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일구다] 연극 왜 하냐고? 행복하고 즐거우니깐~!

무언가를 재밌게 한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사랑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 그들의 말은 어눌하고 쭈뼛쭈뼛했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연극’을 하고 싶고, 해야 하고, 즐겨야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들끓었던 열정을 잃고 ‘기계적으로’ 일하기도 한 기자에게 그들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긍정의 힘을 선물했다. 그들은 제16회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단체 우수상을 거머쥔 태봉고등학교 연극반 ‘끼모아’ 학생들이다. 태봉고는 도내 유일의 공립 대안학교로, ‘끼모아’는 2010년 만들어졌다. 끼모아를 이끄는 지도교사 서용수 씨와 11명의 부원들을 만나봤다.

앞서 열렸던 제16회 경남청소년연극제에서는 단체 최우수상을 받았다. 제목은 <있는 그대로>(연출 박해인)로 청소년들의 임신과 낙태,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다뤘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언급하길 꺼리는 문제에 춤과 노래, 연기 등 맛깔스런 양념을 쳐 발랄하게 드러냈다. 10대 관람객은 극 중 임신한 정미의 슬픔과 아픔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태봉고등학교 연극반 ‘끼모아’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단체우수상, 최우수연기상(박해인), 우수연기상(김종필·김가은), 스태프상을 연달아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나.

박해인 “받을 줄 알았어요.(웃음)”

김종필 “그냥, 그랬어요. 막상 상을 받으니, 뭔가 이상해요. 내가 받아도 되는지….”

박해인 “종필이가 야밤에 전화해 ‘받아도 되나?’며 호들갑을 떨었어요. 모두 카톡(카카오톡)으로 그룹채팅을 했는데 좋다고 난리가 났죠.”

김민지 “친구들과 후배들이 1등할 거라고 했는데, 기대를 안 했어요. 실감도 나지 않았고요.”

서용수 “청소년이면 꼭 다뤄봐야 할 이야기였고, 하지만 잘 다루어지지 않는 이야기였죠. 왠지 이번이 기회일 거라는 생각을 했고, 운이 좋게 (지난해) 성적이 좋았던 팀이 불참을 했습니다. 다른 팀은 대부분 1·2학년이 주축을 이루지만 우리는 연기자 8명 중 4명이 3학년으로,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었다는 게 강점이었죠.”

-작품은 어떻게 선택했고, 준비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서용수 교사 “다들 작품을 많이 읽었고 최종 결정은 작년 11월쯤에 했습니다. 원작은 엄인희 희곡작가의 <성교육 뮤지컬>이예요. 공연보다는 독서를 목적으로 쓴 희곡, 레제드라마(lesedrama)로 읽기는 좋은데 재미가 없더군요. 그래서 춤과 노래를 넣어 재각색을 했죠. 본격적으로 연습한 것은 올 초부터였죠.”

다같이 “집에 가는 날인 금요일만 빼고, 매일 오후 10~11시까지 시청각실에서 연습했어요. 주말에는 하루 종일 했고요.”

<있는 그대로>는 뮤지컬이다. 연기는 물론, 춤과 노래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한다. 그래서 연습도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류주욱 교사(음악)가 작곡한 11곡도 대회가 열리기 3주 전에 완성됐고 연습 기간은 짧았다. 춤은 안무가 박소연 씨가 짜서 사흘 동안 학생들을 지도했고, 나머지는 춤을 좀(?) 춰본 김민지 학생이 맡았다. 노력은 통했는지 몸치에 가까웠던 학생들이 ‘춤치’로 변했고, 춤을 즐기기 시작했다.

 태봉고등학교 연극반 ‘끼모아’

-그럼 몸이 가장 뻣뻣했던 학생은 누군가.

모두 “(김)용민이요.(웃음)”

김용민 “아니야. 절대 뻣뻣하지 않아. 뒤에서 세 번째는 되잖아. (김)종필이가 못 추지.”

김종필 “아니거든.”

-연극은 공동체 작업이라, 의견 충돌도 있을 것이다.

(서로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같이 “없었어요.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하고자, 서로 노력했으니까.”

서용수 교사 “연극 자체가 자기를 깎아내리는 작업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더 드러내려고 하고, 의견충돌이 생기기도 하죠. 물론 연습을 하는 동안 힘든 점도 있었지만 공연을 좋게 끝내니, 힘든 과정도 눈 녹듯이 녹아내렸죠.”

-<있는 그대로>는 청소년의 성을 다룬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청소년다운 솔직함과 진지함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기를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박해인 “(경남청소년연극제가 열렸던) 함안에서 할 때는 막연하게 했어요. 그냥 내가 임신을 했는지, 낙태를 했는지, 그 무거움이 도대체 무엇인지, 무섭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불완전하게 연기를 했죠. 단순히 표면적으로 ‘그렇겠구나’ 정도였어요. 전국청소년연극제를 준비하면서 미혼모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낙태에 대한 동영상을 보면서 연습을 했고, 그때야 정미라면 내가 아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용수 교사 전국청소년연극제에 총 18개 팀이 참여했는데, 대부분 학교폭력과 왕따, 성적 등을 다뤘고 성에 대해 다룬 곳은 태봉고가 유일했습니다. 태봉고는 자율적인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대안학교였기 때문에 학교폭력과 왕따 등의 문제에서는 자유로웠고 선택의 폭이 넓었죠.

박해인 “청소년 연극에 섹스라는 단어가 실린 건 처음엔 좀 이질감이 있었어요. 제 주위에서 분명히 지금도 일어나는 일들이고 또 생명이라는 소중함이 야기되는 문제가 바로 임신과 낙태죠. 음지에 있는 것들을 꺼냈을 때, 그것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좀 더 큰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극 중에서 키스신이 있었는데, 실제로 한 것인가?

박해인 “경남청소년연극제가 열렸던 함안에서는 실제로 했어요. 전국청소년연극제 때는 안했지만. 극중에서 관학이랑 정미가 서있는 각도가 어떻게 하든 ‘제대로 된 하는 척’이 힘든 각도였어요. 조금만 틀어져도 “쟤네 거짓말 한다”며 들통 났거든요. 대본 지문 상 ‘관학과 정미, 진하게 키스한다’는 걸 어느 정도는 충실하게 지킨 것 같아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태봉고 학생들은 교복을 입지 않지만, 극 중에서는 교복을 입는다. 교복의 출처는 어딘가?

태봉고등학교 연극반 ‘끼모아’

김가은 “어머니가 진영고 선생님이라서 여자 교복은 그곳에서 빌렸고 남자 교복은 마산서중에서 빌렸어요.”

황혜희 “교복을 중학교 때 입어보고 입어본 적이 없어요. 오랜만에 입으니까 너무 좋았어요. 친구들 중 몇몇은 교복을 입고 싶다며 배우들 것을 뺏어 입기도 했죠.”

서용수 교사 “직접 사기에는 돈이 많이 들었죠. 하복 8벌을 하는데 100만원이 넘어가더라고요. 아이들이 드라마 <드림하이>에서 나왔던 교복을 입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연극 부원 중 고3학생들이 많다. 상도 탔으니, 연극영화과를 가는 데 유리할 것 같다.

박해인 “작년 겨울방학이 접어들 때쯤 극단 장자번덕에 들어갔어요. 졸업하고 난 뒤 정식적으로 입단할 예정이예요. 사실 ‘상 받았으니까 좋은 대학 갈 수 있지 않냐’며 주위에서 말을 많이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혔어요.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고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때 갈 거예요.”

김민지 “지금 연희단거리패의 단원이고 졸업하면 밀양연극촌에 들어갈 건데요. 우연히 연출가 이윤택의 연기자 훈련과정인 ‘우리극연구소’를 알게 돼 면접을 봤고, 한 달 동안 밀양연극촌에서 합숙 훈련을 받았어요.”

서용수 교사 “대학은 필요하면 가겠다고 애들이 말했죠. 주변에서는 졸업하고 대학을 바로 가라고 하지만 애들은 소신을 가지고 바로 현장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대부분 고 3 학생들은 대학에 목을 매는데…. 아이들이 자랑스럽죠.”

-다들 행복해 보인다. 연극을 하는 이유는 뭔가?

김가은·황혜희‧김종필·방세진·정영경·김용민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그저 재밌고 행복하고 즐거워요.”

박해인 “연극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이상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유쾌한 무언가가. 재밌는 거 하면서 재밌게 살고 싶어요.”
이장헌 “마술사가 꿈인데, 무대에 서보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김민지 “그냥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게 좋아요. 제가 살아가는 인생이랑 달라서…. 재밌고 즐거워요.”

이신애 “메이크업아티스트가 꿈인데요. 무대분장을 하면서 실제 꿈을 이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좋아요.”
조다인 “극작가가 꿈인데,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연극 전체를 경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서용수 교사 “연극은 제 생활입니다. 제 목표는 모든 아이를 연기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국어 교육에서 소홀한 듣기, 말하기를 제대로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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