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도시 닮고 싶으나 '닮을 수 없는 매력' 넘치는 땅

사천시 용현면에서 사천대교를 건너면 서포면에 닿는다. 서포면 남쪽에는 비토(飛兎)섬이 있다. 비토섬 동쪽으로 올망졸망 모여 있는 섬은 4개다. 월등도·거북섬·토끼섬 그리고 목섬. 사천시는 이들 5개 섬을 '별주부전' 무대로 묶어놓았다. 익숙한 이야기는 낯선 공간을 친근하게 만드는 장치다.

비토교(飛兎橋)는 서포면 남쪽과 비토섬 서쪽 끝을 잇는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서포면과 비토섬이 품은 갯벌 한 자락을 볼 수 있다. 갯벌에는 참나무·소나무 막대기가 촘촘하게 박혔다. 유명한 서포 굴이 여무는 자리가 이곳이다. 여기 사람들은 서포 굴이 통영 굴보다 장사는 못해도 맛은 낫다고 자신한다.

섬 둘레를 따라 동쪽 끝으로 가면 지도에서 길은 끊긴다. 땅끝 맞은편에는 월등도가 보인다. 거북섬, 토끼섬, 목섬은 월등도 너머에 있다. 비토섬과 월등도를 오가는 길은 하루 두 번씩 뭍이 되고 바다가 된다. 이곳에서 비토섬 갯벌은 제모습을 드러낸다. 비토섬 갯벌은 '사천팔경' 가운데 하나다. 섬과 갯벌이 품은 매력은 이미 차고 넘친다. 토끼가 용궁 다녀온 이야기로 그 매력이 더하거나 덜하지는 않다.

비토섬./박민국 기자

사천은 경남에서 가장 넓은 갯벌을 품은 땅이다. 사천 땅 가운데를 깊게 파고드는 사천만은 곳곳에 넓은 갯벌을 펼쳐놓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농지, 항구, 공단은 갯벌을 덮으며 들어섰다. 지역이 살길을 찾는 고민은 갯벌을 엎는 데서 시작됐다. 그래도 구박받던 땅에서 미래를 발견한 이들은 있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갯벌 처지에서 다행이었다. 2007년 사천시가 '일반산업단지조성사업' 대상지로 점찍은 광포만 갯벌이 매립 손길을 피한 것도 이들 덕이다. 그러나 매립과 보존, 그 득실을 따지는 다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바다 덕 톡톡히 본 나비 닮은 땅

땅 깊숙이 들어온 사천만을 중심으로 좌우로 넓게 퍼진 땅 생김새는 나비를 닮았다. 〈사천시사(泗川市史)〉는 호랑나비가 하늘을 날아오른다는 '호접비상형(胡蝶飛翔形)'으로 묘사한다.

사천만 양쪽으로 나란히 뻗은 산줄기는 낮고 완만하다. 가장 높은 와룡산 주봉이 798m이고 대부분 높이 500m에 못 미치는 산들이 이어진다. 이런 산들이 전체 면적(398.25㎢) 가운데 60% 정도 차지한다. 큰 강은 없으나 삼천포천, 덕천강, 사천강, 죽전천, 백천천, 곤양천 등 하천은 풍부하다. 산 아래 고루 퍼진 평야에서 이곳 농민들은 그렇게 모자라지 않은 살림을 꾸렸다.

이곳 사람들은 포도·참다래·단감 등을 지역 특산물로 친다. 아울러 서북쪽 곤명면에는 대규모 녹차 단지가 펼쳐져 있다.

그래도 사천시에 대한 인상은 상당 부분 바다에서 비롯한다. 더 정확하게는 삼천포항에 대한 인상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대량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한 쥐치는 이곳 어민들에게 주요 소득원이 됐다. 그 전성기는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다. 더불어 삼천포항 주변에 쥐치포 가공업체까지 들어서면서 삼천포는 돈이 잘 도는 곳이 된다. 당시 새벽에 배에서 내리는 쥐치 상자는 받아서 가공하는 만큼 돈이 됐다. 무엇보다 상자를 많이 챙기는 게 먼저였다. 쥐치 상자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 보니 시어머니와 며느리였더라는 이야기는 이곳 사람들에게 흐뭇한 추억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쥐치 어획량은 급감한다. 이른바 '쥐치 씨가 말랐다'는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항구는 갑자기 활기를 잃었다. 그나마 삼천포항을 버티게 한 것은 쥐치 가공 기술이었다. 예전만 못하지만 조금씩 나는 국내산 쥐치와 외국산 쥐치를 들여 포를 만들면서 '삼천포 쥐포'는 아쉬운 대로 명맥을 유지한다.

삼천포항 활기는 한풀 꺾였지만 남해가 이 땅에 베푼 자산은 수산물에서 그치지 않았다. 풍부한 수산물에 홀려 잠시 잊었을 뿐 사천 앞바다 역시 한려수도 길목이다. 남해와 맞물린 경남지역 대부분이 그렇듯 뭍과 바다가 어울린 풍경은 그저 넉넉하다.

사천만 입구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정해 해안을 더듬으면 '실안 노을길'을 먼저 만난다. 국내에서 해안 일몰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실안 노을길 끝은 '창선·삼천포 대교' 입구다. 이미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다리다. 3.4㎞에 걸친 삼천포·초양·늑도·창선대교는 각기 다른 교량 양식을 뽐낸다.

다리를 지나치면 나오는 선착장에서는 사천 앞바다를 도는 유람선을 탈 수 있다. 남해안이 다도해(多島海)인 것은 사천 앞바다에서도 확인된다. 유람선 선착장을 지나면 바로 삼천포 수산시장과 노산공원이다. 생선회를 먹고 공원을 거니는 것은 사천은 물론 옛날 서부 경남 연인들이라면 한 번씩 거쳤던 낭만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동쪽 해안 끝은 남일대 해수욕장이다. 이름에 '남해안 제일 절경'이라는 뜻을 담은 명소다. 바다를 바라보면 왼쪽 끝에 우뚝 솟은 코끼리 바위는 덤으로 즐기면 되겠다.

갯벌 위에서 일으킨 산업

경남지역에 하나뿐인 공항은 사천에 있다. 김해공항은 부산시 강서구에 포함된다. 덕분에 사천은 경남에서 유일하게 하늘·바다·땅이 열린 지역이 됐다. 여기 사람들에게는 은근한 자랑거리다.

사천공항, 삼천포항은 모두 갯벌을 메워 만든 시설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조개나 캐는 시커먼 뻘은 늘 푸대접을 받았다. 어서 덮어 농사를 지어야 했고 항구가 돼야 했으며 공항, 공장을 세워야 했다. 이곳 사람들 상당수는 갯벌이 사라지는 만큼 사천이 발전한다고 믿었다. 사천에 있는 대규모 산업단지 상당수도 그 시작은 갯벌 매립이다.

사천시가 내세우는 구호는 '첨단 항공산업의 메카'이다. 이 구상은 1992년 '사천제1일반산업단지' 조성을 시작하면서 구체화한다.

사천에 처음 들어서는 일반산업단지이며 현재 사천 경제를 떠받치는 축이다. 사천읍 용당리와 사남면 유천리·방지리·월성리 일원에 조성된 산업단지 면적은 205만 8997㎡이다. 10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노동자 수는 4400여 명이다. 주요 업종은 제1차 금속산업, 전자부품, 영상음향·통신장비, 담배제조업, 기타운송장비 등이다. 사천을 대표하는 기업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이곳에 있다. 또 담배 제조업체인 'BAT코리아제조㈜'가 있는 곳도 여기다.

창선삼천포대교와 항공우주박물관./박민국 기자

1997년에는 '사천제2일반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된다. 사남면 방지리·초전리와 용현면 선진리 일원에 조성된 산업단지 면적은 161만 6570㎡이다. 주요 업종은 항공·운수기기, 전자·전기, 정보, 재료·소재 등이다. 일반산업단지에 14개 업체, 임대 전용 산업단지에 20개 업체가 입주했으며 노동자 수는 2900여 명이다.

대부분 조선 기자재와 항공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이며 대표 기업은 SPP조선㈜이다. 이와 더불어 '사천외국인기업전용단지'와 사남·곤양·송포·두량·향촌삽재 등 5개 농공단지가 오늘날 사천 산업·경제를 이끈다고 보면 된다. 사천시는 이처럼 갯벌과 바꿔 얻은 대가를 상당히 높게 친다.

사천만 동·서쪽, 삼천포항 사람들

사천에는 곤양향교(곤양면)와 사천향교(사천읍)가 있다. 사천만 양쪽에 사이좋게 한 곳씩 조선시대 국가 교육기관을 둔 셈이다. 이 향교를 근거로 사천만 동·서쪽 사람들은 나름 전통 있는 땅에 살았음을 자부한다. 여기에는 옛 삼천포시를 넌지시 겨냥한 우쭐거림이 섞여 있다.

하지만, 최소한 1990년대 초반까지 사천에서 가장 잘나간 지역은 삼천포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풍부한 수산물이 안긴 부(富)는 활달한 뱃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안겼다.

땅 크기는 작았지만 1995년 통합되기 전 삼천포는 시(市), 사천은 군(郡)이었다. 비록 1990년대 들어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불황을 겪고, 1995년 사천시로 통합되며 지명까지 잃었지만 삼천포 사람들은 기죽지 않았다. 여전히 이곳 출신들은 사천 사람보다 삼천포 사람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빼어난 경치 맛있는 음식에는 어김없이 이름 앞에 삼천포를 붙인다. 여전히 삼천포항 주변은 사천읍과 더불어 주요 소비지역이다.

그래도 현재 사천시는 사천읍을 중심으로 한 사천만 동쪽 지역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천포 경기가 수그러드는 때와 맞물려 들어선 대규모 산업단지는 사천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곳에서는 아직 갯벌을 메워 들어선 산업단지를 성공 사례로 보는 눈이 더 많다. 그 때문에 남해안에서 가장 넉넉한 갯벌을 메워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호소하는 지역은 사천만 서쪽이다. 산업단지가 들어서며 상당히 망가진 동쪽 갯벌과 달리 서쪽 갯벌은 꿋꿋하게 제모습을 지켰다.

하지만, 이를 흘겨보는 쪽은 오히려 이 지역 사람들이다. 제모습을 지킨 자연이 주는 혜택에 가치를 두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보는 갯벌은 서로 달랐다. 갯벌을 덮어 살림을 살찌운 사천만 동쪽 사람들처럼 살 수 없는 현실은 서쪽 사람들에게 불만이 됐다. 갯벌을 덮어서 잃을 게 없다는 이들과 얻을 게 없다는 이들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다.

사천시 통합 17년, 바깥사람들 보기에 사천과 삼천포 사이에 있을 듯한 정서적 갈등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사천시 행정은 사천만 동·서 지역과 삼천포를 쏠림 없이 아우르는 게 늘 과제다.

다솔사와 박재삼이 없었다면

사천에서 나라가 인정한 보물은 '사천매향비(곤양면)'가 있다. 평범한 바위로 만든 비석이 지닌 가치는 돌에 새겨진 글귀에 있다.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이 글귀 덕에 전국에 흩어진 매향비 용도를 알 수 있게 됐다. 국가 지정 보물이 된 이유다. 매향(埋香)은 신을 모시고자 향나무를 땅에 묻거나 향을 피우는 의식을 말한다. 이때 의식을 행하는 과정과 시기, 관련 집단 등을 기록한 비가 매향비다. 사천매향비에는 고려 후기 승려 4100여 명이 계를 조직해 매향의식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남해안에 접한 지역이면 으레 남아 있는 임진왜란(1592년) 흔적은 사천에도 제법 있다. 남해안 곳곳에서 승전을 올린 이순신은 사천에서도 일본군을 격파하는데 이는 '사천해전'으로 기록돼 있다. 사천해전은 거북선이 최초로 쓰인 전투다. 사천시 역시 이 부분을 영리하게 강조한다.

선진리성(용현면)은 일본식 성곽, 즉 왜성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은 이곳에 성을 쌓아 거점으로 삼았다. 여기서는 정유재란(1597년) 때 일본군과 조·명 연합군이 큰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선진리성 바로 옆에 있는 조명군총(朝明軍塚)은 일본군에게 귀와 코가 잘린 조·명 연합군이 묻힌 무덤이다. 선진리성은 현재 공원으로 잘 정비돼 있으며, 1995년 사천시 통합 이후 해마다 지역 축제인 '와룡문화제'를 열고 있다.

대방동에 있는 '대방진 굴항'은 고려 때 만들어진 군항 시설이다. 입구는 좁으나 안으로 들어가면 큰 배 2척 정도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사천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거북선을 숨겼던 곳으로 널리 알리고 있다.

이어질 듯 끊어지는 사천 옛 이야기도 그나마 다솔사(곤명면)에서는 풍부해진다. 다솔사는 신라시대 504년 연기조사와 영악대사가 창건해 '영락사'라고 하던 것을 636년 건물 2동을 올리면서 '다솔사'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건물은 1914년 화재로 타버린 것을 이듬해 다시 세웠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이 독립선언서 초안을, 소설가 김동리(1913~1995)가 〈등신불〉을 쓴 곳도 다솔사다. 특히 이 절 대웅전 뒤쪽에 세운 탑에는 부처 진신사리가 보존돼 있다. 대웅전 불상은 누워 있어 대웅전 안에서도 건물 밖 탑이 보이도록 했다. 이는 양산 통도사 대웅전에 불상을 두지 않는 것과 같은 문법이다.

노산공원(서금동)에는 '박재삼 문학관'이 있다. 아마도 사천에서 이곳 출신 인물 이름이 먼저 붙는 장소는 여기 하나뿐일 듯하다.

   

박재삼(1933~1997)은 한국 전통 서정시 맥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이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삼천포에서 보냈으며 삼천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첫 시집 〈춘향이 마음〉을 시작으로 〈뜨거운 달〉, 〈찬란한 미지수〉, 〈햇빛 속에서〉, 〈다시 그리움으로〉 등 시집 15권과 수필집 〈차 한잔의 팡세〉를 냈다. 현대문학상·한국시인협회상·노산문학상·인촌상·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사천만 서쪽에 거는 미래

풍부한 수산물이 흥을 돋우던 삼천포항 모습은 점점 멀어지는 과거다. 이제 바닷가 사람들은 수려한 남해안 풍경과 입맛 돋우는 해산물에 예전에 누렸던 활기를 기대한다. 갯벌을 대가로 얻어낸 산업단지는 오늘날 사천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첨단 항공산업의 메카' 구호는 현재 사천을 정의하며, 사천이 그리는 미래이기도 하다. 남은 곳은 사천만 서쪽 땅이다. 그리고 이 땅은 앞으로 사천이 갈 방향에 대한 쉽지 않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같은 질문을 놓고 개발과 보존으로 갈리는 두 갈래 답은 지난 2007년 제대로 부딪친다. 사천시가 '일반산업단지조성사업' 대상지로 광포만 갯벌을 정하면서다.

치열했던 대립은 일단 갯벌 보존 쪽으로 정리됐다. 갯벌이 드러내는 매력과 드러내지 않는 혜택에 서 가치를 찾은 이들은 '일단 먹고살고 보자'는 주민들 반발에 힘겹게 맞섰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탐사를 통해 수달, 삵, 대추귀고둥 등 귀한 야생 동식물을 찾아낸다. 갯벌이 지닌 생명력과 자산을 극적으로 증명해낸 셈이다.

사천만 서쪽 서포면·곤양면·축동면은 해놓은 것보다 해야 할 게 많은 땅이다. 갯벌을 덮을 것인지 살릴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사천시 미래와 맞닿아 있다. 다만, 이 땅이 품은 원시적인 매력을 아끼는 이들은 이런 상상을 귀띔한다.

남일대해수욕장에서 바다를 즐긴다. 노산공원에 들렀다가 삼천포항에서 회를 먹고, 유람선을 타며 섬을 감상한다. 선진리성을 거닐고 나면 사천대교에 올라 사천만을 건넌다. 남쪽으로 방향을 정하면 비토섬 갯벌, 북쪽으로 방향을 정하면 광포만 갯벌이다. 어느 갯벌에서든 풍성한 생명력을 만끽하며 뒹굴다가 다시 사천대교를 건넌다. 그리고 실안 노을길에서 떨어지는 태양을 배웅한다. 여기는 경상남도 사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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