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 람사르환경재단과 함께하는 환경 얘기] (77) 일본의 사례로 본 세계농업유산

1970년 우리나라는 범국민적인 지역사회 개발운동으로 '새마을 운동'을 단행하였다. 이 운동은 먹고살기 어려웠던 가장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새마을 노래를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노래 가사 중에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라는 내용이 있다. 정부차원에서 국민의 풍요를 위해서 수립한 정책임은 틀림없으나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속도전으로 말미암은 지역 문화자원의 소실이다.

환경을 고민하면서 왜 사라져간 문화자원을 안타까워하는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우리 문화는 자연과 함께 태어나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지면에서 세계농업유산(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에 대해서 논의한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세계농업유산을 간직한 국가는 매우 드물다. 아주 독특한 농업시스템이 바탕이 되어야 등재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아직 세계농업유산 지정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략적 접근이 부족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세계농업유산지역인 일본 사도시 계단식 논. /이찬우

필자는 지난주 따오기 복원과 관련하여 일본의 '사도시'를 방문하였다. 사도시는 제주도와 비슷한 크기의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생태자원이 우수할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사도시는 '따오기와 공생하는 사도의 산촌'으로서 2011년 6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해서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장을 방문해 보니 계단식 논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지형이었는데 어떻게 지정되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담당공무원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속에는 치밀한 일본인들의 전략적인 접근이 녹아 있다는 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사도시에서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섬의 남쪽에 있는 계단식 논으로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았다. 하지만, 논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는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도시가 위치한 사도섬은 400여 년 동안 금광 개발이 진행되었다. 지금은 인구가 6만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금광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15만 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살았다. 그래서 먹을거리가 부족하여 금광과 가까운 지역에서 산을 개발하여 계단식 논을 만들었고 그러한 지역이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지정 과정에서 논이 가지는 지형적인 특징도 중요했지만 금광개발을 하면서 남은 문화유산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정이 어려웠을 것이다. 또 따오기와 공생을 꿈꾸는 지속 가능한 미래 비전도 상당히 중요한 지정 사유가 되었다. 결국, 일본 사도시가 세계농업유산에 지정된 것은 농업지역으로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지금도 원형 그대로 간직한 문화자원과 생태계 회복을 위한 따오기 복원사업이 복합적으로 맞물렸기 때문에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 앨빈 토플러는 자신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제1의 물결을 '농업문명'으로 꼽았다. 이제 우리도 산업화 과정에서 속도전에 의해서 많이 사라져갔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우리의 소중한 농업문화유산과 자연자원을 찾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 제고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찬우(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사업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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