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고기, 버리기 아까웠거나 남주기 아까웠거나

김해에는 도축장이 주촌면·어방동에 각각 있다. 도축장이라는 게 썩 환영받을 시설은 아님에도 두 개나 자리 틀고 있다. 그 까닭을 부산 인근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겠다.

도축장은 소비자 많은 곳에 자리하기 마련하다. 부산은 영남권 제1소비지다. 공장·주거 시설 짓기 바쁜 부산에서는 도축장 터 잡기가 마땅치 않았고, 기피시설로 인식되다 보니 이미 있던 것마저 옮겨야 할 판이었다. 둘러보니 김해가 있었다. 이곳은 산업화 이전이라 자리도 넉넉했고, 부산뿐만 아니라 창원·옛 마산·울산까지 영역에 둘 수 있었다. 구포에 있던 것이 주촌면으로 옮겨왔고, 이보다 규모 작은 것은 어방동에 들어섰다.

오늘날 경남·부산·울산에서 도축-가공-경매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데가 이 두 곳이다. 소보다는 양돈 쪽이 발달해, 도내 돼지 70~80%는 여기 손을 탄다.

도축장 인근에는 정육점·식당이 따라붙었다. 좀 더 신선한 고기라는 기대감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뒷고기./박민국 기자.

지금이야 유통구조·냉동시설이 발달해 그 의미는 떨어졌다. 오히려 찾는 이 발길 옮기기 좋은 곳이 곧 목 좋은 데다.

'진영갈비거리'는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진영읍 좌곤리 국도 14호선은 창원 쪽에서 버스 대절해 부곡온천관광 오가는 길목이다. 주촌면 도축장과도 멀지 않다 보니 갈비전문식당이 1970년대부터 하나 둘 자리 잡아 약 700m에 걸쳐 늘어서게 됐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차 있는 인근 사람들은 가족 외식으로 진영갈비를 즐겨찾았다. 이제는 동네 구석구석 고깃집이 있다 보니, 굳이 먼 발걸음 할 이유도 적어졌다. 진영갈비 이름값이 예전만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지역 도축장은 '김해 뒷고기'라는 것을 낳기도 했다.

뒷고기 유래는 좀 엇갈린다. 하나는 돼지 부위 가운데 쓸만한 것 떼고 남은 것 버리긴 아까워, 주머니 사정 넉넉지 못한 이들을 위해 내놓았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도축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그 맛을 알고서는 밖으로 내다 팔지 않고 뒤로 빼돌려 자기들만 맛봤다는 것이다. 이랬든 저랬든 그 이름과 달리 훌륭한 먹을거리로 손색이 없다.

뒷고기는 주로 머리·엉덩이 쪽에서 나온 것들이다. 최근에는 관련 식당이 워낙 많다 보니 물량도 달려 혀·눈살·볼살·목살 같은 것과 더불어 항정살도 섞인다. 뒷고기는 가위로 자를 필요 없도록 잘게 나온다. 하지만 살은 아주 두툼해서 겉만 타고 속은 잘 익지 않기에 자주 뒤집어야 한다.

뒷고기집은 1970년대 즈음 전하동 쪽 허름한 식당에서 시작돼 1980년대 성업하며 내외동 쪽으로 많이 몰려들었다 한다.

서낙동강 변 불암동에는 민물장어촌이 형성돼 있다. 한때 강변을 따라 30여 집이 들어서 '불암 장어거리'를 형성했다. 그러던 것이 건물노후·위생·주차문제로 10여 곳은 새 터로 옮겨 또 다른 '불암동 장어타운'을 형성했다.

김해에는 국수·손칼국수로 이름 알리는 곳도 있다.

대동면 쪽에는 전국에 입소문 난 '대동할매국수'가 있다. 1959년 문 연 곳이다. 대동면은 부산 구포와 가까워 오래전 나룻배로 서로 교류하기도 했다. 이곳에 5일장이 서면 구포를 비롯한 인근에서 모여든 사람으로 북적였는데, 국수 한 그릇으로 배를 든든히 했다 한다. 지금도 변변한 간판 없이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고, 메뉴는 오직 물국수 하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줄 서는 것을 마다치 않고 찾는다. 주변에 있는 다른 국숫집 4~5곳은 비빔국수·콩국수 같은 메뉴를 강조해 놓고 있다.

동상동 김해재래시장 안에는 10곳 넘는 손칼국숫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특히 간판 없이 1~9호점으로 되어있는 곳들은 50여 년 전부터 손맛을 이어왔다. 메뉴와 가격은 같지만, 사람마다 찾는 집이 달라, 옆집에 빈자리가 나도 굳이 기다렸다 원하는 집으로 가는 풍경이 흔하다.

진영으로 다시 눈 돌리면 이 지역을 대표하는 단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재배지로서 '진영단감'은 하나의 대명사와도 같다.

우리나라 단감은 일본 사람 손에서 시작됐다. 진영역장을 지내고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이 1927년 최초 재배에 나섰다. 또한, 일본인 식물학자 세 사람이 단감에 알맞은 토질·기후·산세를 연구했는데, 진영만 한 데가 없다 해서 신용리에 100그루를 시험 재배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진영과 단감은 궁합이 맞았다. 기온은 연평균 14도를 유지하며, 흙은 수분 유지에 강한 특성이 있다. 산이 동서로 가로질러 남쪽에서 오는 해풍 및 태풍으로부터 보호하는 병풍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서리가 늦게 찾아와 다른 지역과 비교해 생육기간이 10일가량 긴 덕에 일조량도 풍부하다.

진영은 단감 덕에 농촌치고는 쏠쏠하게 돈을 만져 아이들 교육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한다. 물론 지금은 오래된 나무가 많고, 재배환경 좋은 곳이 여기저기 나타나면서 경쟁력 확보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관련기사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