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오동동 이야기] 마산 연극인 이철혁과 조미령

마산 출신 연극인 이철혁과 조미령을 시나요? 아니면 영화배우 조미령이란 이름은 들어보셨나요?

지난 5월 '창동예술촌'이 열던 날 필자는 <마산영화 100년사>를 펴낸 향토 영화계의 만물박사(?) 이승기 선생과 남성동 통술집 '홍화'에 앉아 예향 마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물론 소주잔과 맥주컵을 앞에 놓고서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예향 마산을 어떻게 되살릴 것이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였다. 그러다가 필자는 깜짝 놀란다. 그는 연극인도 아니면서 마산이 '연극의 도시'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산의 대표적인 연극인 월초(月樵) 정진업 선생에게 연극자료를 넘겨받거나 당시의 활동내용을 기록해 두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월초 선생을 자주 만났지만, 사진 한 장, 자료 한 점 얻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도 했다.

   

필자도 대학 2학년 때인 1972년경부터 월초 선생을 알았고 연극지도도 받았으나, 당시에는 천지도 모르는 철부지였음을 어쩌랴. 그래서 선생으로부터 변변한 자료 하나 얻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 창동에 '마산연극관'을 만들어 놓고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즘과는 달리 옛날의 영화배우는 대다수가 연극배우들이었다. 연극판에서 내공을 쌓은 연극배우들이 대거 영화계로 스카우트 되었기 때문이고 영화보다 연극이 활성화되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김승호(배우 김희라의 아버지), 김동원(가수 김세환의 아버지), 복혜숙, 강효실과 최무룡(탤런트 최민수의 어머니와 아버지), 최은희, 황정순, 박노식(탤런트 박준규의 아버지), 조항(연예인 조형기의 아버지), 신영균, 김진규(영화배우 김보애의 남편), 황해(가수 전영록의 아버지)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고 그들 모두가 당대의 내로라 하던 연극배우들이었다.

그런데 마산사람들이 그동안 간과해 온 예인(藝人)이 있으니 바로 연극인이자 영화인인 이철혁과 조미령이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예술사 구술총서 3편 <장민호: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수류산방·2011년)를 보다가 이철혁과 조미령이 마산 출신 연극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란 적이 있다.

필자는 연극배우 장민호 선생을 2007년 개최된 '이아타 세계연극총회' 대회장으로 모신 적이 있고, 2008년 '마산국제연극제' 20주년 행사때는 원로배우 백성희 선생과 함께 통술집 '홍화'에서 통음(痛飮)을 한 적도 있다. 그런 선생이 구술한 내용을 엮은 책에 이철혁과 조미령이 언급되어 있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그래서 이철혁과 조미령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철혁은 누구인가. 그는 일본강점기인 1934년 6월 24일 동경유학생들이 조직했던 연극단체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 중심인물 중 한 명이다. 이 단체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그 구성원 때문이다. 마산 출신 이철혁을 비롯해서, 이해랑·황순원·이진순·김동원·박용구·주영섭·박동근·마완영 등등 당대의 쟁쟁한 인물들이 그 구성원들이고, 그들은 와세다 대학, 일본대학 등에 유학 중인 엘리트들이었다.

특히 이해랑·김동원·이진순은 나중에 한국연극계의 거목으로 추앙받는다. 이철혁이 그런 사람들과 함께 연극활동을 했으니 연극인으로서의 그의 위치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본 유학을 한 초창기 마산 연극인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온재(溫齋) 이광래다. 그는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출신으로 해방 후에는 주로 서울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이철혁은 연극인보다는 영화제작자로 그 이름을 날리고 당대의 스타 조미령과 결혼함으로써 세인의 주목을 받는다.

조미령은 누구인가. 마산 제일여고 출신인 영화배우 김혜정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영화 <춘향전>과 <마부> 등에 출연한 불세출의 은막(銀幕)의 스타 조미령이 마산 출신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일까. 마산연극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녀는 일찍이 아역 연극배우로 서울의 동양극장에서 활동했으며 동양극장 후반기 최대 히트작인 연극 <어머니의 힘>(1943년)에 출연한다. 동양극장은 한국 최초의 연극 상설극장으로 '청춘좌'·'동극좌'·'희극좌' 등이 동양극장 전속 공연단체였다. 박진·홍해성·임선규 등이 동양극장을 이끈 대표적인 연극인이고 신파극 <검사와 여선생>,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인기 레퍼토리였다고 한다. 해방 후에 그녀는 유치진이 주도한 '극협(극예술협의회)'의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이처럼 조미령은 서울에서 활동한 마산출신 연극인인 것이다.

   

드디어 그녀는 1948년 <갈매기>(이규환 감독)로 영화계에 데뷔한다. 그때 그녀 나이 19세였고 그 영화의 제작자가 바로 그녀의 남편이자 연극인인 이철혁이다. 그 후 영화 <춘향전>(이규환 감독·1955년), <시집가는 날>(이병일 감독·1956년), <십대의 반항>(김기영 감독·1959년), <마부>(강대진 감독·1961년) 등에 출연하면서 1956년부터 1960년대까지 인기스타로 명성을 날린다.

그중에서 <마부>는 제11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으면서 서구영화계에 최초로 한국영화를 알리게 된다. <마부>는 마부 하춘삼 역을 맡은 김승호와 조미령, 신영균, 황정순 등이 출연했던 영화다. 조미령은 영화 <춘향전>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로 인기를 누렸던 이른바 '청순가련형' 배우의 원조였으며 현재는 하와이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이철혁과 조미령을 마산 출신 연극인이라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사실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암울했던 시절에도 거침없이 연극계에 투신한 두 사람의 업적이 너무도 위대하기에 하는 말이다.

/이상용(극단 마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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