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해안을 끼고도 사람 손 타지 않아…친환경 농업·공룡테마 관광 발달

유난히 한적하고 평온한 바다

고성 동쪽에서 해안선을 따라가면 그 시작은 회화면이다. '당항포 관광지'가 있는 회화면에서 마암면을 지나 거류면과 동해면에 접한 해안선이 만을 이룬다. 만 입구에 있는 '동진교'는 고성군 동해면과 창원시 진북면을 잇는다. 다리를 지나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지정된 해안로가 펼쳐진다. 동해면 동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해안로가 거류면을 지나 통영시와 만나면서 고성 해안선은 한 번 끊긴다. 통영을 넘어 다시 시작하는 고성 해안선은 고성읍에 물려 있다. 고성읍에서 삼산면, 하일면, 하이면으로 이어지는 해안선 끝에는 '상족암'이 있다. 상족암을 지나면 나오는 '한국남동발전㈜ 삼천포화력본부'는 이름과 달리 고성에 있는 시설이다. 유난히 한적하고 평온한 바다 풍경을 자랑하는 이곳 해안선 길이는 186㎞가 넘는다.

한적하고 평온한 바다 분위기는 먼발치 감상이 아니다. 고성 해안선에는 당연히 있음 직한 어촌이 매우 드물다. 어선이 드나들고 그물을 꿰며 해산물을 거래하는 분주한 풍경은 마주치기 어렵다. 예부터 수심이 얕아 큰 어장을 이루지 못한 탓이다. 그나마 그럴듯한 어촌 풍경은 동해면과 거류면 사이 당동만 일대와 삼산면에서 만난다.

하이면 덕명리 바닷가에서 바라본 상족암 일대./박민국 기자

바닷가면 으레 비집고 들어서는 위락시설도 여기서는 보기 어렵다. 수자원과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보호하고자 만든 법들은 어설픈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막았다. 게다가 지형과 근해 양식업 탓에 그럴듯한 해수욕장도 조성되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손때조차 타지 않는 바다가 된 셈이다. 이 때문에 길게 펼쳐진 고성 바다 풍경은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날것에 가깝다. 그 감상을 방해하는 것은 간혹 마주치는 조선소 정도다.

고성 바닷가와 나란히 이어진 도로는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다. 동진교에서 시작하는 동해면 해안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수식이 없다 쳐도 그 가치가 덜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고성 바다는 가까이서 즐기기보다 멀리서 바라보는 게 더 좋은 '관상용 바다'이다. 해안로 풍경이 빼어나지만, 굳이 그길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바다가 가려졌다 싶으면 어느새 너른 들판과 한 번씩 나타나는 저수지가 그 풍경을 대신한다. 더불어 부담스럽지 않은 경사에 굽이굽이 이어지며 산 허리춤을 따라가는 도로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당항포 관광지, 남산공원, 상족암에는 편의시설이 우수한 오토캠핑장이 조성돼 있다. 고성은 운전하는 이들에게는 맞춤형 관광지다.

바다를 앞에 두고 땅을 일궜던 사람들

상족암 바위 틈에 있는 선녀탕. 파도나 조류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웅덩이다./박민국 기자

벽방산(650m), 거류산(571m), 무량산(581m), 연화산(477m), 수태산(571m)을 비롯한 고성지역 주요 산 높이는 500m 안팎이다. 두루 보기에는 좋되 유난히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다. 산보다 눈여겨볼 곳은 평야다. 평야는 고성읍과 영현면, 영오면 일대에 발달했다. 고성군 전체면적(514.33㎢) 가운데 농경지는(123.4㎢) 24%에 이른다. 고성은 비교적 넓은 평야와 더불어 하천도 풍부하다. 영천강, 사천강을 비롯해 영오천, 개천천, 고성천, 마암천, 구만천 등 물줄기가 땅 곳곳에 뻗쳤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예부터 저수지와 둠벙(웅덩이)을 만들어 가뭄을 대비했다. 덕분에 고성은 논·밭 농사를 자랑할 수 있는 경남에서 몇 안 되는 지역이 됐다. '고성 쌀로 통영 먹였다'는 여기 사람들 말은 통영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기름진 땅과 견줘 바다에서 얻는 것은 보잘것없다. 2010년 통계를 보면 고성 어업 인구는 1625명이다. 이는 농업 인구(1만 5038명)의 10%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그나마 가까운 바다 대부분은 양식장이다. 당동만을 비롯해 고성 앞바다 곳곳에서는 넓게 펼쳐진 하얀색 부표를 볼 수 있다. 생산물은 주로 굴·조개·새우 등이다. 고기잡이는 '통통배'라 할 수 있는 소형 어선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하지만, 그 규모가 수산업이라고 내세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더워지면 맛이 더 난다는 이곳 하모(갯장어)회는 유명했다. 공룡에 사활을 걸기 전까지 고성 지명은 종종 '하모'와 짝을 짓곤 했다.

고성군이 친환경 농업에 눈을 돌린 것은 지난 2008년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한발 앞선 움직임이었다. '생명환경농업'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 사업은 고성 농산물 가치를 질적으로 높이려는 시도였다. 미생물을 활용해 되살린 땅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길러낸 쌀에 고성군은 '생명환경 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08년 295농가(164㏊)가 참여해 시작한 '생명환경 벼' 재배는 2011년 989농가(612㏊)로 늘었다. 어느 모로 보나 고성 산업 중심은 농업이다.

소가야 흔적과 고성오광대

고성은 주변이 시(市)로 둘러싸인 외로운 군(郡)이다. 동쪽은 창원시, 남쪽은 통영시, 북쪽은 진주시, 서쪽은 사천시와 접한다. 바다까지 포함하면 거제시까지 행정 경계가 맞물린다. 고성 어디서든 가까운 시지역 중심가까지 차로 2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고성 안에서 규모 있는 소비가 이뤄지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이 때문에 지금 사람들 눈에 고성은 주변 시 단위 지역에 이리저리 뜯기는 작은 지방자치단체 정도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고성은 일찍부터 옛사람 눈에 들었던 곳이다.

고성읍에 있는 고성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에 대한 소개를 볼 수 있다. 옛 삼한시대 변한 12국 가운데 하나인 고자미동국 본토가 지금 고성읍 일대라고 설명한다. 이 지역은 또 42~461년 소가야 도읍지이기도 했다. 고성에 남은 소가야 흔적은 기록과 추측을 넘어 유적까지 뒷받침한다. 일단 고성박물관 뒤쪽에 배경처럼 자리한 '송학동 고분군'이 대표적인 소가야 흔적이다. 송학동 고분군은 발굴 초기 고대 일본 고분 형식을 닮았다는 주장이 나오며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 학계에서 이 고분군이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다는 설)' 증거라며 달려든 것이다. 하지만, 무덤 7기에 대한 추가 발굴로 고대 일본 고분과 다른 형식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논란은 멈춘다.

동해면에 있는 '내산리 고분군' 역시 소가야 흔적이다. 원래 100여 기의 고분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도굴과 파괴로 61기만 제모습을 갖추고 있다. 땅을 파서 깬 돌로 묘 주변 벽을 쌓고, 판석을 얹어 흙을 덮은 '수혈식석곽묘'는 가야 고분이 지닌 전형이다.

고성은 고대문화가 일찍 움튼 곳이었다. 하지만, 이후 역사에서 고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시기는 거의 없다. 아울러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인물 또한 딱히 끄집어내기 어렵다. 이는 주변에 큰 도시를 낀 지역에서 나타나는 흔한 현상이다. 다만, 고성읍에 있는 고성향교를 비롯해 위계서원·도연서원(마암면), 갈천서원(대가면) 등 조선시대 교육기관에서 꾸준히 이어진 유학 전통을 엿볼 수 있다.

그 시작과 견줘 다소 아쉬운 이 지역 문화 자산을 살찌운 것은 서민들이었다. 고성읍에 있는 '고성탈박물관'에서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고성오광대는 진주·사천·마산·통영과 더불어 그 흔적이 잘 남은 가면극이다. 공연은 다섯 과장으로 구성됐다. 제1과장 '문둥북춤'은 조상이 저지른 죄로 문둥이가 됐다는 상황을 중심으로 좌절과 절망을 신명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제2과장 '오광대놀이'는 서민을 대변하는 말뚝이를 내세워 양반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제3과장 '비비과장'은 짐승과 사람을 섞어 닮은 비비를 내세워 양반을 조롱하며 울분을 푸는 내용이다. 제4과장 '승무과장'에서는 서민들이 바라보는 종교를, 제5과장 '제밀주과장'에서는 처첩 관계에서 빚어지는 비극을 다뤘다. 고성오광대보존회는 해마다 7~8월에 정기공연을 연다. 고성탈박물관에서는 고성오광대를 비롯해 경남·부산지역에 전하는 가면극 유래를 확인할 수 있다. 또 특색 있는 지역 탈을 비롯해 세계에 있는 다양한 탈 540여 점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고성농요'는 고성오광대보다 서민들 일상에 더욱 가까운 문화유산이다. 모를 찌면서 부르는 소리인 '모찌기등지',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소리인 '모심기등지'와 더불어 '논매기소리', '도리깨질소리', '물레질소리' 등 5과장으로 구성됐다. 고성농요보존회는 해마다 6월 고성들판에서 농요 공연을 연다.

문수암에서 내려다본 한려수도

신라시대 고승 의상대사와 얽힌 전설이 있는 문수암(상리면). 그 규모나 사찰 생김새가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 이 암자가 지닌 매력은 바로 옆 전망대에서 느닷없이 다가온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고성 앞바다는 통영 미륵산에서 내려다보는 그 바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올망졸망 모인 크고 작은 섬 뒤로 펼쳐진 잔잔한 바다. 이곳에서 보이는 바다 역시 한려수도 한 자락이다.

상리면 문수암에서 내려다본 고성 바다 풍경.

고성을 대표하는 사찰은 개천면에 있는 옥천사다. 역시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절 이름은 대웅전 뒤 맑은 물이 솟는 샘에서 비롯한다. 절 입구에서부터 마주치는 의젓한 건물은 '자방루'이다. 자방루 앞에 서면 대웅전을 비롯해 옥천사에 있는 주요 건물이 마치 그 뒤로 숨은 듯하다. 난리 때 왜적과 맞섰다는 기록으로 미뤄 절 앞을 든든히 지켰을 이 건물은 충분히 요새 기능을 했을 테다. 옥천사에 있는 귀한 유물은 '임자명반자'(보물 495호)라고 불리는 청동북이다. 주로 법당에 걸어놓고 법회나 의식을 할 때 사용하는 이 악기는 고종(1852~1919) 때 만든 것이다.

고성 사찰에 있는 또 한 가지 귀한 유물은 운흥사(하이면)에 있다. 보물 제1317호로 지정된 괘불탱화이다. 1730년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석가여래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부처가 셋씩 앉은 형상을 그렸다. 운흥사 역시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임진왜란 때는 승병 군영으로 쓰였다. 이곳에서 사명대사는 승병 6000여 명을 이끌고 왜적과 맞섰다고 한다.

당항포해전만 있는 게 아니다

1592년 6월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과 함께 고성 당항포로 도주한 왜선 26척을 격파한다. 이어 1594년 3월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이 당항포로 이동하는 왜선 31척을 섬멸한다. 당항포해전 관련 기록은 이렇게 두 번에 나눠 남아 있다.

하지만, 지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은 이들은 당항포해전에 앞서 벌어진 적진포해전을 먼저 짚는다. 1592년 5월 적진포에 정박해 민가를 습격한 왜군을 쫓아 격파한 내용이다. 이 해전은 한동안 통영시 광도면에서 거둔 전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학계와 지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이 고증을 거듭하며 지금은 고성에서 벌어졌던 해전으로 정리되는 중이다. 그럼에도, 구체적으로 고성 어느 지역을 특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유력한 설로 거류면 당동리과 동해면 내산리가 거론된다. 지방자치단체와 학계에서 나서 정리할 과제다.

당항포해전과 관련해서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로 무기정 기생 월이 설화다. 고성읍 무기정 기생이었던 월이는 어느 날 접대하던 한 사내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아챈다. 그 사내는 임진왜란 직전 조선 지리를 정탐하던 밀사였다. 월이는 일부러 그를 술에 곯아떨어지게 한 뒤 몸을 뒤진다. 그리고 품에서 조선 바닷길과 공격 요지, 피난길 등을 기록한 지도를 찾아낸다. 5월이는 순간 지도를 고쳐 그리는 기지를 발휘한다. 훗날 이 지도를 따라 항로를 진행하던 왜선은 당항포 근처에서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순신 함대와 마주치면서 섬멸된다. 동해면 끝자락에 남은 지명 '속싯개'에는 왜군들이 속았다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남해안에 두루 걸친 이순신 승전 기록과는 다른 면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다.

공룡 나라 고성

10년 전만 해도 경남을 벗어난 바깥사람들에게 알려진 고성은 통일전망대가 있는 강원도 고성이었다. 예전에 전방에서 군생활을 했다는 이곳 사내들에게 경남 고성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일화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경남 고성군 위상은 이전과 다르다. 공룡을 지역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며 거둔 작지 않은 성과다. 경남 고성은 '공룡 나라' 고성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을 구분할 리 없는 공룡 흔적이 유난히 고성에 많이 남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본다.

   

먼저 이곳 바닷가에 펼쳐진 땅이 발자국 등 흔적을 남길 정도로 적당히 물렀다. 그러면서도 그 흔적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야물기도 했다. 그 위에 긴 세월 흙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귀한 흔적은 변형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아울러 고성 바닷가는 예부터 사람 손을 타지 않았다. 그 덕에 자연에만 몸을 맡긴 채 일정한 침식이 진행됐고, 긴 세월 묻혔던 공룡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내버려둔 자연은 거대 생물이 남긴 흔적을 이 땅에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그리고 고성군은 이를 영민하게 활용했다. 고성군이 '경남공룡세계엑스포' 개최를 신청한 것은 지난 2003년이다. 그리고 당항포 일대에 충무공 전승을 기념하는 시설과 공룡엑스포 행사장을 묶어 '당항포관광지'를 조성했다. 2006년, 2009년에 이어 2012년 3월 30일 열린 제3회 공룡세계엑스포는 지난 6월 10일까지 진행됐다. 행사 기간 엑스포 방문자는 179만 명, 수입은 117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기 사람 상당수는 엑스포로 몰린 소비가 행사장 안에서만 돌고 그친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는다. 앞으로 행정이 배려해야 할 부분이겠다.

엑스포 주행사장이 당항포에 있지만, 고성이 지닌 모든 매력을 오롯이 보듬은 곳은 따로 있다. 하이면에 있는 상족암군립공원이다. '고성공룡박물관'과 주변 공원, 그 아래 상족암과 해안을 묶은 군립공원은 남해안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 절경을 자랑한다. 그저 독특한 바위와 절벽이 어우러진 경치 좋은 곳일 뻔했던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역시 공룡 흔적이다. 바닷가에 펼쳐진 너른 바위에서는 누구나 쉽게 공룡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곳 바닷가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사람 솜씨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바위와 굴과 절벽을 빚었다. 특히 이 주변 바다는 밑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다.

살림에 큰 보탬이 되지 않았기에 외면받았던 여기 바다는 그덕에 돈으로 셈할 수 없는 매력을 더할 수 있었다. 상족암에서 시작해 촛대바위 너머까지 이어지는 탐방로에서 마주치는 남해안이 만든 절묘한 풍경은 그래서 더욱 대견하다.

상족암 일대 너른 바위에 펼쳐진 공룡발자국./박민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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