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에 길을 묻다] (1)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2011년 12월 29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새로 제정돼 오는 12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누구라도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이를 토대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이 앞으로 시민의 생활방식과 경제질서를 바꾸어놓을 만큼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은 협동조합 설립분야 확대, 협동조합 설립기준 완화,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 가능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 하지만,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제도 시행에 따른 시행착오는 물론이고 설립이 쉽고 자유로워짐에 따른 협동조합 제도 악용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도 크다.

따라서 경남도민일보는 (사)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공동으로 '협동조합에 길을 묻다'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경남도민일보와 (사)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특별기획을 통해 협동조합운동의 정신과 제도, 국내외 사례를 통한 올바른 방향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도입될 수 있도록 하고 경남지역의 협동조합운동 활성화를 유도하고자 한다. 특별기획은 외국 사례 소개를 시작으로 전문가 좌담을 통한 종합진단까지 매주 한 차례씩, 7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협동조합의 메카로 불리는 북부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작은 도시 레지오 에밀리아. 유아교육을 하는 이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바로 그곳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던 몇 명의 엄마가 정식교사 자격증도 없이 시작한 '레지오 칠드런' 유아교육·보육 지원기관의 교육법은 유아를 학습의 주체로 보고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으로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우수성을 자랑한다. 이를 따라 많은 젊은이가 아이를 기르고자 이사를 오면서 자연히 지역사회 연계망이 강화되고, 지역경제가 활력을 띠게 되었다. 레지오 칠드런의 특별한 교육 모토 중 하나는 아이가 지역을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 레지오 에밀리아는 기관 방문을 위해 관광 오는 사람의 수입만으로도 풍족할 정도로 생각을 현실로 만들었다.

돌봄 협동조합인 '카디아'는 약 80명 정도를 수용하는 유치원과 장애인 시설, 노인 돌봄 기관 25개를 1200명 가까운 노동자가 직접 경영하고 있다. 대부분 노인 돌봄과 장애인 시설 등에서 수익이 발생하고 유치원은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운영된다. 조합원에게 직장과 경제적 도움을 주고자 출발한 카디아는 철저하게 종업원 복지 중심으로 움직인다. 카디아 건물은 모두 주택협동조합이 친환경 건축방식으로 짓는다.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짓겠다며 건설 노동자가 만든 볼로냐의 가장 오래된 주택협동조합 '앤솔리니'는 조합원이 되는 자체가 굉장히 영예로운 일이다. 앤솔리니 조합원은 에너지 절약형 친환경 건축을 최초로 도입해 볼로냐의 건축분야 발전에 이바지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조합원 수는 11만 5000여 명, 자산 규모 6000만 유로, 시장점유율 약 50%에 달하는 대기업 수준의 규모다.

소비자협동조합 코프르노 내부 모습. 지역 주민들이 직접 생산하는 농산물과 축산품, 공산품을 주로 판매한다. /김윤미

이곳 사람은 마트 간다는 말보다 '코프' 간다는 말을 더 많이 쓴다. 소비자협동조합 '코프르노'는 지역에서 생산하는 로컬 푸드와 공산품을 주로 판매한다. 모두 '얼굴이 있는 생산자'가 직접 만들어 공급한 농산물이나 축산물이다. 이곳에서 유통되는 상품에 대해서는 자체 친환경 인증시스템을 구축해 관리하고 있다. 스스로 지키는 신뢰를 판매하는 것이다. 그들의 제품은 가까운 맛집에서도 세계 4대 와인협동조합 중 하나인 리유니트의 와인과 함께 그대로 찾을 수 있다.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두고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현지 주민은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지만 믿을 수 있는 우리 지역 상품이라는 생각에 25유로의 조합비를 내면서 이용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조합원은 코프 매장에서 할인뿐만 아니라 코프가 운영하는 서점, 극장, 식당 등에서도 혜택을 받는다. 배당금을 일정 금액 적립하면 이자를 받을 수도 있고, 필요할 때 돈을 빌릴 수도 있다.

협동조합은 이윤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다 쓰고 난 세제 통을 들고 와 자판기 기계에서 용액을 직접 담아가 환경오염을 줄이는 치밀함은 부러워 보였다. 빈곤 대응 활동의 하나로 매장 내 상품가치를 잃은 식료품을 폐기처분하는 대신 매년 11월 마지막 토요일 '음식 나눔의 날'에 이탈리아 전역에서 노란 봉투를 가진 사람은 매장의 물건을 양껏 가져갈 수 있는 이색적인 기부행사도 연다.

코프르노는 수익 대부분을 지역문화 활동, 올바른 식습관 형성과 소비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지원,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 의료장비 지원과 장학금 지원 사업 등 사회공헌과 조합원 배당금 등으로 지역 사회에 고스란히 재투자한다. 엄청난 이윤을 올리면서도 지역경제 기여나 지역사회 공헌은커녕 의무 휴일조차 외면하는 우리 대형마트와는 전혀 딴판이다.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 주민은 1만 5000여 개의 협동조합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1인당 GDP 4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높은 소득과 호혜·공생, 협동과 연대의 삶이 주는 정신적 풍요를 함께 누리고 있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의 저자이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강의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조합원은 같은 위치에서 평등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유를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자유를 사랑해야만 협동조합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자유에서 창조되었으며 창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 많은 협동조합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우리의 협동조합은 얼마나 자유를 사랑하며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민주주의적일까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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