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시장에는 먹자골목이 있습니다. 일명 '수제비·국수' 골목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고향 떠난 이들이 찾으면 꼭 들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가장 큰 강점은 착한 가격입니다. 어르신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수제비·국수·칼국수 가격이 2500원에서 시작합니다.
각 식당은 허름하지만, 재래시장 특유의 친근함이 전해졌습니다.
저희는 '영남식당'이라는 곳을 찾았습니다. 다른 곳에 비해 늦게 시작한 곳이지만 이래저래 입소문이 퍼져 있는 듯했습니다.
야채수제비·국수, 그리고 보리밥 또한 3000원이었습니다.
야채수제비는 밀가루에 채소를 갈아 넣은 덕에 초록색·주황색·보라색, 이렇게 삼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매우 고추 들어간 국물은 아주 맵싹했습니다. 전날 술을 먹은 탓에 식당 오는 길이 힘들었었는데, 국물 한입 한입 뜰수록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몸은 뜨거움에 부들부들 떨고, 입은 '으~ 시원하다~'를 연신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문득 별스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목욕탕에서 아저씨들이 뜨거운 탕에서 '시원하다~'를 외치는 것이 그리 이상해 보였는데, 이제 나도 그런 아저씨가 됐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참고로 저는 37살입니다.
어쨌든 땀 뻘뻘 흘리며 한 그릇 비우고 나니 몸이 한결 개운했습니다.
함께한 두 사람은 국수를 먹었는데요. 이들은 애초 시원한 것을 주문했지만, 주인아주머니가 잘못 알아듣고 뜨거운 것을 내왔습니다. 이들은 애꿎은 국수에 불만의 눈빛을 쏘아붙였습니다. 하지만 유일한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제법 어울린 듯 투덜거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