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적 도정 운영 기대한 지지자 실망…임기 동안 헌신한 뒤 차기 엿보길

"비과학적이고 외람되지만 느낌이 나쁘지 않다. 한번 멋지게 싸우고 싶다." 김두관 지사가 중국 출장에서 대선 출마를 묻는 기자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2년 전 지사 당선 후 차기 대권도전 의사를 묻는 물음에 "임기를 채울 것이다"고 답변한 후 시간이 흐르며 긴가민가를 오가다 드디어 출마선언 자세를 한껏 잡은 본새다. 오늘까지 진전된 사태로 보건대 이제 곧 지사직을 초개같이 던지고 대권을 향해 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답답한가. 김두관이란 사람의 인물됨에 시비를 걸고픈 생각은 없다. 지금은 삼천포와 하동에 걸친 번듯한 다리로 뭍에 이르는 길이 일 같잖지만 노량에서 세찬 물길을 건너거나 노산공원 밑에서 통통배로 창선에 닿아야 읍내로 들어갈 수 있던 바람 많은 유배지 남해의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의 정치 입신은 박수받아 마땅한 과정이 있었다.

이장에서 군수에 이르면서 그가 보인 올곧은 생각과 실천있는 역량은 지방자치 초기 모범적 전형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관사를 철거하고 민원인 쉼터를 만들어 군민에게 돌려준 그의 낡은 본가를 찾아간 방송 카메라에 잡힌 그를 아직도 기억한다. 민소매 차림에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는 그를 보며 여태껏 보아왔던 전형적 벼슬아치 모습이 사라지는 상쾌함을 느꼈다. 혁파가 쉽지않은 시골 소읍 묵은 연고와 오랜 관행의 고리를 끊는 그의 우직함은 기립박수를 받아 마땅했다.

이 몸도 선거 때마다 서슴없이 그를 찍었다. 훌륭한 정치인의 탄생은 개인적 성공이라기보다 공동체의 합의와 조력으로라야 이루어질 수 있는 시민운동의 영역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개천에서도 용이 나오는 세상이라야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지 않겠는가.

요새 아이들은 실속이 있어선지 되바라져 그런지 꿈을 묻노라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대종을 이룬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백댄서, 프로게이머, 골퍼에다 나아가 안정적 직업인 공무원을 든다는 소릴 듣고 격세지감을 느낀다. 예전엔 아이들의 꿈은 대개 대통령이거나 장군 혹은 과학자였다. 세상살이의 만만찮음을 체득한 어른 명색들은 언감생심 자신들에겐 안드로메다쯤이나 멀리 있는 그 벼슬들을 일 같잖게 부르는 꼬맹이의 허언을 들으며 도달가능 여부는 나중에 셈하더라도 우선 옹골진 포부에 흐뭇하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이른바 포부의 레벨이 다른 것이다. 개인적 안락과 공익에의 헌신쯤으로 나눈다면 좀 과한가? 투표로 선출직 벼슬 맛을 본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란다. 그 웅장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김두관 개인의 질주야 나무랄 일도 아니거니와 배 아파할 이유도 없다. 그이 정도라면 훌륭한 '깜'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대선 출마를 반대한다. 노태우가 가운데 서고 김영삼과 김종필이 좌우에 선 '3당 합당'이란 것은 난데없는 사통이었다. 그것은 지역주의의 고착화였고 이후 경남은 퍼런 깃발만 꽂으면 그네들 부패세력의 영토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땅이었다. 두 해 전 그가 도지사가 되었음은 시대 여망과 열망이 담긴 것이었다. 김두관 개인이 지사에 당선된 것이라기보다 시대정신이 그를 지사에 임명한 것으로 생각한다.

   
 

김두관의 지사직 사퇴는 그가 꾸는 용꿈의 발판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도정의 개혁적 운영과 협치를 기대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응답은 아니다. 더구나 지난 총선이 보여주듯 사퇴 후 치러질 보궐선거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대선은 차치하더라도 민주당 경선에서 후보가 못 된다면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남해대교를 지날 때면 그 육중한 몸에 밧줄을 걸고 대교에서 번지점프를 하던 군수 김두관을 생각한다. 부디 임기를 다해 도민에게 헌신하고 힘 모아 정권을 바꾼 후 차기를 엿봄이 어떤가? 비과학적이고 외람되지만 느낌이 나쁘다. 용단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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