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이상원 두산중공업 기술부장

스팀 터빈 블레이드 33종, 가스 터빈 블레이드 17종 국산화. 그리고 20여 년 동안 거둔 수입 대체 효과 2700억 원. 현장 기술자 한 명이 거둔 눈부신 성과다. 국가품질경영대회 37년 역사상 처음 현장기술직에서 나온 수훈자. 기술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소신으로 늘 한자리를 지킨 이상원 두산중공업 기술부장이다. 그를 부르는 다른 이름은 품질명장이다.

질끈 동여맨 작업화와 안전모 너머로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 그 속에 숨겨진 강력한 눈빛은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대한민국 품질명장이라는 책임감이 엿보였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서 만난 품질명장 이상원(53) 기술부장은 푸근한 얼굴에 부드러운 말투지만 안전모를 쓰고 현장에 나설 때면 두 눈은 불꽃이 튈 듯 매섭게 변한다.

이상원 두산중공업 기술부장./박일호 기자

그는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37회 국가품질경영대회에서 현장기술자로서는 처음으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날 대회에서는 훈장 수훈자 8명을 포함해 총 81명의 유공자가 각종 포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이 기술부장이었다. 이 부장은 국가품질경영대회 37회 역사상 첫 현장기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수상소감을 밝히면서 "맡은 자리에서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혼자 힘이 아니라 팀원들이 잘해서"라고 말했다.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이 부장은 발전설비 국산화의 산증인이다. 현장 근로자로 입사한 이 부장은 발전설비 부품 가공 업무와 품질분임조 분임장 등을 맡아 품질 개선 활동을 이끌었다. 그는 발전설비 핵심 부품인 터빈 블레이드와 가스터빈 블레이드 국산화, 검사·작업방법 표준화와 공정개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원가와 품질손실 비용 20억 원을 절감하고 품질안정화에 이바지했다.

"저는 항상 후배들에게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걸을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기술이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생각과 방법은 '긍정의 힘'에서 이뤄지며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를 믿는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이 항상 즐겁기 때문입니다."

이상원 두산중공업 기술부장./박일호 기자
핵심부품 기술 향상에 쏟아 부은 32년

현재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발전기 공장에서 현장총괄과 터빈 블레이드(Turbine Blade·회전날개) 생산과장을 겸하는 이 부장이 두산중공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1979년. 울릉도가 고향인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현장에 근무하는 기술직과는 달리 인문계 고등학교인 울릉종합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고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이 부장은 두산중공업의 기술연수생 모집 광고를 보고 인생의 방향을 바꿔 입사에 도전했다. 이후 32년 9개월 동안 두산중공업 창원공장과 동고동락하면서 오롯이 한 길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기술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우다 보니 저의 섬세한 성격이 기계가공과 잘 맞더군요.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됐습니다. 목표를 정하니 그때부터 일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풋풋했던 젊은 시절을 현장에서 보낸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얼굴에는 잔주름이 생기고 머리도 어느새 희끗희끗해졌다. 하지만, 일에 임하는 그의 마음은 아직도 청년 못지않게 뜨겁고 열정적이다. 특히 이 부장은 재직 32년 중 25년을 발전소 핵심 부품인 터빈 블레이드 기술향상에 몸담았다. 터빈 블레이드는 고온·고압의 증기뿐 아니라 초당 3600회의 회전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1990년대 초반까지도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만 했다.

발전설비 핵심부품을 국산화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였다.

1980년대 말, 이상원 부장은 동료와 함께 터빈 블레이드 국산화 작업에 착수했다. 기술 습득을 위해 회사 지원으로 1988년 미국 연수를 1개월간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터빈 블레이드 라인 제작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본, 독일, 스위스, 체코 등 발전설비를 제작하는 선진업체를 벤치마킹해 생산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을 실행에 옮겼다. 밤을 새우며 개발에 몰두하고 테스트를 하고 또 했다. 피로 누적으로 늑막염까지 걸리며 작업에 매달렸다. 스팀 터빈 블레이드 국산화를 위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상원 두산중공업 기술부장./박일호 기자

"터빈 블레이드의 날개 형상은 4축 혹은 5축으로 가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전축에 조립되는 더브테일(밀링작업의 일종) 가공은 0.002㎜를 요구하는 정밀작업을 해야 합니다. 공구(Tool)와 치구(Jig & Fixture) 적용과 검사방법을 정립해 표준화하고 적용하는 데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노력을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유혹할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선진국 개발 부품, 2년 만에 국산화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 그의 열정은 아무도 막지 못했다. 이 부장 등 개발팀은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 지 2년 만인 1991년, 터빈 블레이드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노력을 국가에서도 인정, 그에게 국산화 유공자 본부장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현재까지 스팀 터빈 블레이드 33종, 가스 터빈 블레이드 17종의 국산화에 성공해 지금까지 누적 금액으로 2700억 원이 넘는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상원 두산중공업 기술부장./박일호 기자
"미국 등 선진국의 발전설비 제작사가 수십 년간 개발한 블레이드를 단 2년여 만에 국산화에 성공했을 때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스팀 터빈 블레이드 1개 가격이 포니 자동차 1대 가격과 비슷할 때였고 원자력 1호기에 소요되는 블레이드가 9200개 정도 됩니다. 수입 대체 효과가 발생하는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죠."

그는 지금까지 54건의 공정개선 실적과 품질손실비용 등 약 20억 원의 절감성과를 냈다. 현장에서 습득한 기술을 품질교류회, 품질 도우미 활동 등을 통해 100여 개의 협력업체에 전파하기도 했다. 또 무결함 활동을 위해 터빈 블레이드 품질 교안을 만들어 품질안정화에 이바지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 2003년 산업자원부로부터 '품질 명장'에, 지난해에는 두산중공업 기술직의 최고봉인 '기장'에 선정됐다.

업무 능률의 향상과 개인의 발전을 위한 활동에서 이 부장은 항상 적극적이었다. 1981년 분임조 활동을 시작해 2001년까지 20여 년을 조원, 조장, 지도원을 거치면서 새 시대 분임조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분임조 활동을 통해 사내, 지역, 전국경진대회에서 수차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수많은 대회 중에서 그의 기억에 가장 남는 때는 1998년 전국경진대회에서 금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때라고 한다.

분임조 활동 외에 개인 제안과 테마 해결에서도 이 부장은 우수한 실적을 갖고 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제안 실적은 총 199건이며, 이중 192건이 채택, 96.5%의 우수한 채택률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주요 분임조 테마 해결도 40여 건에 이르며, 품질개선 26건, 공정개선 34건, 근로분위기 개선도 13건에 달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실적들이 그의 성실성과 노력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이 모든 실적에 대해 '팀워크'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팀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두산중공업은 90년대 이 부장의 열정적인 모습에 관리직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현장에 남았다. 현장기술직을 천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 부장은 32년간 현장기술자로 근무하면서 후배양성을 위해 기술전도사 역할을 마다치 않는다.

관리직 제안 거부하며 현장 지켜

"후배들에게 기술 습득을 위해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선배들이 가진 손끝 기술을 복사해서 자기 머리에 붙여 넣기를 얼마만큼 빨리하는가와, 열정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응용을 해서, 자기만의 기술을 만들어 표준화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후배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다기능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블레이드 제작 라인에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품질이 우수한 명품 블레이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현장기술직에서 후배들이 성장, 발전해 은탑, 금탑 산업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여 돕고 싶습니다."

이상원 두산중공업 기술부장./박일호 기자

그는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1996년 두산중공업 사회봉사단원으로 가입해 매월 일정금액을 사회공헌기금으로 급여공제하고 있다. 1997년부터는 한국 SOS 어린이마을 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가족에 대해서만큼은 늘 미안한 감정이 있다. 이 부장이 지금까지 밤낮없이 회사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과 영향을 미친 사람이 바로 그의 아내다.

그는 "어려울 때 결혼했는데 지금까지 아내는 내가 살림과 아이들 교육을 한 번도 걱정하지 않게 했다"며 "아내의 내조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고 있기 때문에 모든 활동이 활발히 잘 진행되는 것이고 자신은 '덤'일 뿐"이라며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도 공을 돌렸다.

깨어있는 정신과 도전하는 자세로, 또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이상원 기술부장. 그는 오늘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즐기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최고가 되기를 바란 적은 없었지만, 한 걸음씩 최선을 다해 걷다 보니, 대한민국 품질명장의 자리에 서 있게 됐다. 대한민국 품질명장, 그것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이름이다.

꿋꿋하게 한 길을 걸어온 그의 우직함이 그를 여기까지 이르게 했다. 하지만, 그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삶은 매순간 도전해야 하는 진행형일 뿐이다. 빠듯한 일상 속에서도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과 여유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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