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유일한 방책임을 보여야 '파약' 명분 성립…자칫하면 지지잃은 정치인 돼

정치인에게 약속은 소중하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이 약속을 어기면 배신감을 느끼고 지지를 철회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약속을 어긴 정치인은 밝은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1991년, 대선을 1년 앞둔 미국, 조지 부시는 걸프전을 치르며 90%에 달하는 지지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거물급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던 제시 잭슨, 앨 고어 등 민주당의 대선주자들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부시의 현직 프리미엄과 높은 지지율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 진영에서조차 1988년 대통령 선거 때 세금을 인상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긴 부시에 비판이 가해지고 있었다. 유권자들은 불경기가 지속하고 있던 상황에서 "절대 새로운 세금은 없다"고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클린턴은 부시가 영세민들의 세금은 올리고 부자들의 세금은 낮추었다며 비판했다.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은 부시는 '후세인의 위협을 제거한 세계의 지도자'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친 46세의 클린턴을 선택했다.

클린턴은 주지사에 처음 당선된 지 14년 만에 대통령이 되었다. 재선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도전해 아칸소의 경제발전과 복지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를 얻은 뒤였다. 그 평가에 힘입어 전국 주지사회 의장까지 역임한 뒤이기도 했다. 전국적인 기반을 더 쌓고 출마하라는 아내 힐러리의 조언을 듣고 교육개혁에 전념한 뒤이기도 했다.

도지사로 처음 당선된 지 2년밖에 안 된 김두관 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조기사퇴도 감행한다고 한다. 도지사 선거 때 중도사퇴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도정에만 전념하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김두관 지사도 약속을 어겨 유권자의 마음과 지지를 잃는 사례로 남을까? 꼭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다. 현실 정치에서 '파약'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며, 파약에도 혹은 파약 덕분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은 '정치인의 지조'라는 글에서 "구체적인 행동 영역에서는 빈번하게 변신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라며, "기존 방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새로운 해결책이 강력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고 했다. "그것만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유일한 길이고, 새로운 환경이 요구하는 방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선상에서 처칠은 아일랜드에 대해 강압정책에서 화해정책으로 급선회함으로써, 보수당에 대한 아일랜드 국민당의 지지를 무력화시키고 재집권에 성공한 자유당의 글래드스턴을 조명한다.

처칠은 "정치인은 항상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에 최선이라고 믿는 바를 실행에 옮기고자 이전에 깊이 신봉하던 원칙까지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베버가 역설했던 바와 같이 정치인은 의도의 선함을 중시하는 '신념윤리가'가 아니라 결과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중시하는 '책임윤리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글래드스턴이 바로 그런 정치가였다는 것이다.

   
 

김 지사는 어떠한가? 2년 만에 약속을 어기고 그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정권교체의 유일한 방책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환경에 처해있는가? 또 그것은 장기적인 안목과 책임윤리의 관점에서 국가에 최선인가?

김 지사는 이런 물음에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역시 약속을 어겨 유권자의 마음과 지지를 잃는 정치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7월 8일로 예정된 해남에서의 출마선언에 답이 담겨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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