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물살 뛰노는 감성돔…입 속에선 황홀함 그 자체

사천의 새벽은 분주하다. 여전히 삼천포항은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하루를 깨운다.

사천은 수산업이 일찍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을 안고 있었다. 뭍에서 유기질이 많이 유입돼 먹잇감이 풍부하고, 조수 간만차가 큰 덕에 물이 깨끗하다. 여기에다 난해류까지 더해져 다양한 수산생물이 몰린다. 드넓은 갯벌이 정화 역할을 해 적조도 비켜 가곤 한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특히 사천 생선이 입에 감기는 이유가 있다. 사천만은 겉과 속이 다르다. 드러난 물살은 아주 잔잔해 마치 호수와 같을 때도 있다. 그러나 사뭇 그 속은 거칠다. 물살이 여간 세지 않다. 잔잔한 바다인 줄 알고 뛰어들었다가는 물살에 휘말려 큰 화를 당하기 십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거친 물살을 가르는 어류는 그 살이 흐물흐물하지 않다. 생선회로 좋은 질감을 선사한다.

사천은 산란을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감성돔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바늘 3개짜리 낚싯대를 넣으면 아래서부터 망둥어·감성돔·농어가 올라온다 한다. 특이하게도 바다에 낚싯대를 넣었는데 잉어·붕어·쏘가리 같은 민물고기가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어떤 때는 붕어가 워낙 많아 아예 드럼통으로 잡은 이도 있다 한다.

감성돔 회.

그렇다고 이를 반길 일은 아니다. 흘러야 할 물이 제 길로 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홍수 조절용인 남강댐 영향으로 남강으로 가야 할 물이 끊겨 사천만으로 흘러들어 때로는 민물이 되기도 한다. 가두리 양식장 피해가 뒤따른다. 그래도 유기물질 섞인 민물이 적당히 들어오면 조개 같은 것은 살이 오르기에 반기는 어민도 있다고 한다.

죽방렴은 물길이 좁고 물살이 빨라 어구 설치하기 좋은 곳에 발달한다. 이러한 요건이 충족된 사천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성행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산업화, 더 이후에는 사천만 매립·염분 저하로 지금은 죽방렴 하면 남해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명절 선물용으로 대부분 죽방렴 멸치를 점찍는다고 한다.

삼천포쥐포는 예전만 못해도 여전히 입에 오르내린다. 쥐치를 포로 떠서 조미료 넣어 말린 것이 쥐포다. 그 오래전 쥐치는 헐값에 넘어가는 홀대를 받았다. 그러다 입이 궁금해 간간이 간식 삼아 먹던 것이 퍼지면서 1960년대 중·후반부터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물론 지금은 이곳에서 잡히는 쥐치가 크게 줄어, 오히려 횟감용으로 눈독 들이는 분위기다.

삼천포 쥐포.

그나마 여기서 잡은 쥐치를 원료로한 쥐포는 큰 값이 매겨지고, 베트남·중국산 쥐치를 여기서 가공한 것은 그 아래, 이도 저도 아닌 것은 헐값이다.

이곳 사람들은 쥐포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을 안고 있다.

쥐포가 성업하던 때에는 새벽에 쥐치 상자를 더 많이 받아가기 위한 가공업자 간 경쟁이 치열했다. 한날은 어두운 새벽녘, 마찬가지로 앞뒤 안 가리고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옥신각신했는데, 알고 보니 시어머니·며느리 사이였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쥐포 가공하는 집에 살다 보니 방에서 손만 뻗으면 먹을 수 있었다 한다.

사천에서는 서포 굴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들리는 얘기로는 임진왜란 때 왜적이 침략하자 나라에서는 육지로 도망가라고 했지만, 서포면 사람들은 쉽게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굴이 워낙 풍부했기에 이를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포면은 참나무·소나무로 몽둥이를 만들어 갯벌에 박고, 여기에 발을 만들어 놓는다. 물에 있는 유생을 굴 껍데기에 붙게 하는 고전적 방식이다. 늘 물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성장은 느리지만, 물 위에 있는 동안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통영 굴이 유명하지만, 사천에서 종패를 가져가기도 한다며 이 지역 사람들은 힘주어 말한다. 크기는 잔잔하지만 알이 꽉차 씹는 질감이 다르다는 말도 더해진다.

사천 노산공원의 물고기 상. 삼천포 앞바다에서 거센 물살에도 활기 차게 뛰어노는 상괭이의 모습과 사천의 대표 어종인 참돔, 볼락, 전어를 형상화 했다./박민국 기자

바다 아닌 것에 눈 돌리면 사천은 단감·포도·배 같은 것에도 일손을 쏟고 있다. 정동면 대곡마을 쪽에는 단감단지가 형성돼 있다. 경남 내에서는 진영단감이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늙은 감나무는 단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천은 진영보다 젊은 단감 나무가 많다"고 강조한다.

한끼 식사를 위한 것에서는 백합죽·냉면·해물한정식·김치찌개가 대표성을 띠고 있다.

'선진리'와 함께 따라붙는 것이 '백합죽'이다. 백합은 5~11월이 산란기며 민물영향을 받는 조개류로 수심 20m 모래·진흙에 몸을 두고 있다.

선진리 사람들은 백합 덕에 보릿고개 시절도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었다 한다. 외지로 팔아 쌀을 들여오고, 남은 것은 구워서, 끓여서, 죽을 쒀 먹었다. 특히 찹쌀·인삼·대추·잣 등을 넣어 끓인 백합죽은 외지 사람들 군침까지 돌게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진사공단 등의 영향으로 백합 찾기가 쉽지 않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선진리를 찾으면 이를 맛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입맛이 다 같을 순 없어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두툼한 육전에 고명을 얹어주는 재건냉면 집은 외지 손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를 이은 아들이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뜻에서 상호를 '재건냉면'으로 했다고 한다.

해물한정식은 삼천포항 쪽에 서너 집 있다. 어떤 집은 주문할 필요도 없는 단일 메뉴다. 가격이 오르기는 했어도 1만 원 돈으로 대접받는 느낌을 안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 흔한 김치찌개가 한 고장의 대표 먹을거리라는게 언뜻 보면 의아스럽다. 사천 김치찌개는 잘게 썬 돼지고기를 상추에 싸먹는 특징이 있다. 이를 처음 시작한 곳 사장이 돼지고기를 워낙 좋아했다고 한다. 집에서 김치찌개 돼지고기를 늘 상추에 싸먹던 것을 식당으로 옮겨온 것이다. 입소문이 났고, 그 비법을 여기저기 알려주다 보니 지금은 비슷한 식당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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