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발꿈치를 들면 돌담 너머 바다가 보이는 곳

거제 바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짙은 에메랄드빛의 맑디맑은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거제로 떠나는 여정은 언제나 설렌다.

샛바람, 언덕바꿈…. 거제 바다와 더불어 이번 여행은 되뇌어 볼수록 예쁜 이름에 매료되어 무작정 떠난 여행이다.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 구조라 마을. 이젠 벽화마을로 어느 정도 소문이 나 있는 곳이다.

예스러운 시골 돌담길과 벽화 그림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골목골목 추억과 재미, 기대를 준다.

발뒤꿈치를 조금만 들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나지막한 담장엔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빨간 머리 앤이 창문에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저만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파페의 모습은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사춘기, 파페 포포 삽화가 그려진 책을 사 보았던 기억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벽화 담장을 따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다니다 빨간 우편함 옆으로 숨어 있는 샛바람 소리길 이정표를 만난다.

해안에서 자생하는 대나무인 ‘시릿대’가 울창한 ‘샛바람 소리길’. 샛바람은 뱃사람들이 부르는 ‘동풍’을 이르는 말로, 주로 봄에 부는 바람을 말한다.

시릿대가 동굴을 이루었다. 강렬하던 햇빛이 보석처럼 산산이 부서져 발끝에서 반짝인다. 머리를 흩날리게 했던 바람이 ‘쌔애 쌔애’ 소리가 되어 내 귀와 몸을 간질인다.

“우짜등가 둘이 드가서 보라”던 입구에 적힌 말에 살짝 겁이 났지만, 이내 시릿대를 사이에 두고 혼자 걷기 딱 좋을 만큼 좁게 열린 땅 길과 하늘 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시릿대 동굴을 지나면 이젠 초록의 탁 트인 조망이 아름다운 언덕바꿈 공원이 기다리고 있다. 음산하면서도 서늘했던 샛바람 소리길과 대조가 되면서 그 모습이 더욱 화사하고 선명하다.

곳곳에 솟은 솟대와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그 바다 건너 북병산 능선과 시선 아래쪽으로 신비하게 보이는 윤돌도. 녹음과 대비되는 빨간 우체통까지. 하나의 엽서가 되어 눈 안에 박힌다.

빨간 우체통을 옆에 두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좋은 풍경에 놓이니 감상적이 된다.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중략) /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했던 이수익 시인의 ‘우울한 샹송’을 가만히 읊조려 본다.

다시 눈을 돌렸다. 바다에서 산으로 몸을 돌리니 구조라 성과 수정봉으로 오르는 안내판이 보인다. 약간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휘 한 바퀴 돌아 다시 언덕바꿈 공원으로 돌아와 마을로 내려갔다.

   

◇구조라 마을 돌아보기

구조라 마을 골목 벽화길→샛바람 소리길 입구→ 샛바람 소리길→언덕바꿈 공원→구조라 성→수정봉→서낭당→언덕바꿈 공원→구조라 마을.(1시간∼1시간 30분 소요)

저온 숙성한 제철 멍게, 향까지 고스란히

◇ 인근 맛집 - 백만석

귓가에 맴돌던 샛바람 소리와 바다냄새와 녹음의 향기까지 구조라 마을 여행에 눈과 귀와 코가 즐거웠다면 이제 입이 즐거울 차례.

얼려 나오는 멍게를 따뜻한 밥에 쓱싹 비며 먹는 맛이 그만이라고 찾은 식당은 백만석(055-638-3300, 거제시 상동동 960번지 2층). 구조라 마을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백만석에서 나오는 멍게비빔밥의 멍게는 매년 4∼6월 사이 거제, 통영에서 생산되는 살아있는 멍게를 양념과 간을 해 저온에서 7일간 반숙성 시킨 후 살짝 얼린 것이다. 주문과 동시에 사각형으로 보기 좋게 얼린 멍게와 참기름, 김, 깨가 담뿍 담긴 그릇이 놓였다. 멍게가 살짝 녹을 때쯤 밥과 지리가 차려졌다. 주문과 동시에 살아있는 생선을 갓 잡아 끓였다는 지리에 먼저 숟가락이 갔다. 개운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그만이다.

   

밥을 비빔그릇에 넣고 쓱쓱 비볐다. 살짝 녹은 멍게가 골고루 밥 사이로 퍼지자 멍게 향도 코끝을 간질인다. 식욕을 돋우는 특유의 매력을 지닌 멍게가 양념과 어울려 고소하면서도 보드랍다.

멍게비빔밥과 개운한 지리의 궁합에 다른 밑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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