“상인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고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상인회 가족 7팀이 모델로 나서고, 또 이주민여성 6명을 모델로 세우기도 하고…. 상인들은 그날 난타공연을 하는데, 지금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지요. 유등제작 강습 받은 걸로 자기 가게 유등도 만들고, 지금 시장 골목골목에 각양각색의 유등이 걸려있는데 우리 시장만의 특색, 상징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시장 이용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유등이란 게 우리 시장 이미지를 잘 살려주더라구요.”

지난 10월 5일 번영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문 사무국장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인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 지 강조했다.

진주 중앙시장 / 사진 김구연 부장

“다목적 광장, 이벤트광장도 곧 조성될 것인데 지금 현재 감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시장이 생활공간만이 아니라 문화공간이 됨으로써 지역민과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차원이지요.”

김 국장은 진주중앙유등시장이 지난해부터 특성화시장 육성사업 중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돼 내년까지 지원을 받는다고 밝히며 한편 걱정되는 바를 털어놓았다.

“내년이면 3년으로 지원이 끝나는데 아직 자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여력이 안 됩니다. 지원 덕택에 시장 상인들이 활력을 찾았고, ‘시장 살리기’에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큰 성과입니다. 앞으로는 무엇보다 전문성 있는 역량강화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진주중앙시장과 인근 지역을 돌아보면서 안타까운 점은 있었다.

가까이 있는 남강과 진주성에서 이동거리가 비교적 짧은 편인데도 연계된 관광 개발 상품이 없다는 것이다. 또 진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진주중앙시장을 소개하거나 연계된 관광동선이 없다는 것이다. 생활형 시장에다 관광형 시장을 접목하는 과정에서 진주시의 좀 더 세심한 배려와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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