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진주 장도장 기능인 임장식 씨

경남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역사·문화 중에서 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인 것들이 무수히 많다. 어렵게 전통의 맥을 잇는 사람들을 통해 경남의 역사와 문화를 되짚어보고, 전통 맥을 후손들이 어떻게 계승해야 할지 점검해본다.

은장도는 은으로 장식한 칼을 말한다. 크지 않아 휴대용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은장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옛날 여인네들이 정절을 지키는 칼쯤으로 여긴다. 아마 TV드라마 영향 탓일 것이다. 하지만, 은장도는 몇 십 년 전만 해도 아주 흔하게 쓰던 칼이다. 크기가 작고 칼집도 있어 어른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휴대용 칼이다. 칼이나 가위가 흔하지 않은 시절, 이 은장도는 신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생활필수품이었다. 손자의 팽이를 깎아주거나 나물을 캐는 자잘한 것에서부터 수염을 깎거나 이발용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지금은 이런 일을 하는 데 장도를 쓰지 않는다. 기계로 찍어낸 값싼 제품과 다양한 전문용 칼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넘쳐나던 은장도 공방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고, 자연스럽게 은장도를 만드는 사람들도 사라졌다. 경남에서 은장도를 만드는 곳은 진주뿐이고 기능을 보유한 장인인 장도장은 임장식(51) 씨가 유일하다.

임장식 씨./김구연 기자

무형문화재 아버지 기술 이어받아 장도장 기능보유자로

현재 임 씨는 경남무형문화재 제10호 장도장(粧刀匠) 기능보유자다. 임 씨는 아버지 임차출(2006년 사망) 옹으로부터 기술을 전수했다. 임 옹은 17세 때부터 당시 울산병영의 장도장이던 김말호 씨에게서 장도 제작기술을 배웠다. 이후 44세 때 진주로 옮겨 정착했다. 장도의 칼 몸체를 벼리는 기법과 전통적인 문양을 조각하는 솜씨가 특히 능했다.

임 씨도 아버지의 기능을 이어받아 은장도와 목장도 제작에 뛰어난 면을 보이고 있다. 임 씨의 은장도는 전통적인 ‘쪼이질 기법’을 이용한 은조각 솜씨와 민화풍의 조각선이 특징이다. 특히 칼날을 벼리는 솜씨는 자타가 인정한다.

임장식 씨./김구연 기자

임 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은장도와 가까워졌다. 군 제대 후 잠깐 회사에 취직했다가 장도의 길로 돌아왔다. 당시만 해도 웬만한 월급쟁이보다는 나았다. 경주 수학여행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이 은장도였다. 할아버지께 선물하려고 하나씩을 구입할 정도였으니까.

임 씨는 1987년 아버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기능보유자 후보자가 됐고, 2001년 기능보유자가 됐다. “아버지는 아주 엄하셨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혼이 났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술을 전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생스런 ‘쪼이질 기법’을 고수하는 까닭

임 씨는 고생스럽지만 전통을 고집한다. 칼자루와 칼집에 문양을 넣는 쪼이질(새가 모이를 쪼는 것처럼 정으로 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과 칼을 벼리는 과정은 전통방식대로 따르고 있다. 임 씨는 “은장도를 만들 때 쪼이질이 기본이다. 수만 번도 넘는 쪼이질 끝에 전통 은장도가 탄생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쪼이질이 거의 사라졌다.

일부 무형문화재들조차 쪼이질을 하지 않는다. 다른 장르의 무형문화재에는 쪼이질이 남아 있지만 은장도를 만들면서 쪼이질을 하는 곳은 진주가 거의 유일하다”고 말한다.

장도는 주물로도 만들 수 있고 프레스로 찍어내면 하루에 수천 개도 만들 수 있다. 문양도 레이저로 하거나 다른 방법이 다양하다. 최신 열처리 기법으로 만든 칼날은 장인이 벼린 칼날보다 더 정교하고 강할 수 있다. 하지만, 장인의 손에서 나오는 손끝의 맛이 없다. 쪼이질에서 나오는 정의 세심함이 없다. 임 씨는 “이것이 망치와 정을 놓지 못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임 씨는 자신이 만드는 장도에 일편심(一片心)이라는 글자를 새기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

임 씨는 “작년 전국의 명품을 모아 명품전을 했는데 실망했다. 명품이라고 해놓고는 정작 쪼이질을 하지 않은 작품들이 보였다. 좀은 힘들지만 전통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 지원금까지 주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물론이고 북한에서도 쪼이질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쪼이질을 포기한다면 은장도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한다.

임장식 씨./김구연 기자

임 씨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여러 곳에서 전시회를 하다 보면 꼭 듣는 말이 있다. 비싸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지만 못하는 말이 있는데 ‘당신 옆구리에 끼고 있는 핸드백은 얼마짜리인데요’다. 칼이 최소 30만 원 정도 하면 솔직히 비싸긴 하다. 하지만, 왜 비싼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진양호 전수관에서 칼을 만드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절대로 비싸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임 씨는 명품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에서 장인이 수작업을 해서 만들면 명품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재로 지정된 장인이 전통 방식으로 수작업으로 만들어도 명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문화재로 지정된 사람들이 만드는 것도 명품이다.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명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도 전통기법을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재를 왜 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확고했다. 임 씨는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중 상당수가 지금은 즐겨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다. 은장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것을 보전하고 계승할까. 그것은 바로 당시에는 그게 최고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은장도만 해도 당시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앞으로도 은장도를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전통 기법 중에서 맥이 끊긴 기술이 너무 많다. 지금보다 공구도 좋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을까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 너무 많다. 박물관에 가면 감탄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 기술을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도 전통을 고집하면서 은장도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장식 씨./김구연 기자

마지막으로 임 씨는 “텔레비전 때문에 은장도가 잘 못 비치고 있다. 물론 정절을 지키는 도구였지만 은장도는 우리 생활필수품이었다. 은장도를 구입해서 고이 모셔두지 말고 자주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은장도의 용도는 장식용이 아니다. 만약 고장이 나면 평생 무상수리를 보장한다”고 밝혔다.

<장도장과 은도장을 만드는 과정>

장도는 소도(小刀)의 일종으로 처음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휴대용에서 출발했다. 이후 점차 용도가 다양해지면서 주머니에 넣어 다닌다고 하여 낭도(囊刀)라고도 하고, 허리에 차고 다닌다고 하여 패도(佩刀)라고도 했다. 칼을 만드는 소재에 따라서도 은장도·목장도·골장도·금장도·뿔장도 등이 있다. 장도장은 원래 도자장(刀子匠)으로 불렸으나 칼의 용도와 종류가 다양해지고 세분화되면서 소도를 중심으로 장도(粧刀: 꾸밈 칼)를 만드는 장인을 분리해 장도장이라고 했다.

장도는 칼날과 칼자루, 칼집으로 나뉜다. 칼날을 만드는 작업을 벼린다고 한다. 첫 단계는 무쇠를 풀무에서 칼날 모양으로 성형한다. 이때 1500도 온도에서 쇠를 달군다. 이렇게 만들어진 칼날을 갈로 다듬고, 다시 담금질(열처리)을 한다. 그리고 풀림, 갈기, 광택 작업을 한다. 칼자루와 칼집은 은을 녹여 판 모양으로 만든다. 다음엔 규격대로 잘라내고, 말아서 때운다. 쇳대에 넣어 형태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망치와 정으로 장도에 문양을 넣는 쪼이질을 한다. 장도의 문양은 십장생과 사군자, 박쥐문 등이 있다.

임장식 씨가 만든 장도./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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