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곳곳에 사과 조형물·알림판…길거리엔 먹을거리 즐비

거창군청 건물 입구에는 사과 조형물 두 개가 나란히 하며 눈길을 달라 한다. 거리 곳곳 알림판·시내버스정류장도 앙증맞은 사과 모양을 하고 있다. 사과테마파크도 있어 고제면 봉계리에서는 체험시설, 거창읍 정장리에서는 사과관 및 공원을 접할 수 있다. '거창 사과'가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이쯤 되면 먹을거리로 이 지역이 무엇을 내세우려는지 알만하다.

사과가 우리나라에 씨앗을 내린 것은 1906년 일본에서 국광·홍옥을 받아들이면서다. 거창에서는 1930년 한 일본인이 거창읍 10여 농가에 묘목을 심으면서로 전해진다.

그래도 거창 사람들은 "1940년 계림농원을 설립한 최남식 선생이 이 지역 최초 보급자"라고 말한다. 본격적인 대량 생산 및 보급 시발점으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1966년 정부 지원 아래 생산량·재배 면적이 급격히 늘어났고, 오늘날에는 1700여 농가가 한해 2만 8000t을 생산하며, 576억 원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자연은 이곳 사람들에게 사과 받아들일 조건을 선사했다. 거창은 대륙성 기후로 일교차가 커 사과 당도 높이기에 알맞다. 밤 기온이 뚝 떨어질수록 낮에 축적된 포도당이 덜 빠져나가 그만큼 당도도 높아진다. 또한, 거창은 약산성 토질이라 사과와 잘 맞다.

1980년대에는 거창읍을 비롯해 남상면·가조면 같은 곳이 특히 부합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온난화때문에 사과는 다른 곳을 찾았다. 오늘날 그곳이 거창 최북단인 고제면이다. 덕유산 자락에 있어 해발이 높고 일교차가 심한 곳이다. 거창군 평균 고지가 220m인데 고제면은 400m 이상으로 평균 기온도 읍내보다 5도 이상 낮다.

옛 시절 고제면은 '겨울잠 자던 곳'이었다. 산골 오지에다 겨울에 폭설이 자주 내려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척박한 동네였다. '깡촌'이 그러하듯 살림살이가 넉넉할 리도 없었다. 그런데 고랭지채소를 하면서 어깨를 조금씩 폈고, 또 그러다 사과로 옮기면서 이젠 '부농' 얘기를 할 만하게 됐다. '고급 승용차에 삽자루 싣고 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는 데서 이 지역 분위기가 그려진다. 그렇다고 고제면 전체가 '부농'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어디서나 늘 그렇듯 바깥사람들이 들어와 땅 재미를 보고, 여기 사람은 소농으로 남는 예도 있다.

이곳 사람들은 살림살이가 아주 어려웠던 옛 시절에 읍내 사과단지로 품 팔러 나갔다 한다. 이제는 농장 주인이 되어 반대로 읍내 사람들 일손을 빌린다 하니, 사과가 거창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아 보인다.
 

거창군청 건물 입구에 있는 사과 조형물은 찾는 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박민국 기자


1980년대까지는 거창군 농가 60%가 누에고치를 생산하며 이 지역 소득에 큰 몫을 했지만, 그 자리에 역시 하나 둘 사과나무로 채워졌다 한다. 그 외 딸기·포도·오미자·버섯·고랭지 채소·산양 산삼 등은 지금 이 지역 소득에 보탬이 되고 있다.

밥상 음식을 둘러보면 뜻밖에 눈길 가는 것이 많지 않다. 거창군은 1000m 고지 산 13개가 173km에 걸쳐 에워싸고 있다. 88고속도로 뚫리기 이전에는 오지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그들만의 특별한 먹을거리가 생성될 법도 한데, 막상 그렇지도 않다. '비빔밥 하면 전주'가 떠오르듯, 군에서는 2006년부터 이 지역만의 향토 음식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나마 축산업에 눈 돌리고 천을 끼고 있는 덕에 갈비탕(찜)·어탕 같은 것에서 이름을 내걸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이웃이라 할 수 있는 함양·산청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이들 지역보다 특별히 더 내세우는 분위기는 아니다.
 

거창 원동갈비탕. /박민국 기자


그래도 '함양 안의갈비'와 '거창 원동갈비'를 같은 선상에 둔다. 거창 원동갈비 뿌리는 안의갈비에서 찾는 것이 맞을 듯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름 면에서 밀리지 않는다며 "대구·김천·서울 같은 곳에서 일부러 먹으러 온다"고 자랑한다. 안의갈비찜·원동갈비찜 둘 다 먹어본 이들은 어느 것이 더 좋다를 떠나 양념에서 그 차이를 느끼기는 하는 듯하다. 거창읍 서변리 원동마을로 가면 식당 서너 군데가 있다. 갈비탕만 하는 집도 있고, 갈비찜을 내세우는 집도 있고, 둘 다 다루며 외관에 신경 쓴 곳도 있다.

거창읍 거창교~중앙교 사이에는 추어탕거리가 있다. 군이 지정한 향토음식점 네 곳에서 추어탕·어탕국수를 내놓고 있다. 가장 오래됐다는 추어탕집이 20년 채 안 됐으니, 그 내력이 그리 긴 편은 아니라 하겠다.

거창읍 거창시장 안에는 수제비·칼국수·국수를 내놓는 허름한 식당이 10여 곳 된다. 예전 장날 어르신들이 찾던 것들이라 지금도 가격을 쉬이 올리지 못해 국수 한 그릇 2500원에 내놓는다.

거창군 읍내에는 횟집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바다 없는 곳이라고 생선 먹지 말라는 법 없지만, 눈길이 가기는 한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폐쇄된 지형에 제대로 뚫린 도로조차 없었으니 생선 구경은 애초 기대도 말아야 했다. 어쩌다 꽁치 먹을 기회가 있기는 했다. 큼큼한 냄새가 나 원래 그러려니 하고 먹었는데, 그게 썩은 냄새였다는 걸 안 건 한참 나중에서였단다. 그나마 1984년 88고속도로가 뚫리며 제대로 된 것을 만나게 됐다. 인근 함양에 '썩은 갈치 신세 면했다'는 예전 말이 있었듯, 거창 역시 옛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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