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재발견] 물에 시달린 땅, 이젠 절경을 선물하니…이런 게 '새옹지마'

'남고북저(南高北低)' 지형 탓에 받아야 했던 곱지 않은 시선과 빈번했던 강의 범람. 그 옛날 함안지역 사람들에게 '물'은 곧 '근심'이었다.

옛사람들에게는 마음 편치 않은 일이지만, 오늘날에는 물 덕에 다양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하겠다.

홍수에 대처하기 위해 338㎞에 걸쳐 쌓은 둑길만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강줄기 따라 한 자리씩 차지한 정자(亭子)에서 바라본 경치들은 어느 것 하나 뒤처지지 않는다. 정자는 귀족들 관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진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물을 따라 일정한 거리에 지어진 형태다. 남강·낙동강에 둘러싸인 함안은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반구정(伴鷗亭)은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방(趙邦) 선생이 1500년대 말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후 옛 의병장들이 모여 뱃놀이를 즐긴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반구정보다 그 앞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더 유명세를 치른다. 650년 넘은 느티나무 너머로 보이는 창녕 남지 들판과 낙동강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낙동강물에 비치는 일출은 이 지역 제1 절경이라 해도 손색없다.

합강정.

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산길 따라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반구정이다. 그 반대쪽으로 가면 합강정(合江亭)이 나온다. 이 정자는 1633년 지어진 이후 1980년 대대적으로 손을 탔다. '남강과 낙동강이 합쳐진다'는 뜻을 담아 이름 지어졌듯, 두 물길을 조망할 수 있다.

칠북면 광심정(廣心亭), 군북면 와룡정(臥龍亭)에서는 강줄기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악양루(岳陽樓)에서는 아름다운 일몰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무진정.

강가 아닌 연못에 자리한 정자도 있다. 무진정(無盡亭)은 조선시대 문신 조삼(趙參) 선생 후손들이 1567년 건립한 것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정자다. 이곳을 두고 조선 전기 문신 주세붕(周世鵬) 선생은 '무진한 조삼 선생 즐거움과 무진한 정자 경치가 모였으니, 정자 이름은 선생 이름과 더불어 무진할 것이 분명하다'고 기록했다. 1929년 중건된 아주 소박한 정자보다는 앞마당에 펼쳐진 연못이 더 드러나 보인다. 이 연못은 조삼 선생 후손들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물길을 돌려 만들었다 한다. 연못 안에 섬 세 개를 만들고 돌다리를 놓아 운치를 더했다.

매년 사월초파일 이곳에서는 낙화놀이가 열린다. 연등 사이에 참나무 숯가루로 만든 낙화를 매달고, 여기에 불을 지펴 꽃가루처럼 물 위에 날리는 놀이다.

조선 중엽 이곳에 부임한 군수가 백성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889년 〈함안총쇄록〉에 따르면 당시 함안읍성 전체에 낙화놀이가 펼쳐졌다. 모인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산 위에서 구경할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민족정기 말살 정책에 의해 금지되었고, 이후 소규모로 하던 것을 1990년부터 제대로 잇고 있다. 함안뿐만 아니라 전국 10여 곳에서 낙화놀이가 열린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 같이 멋있게 하는 데는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데, 이는 무진정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함안 낙화놀이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3호'다. 전국 낙화놀이 가운데 유일하게 문화재에 이름 올리고 있다.

물에 시달림당했던 이 지역에는 저수지가 흔하디 흔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입곡저수지는 일제강점기 때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협곡을 가로막아 만든 것이다. 지금은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해질 무렵 찾으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겨울날 눈 내리는 정취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칠원면에는 '이인좌 난(李麟佐 亂·1728)' 때 의병을 일으킨 주재성(周宰成) 선생 유적지 '무기연당(舞沂蓮塘)'이 있다. 이름 속에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한 선비 정신이 담겨있다.

무기연당./박민국 기자

'무기'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왔다. 공자(孔子)가 제자 네 명을 앉혀놓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자 모두가 벼슬에 대한 이야길 했다 한다. 하지만 '증점(曾點)'이라는 자는 "봄옷이 다 지어지면 관 쓴 사람 대여섯, 어린아이 예닐곱과 함께 목욕하고, 바람 쐬고, 노래 읊조리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말에 공자는 감탄하며 "네 명 중 너와 함께 하겠다"고 했다 한다.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에 묻혀 지내겠다는 정신이 '무기연당'에 새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제쳐놓고, 문 열고 무기연당에 들어서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쏟게 된다. 중앙에 자리한 네모난 연못 한가운데는 작은 섬이 우뚝 자리하고 있어 아주 특별나게 다가온다. 이곳은 주재성 선생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전통정원이라 불리는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 '영양 서석지'에 뒤진다는 얘길 들으면 섭섭할 만하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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