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김부영 경남도의원

이장 출신 도의원 ‘김부영’의 이력을 ‘파란만장’이라는 한 단어에 가둬 두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어 보인다.

1965년생인 김부영 의원의 정규 학력은 국졸이 될 뻔했다. 그의 집안이 창녕 고암면에서 400여 년간 터를 닦은 명문가이자 지주였던 점을 감안하면, 검정고시를 거쳐 부산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 의원은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자랐다. 중학교 졸업 즈음에 선친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토지와 가풍을 지켜라’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고 상급학교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 의원은 18세 되던 해까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한문 공부를 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당시 동생들은 객지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한 번씩 고향에서 만나면 그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18세 되던 해 가출했고, 부산에서 신발공장을 다니며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15개월 만에 중고등 과정을 패스하고, 이듬해 대학에 입학한다. 유년 시절 접했던 한학이 학교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된 것이다.

김부영 경남도의원./박일호 기자

부친이 돌아가시고 가세는 기울었으며, 홀로 생활비를 벌어가며 사법 시험에 도전했으나 “항상 0.02% 부족했다”고 한다. 선배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근무하다가 가출한 지 20년 만인 2000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계팔리 이장 떴다”면 공무원들 긴장

농사짓고 소를 키우면서 두문불출했고 좋아하는 책도 봐가며, 고향인 계팔리에 안착하던 즈음이었다. 당시 창녕군은 잇따른 불법선거로 몸살을 앓던 때였다. “주위 친구들과 아는 분들이 동네 돌아가는 걸 뻔히 알면서 니가 침묵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들 하셨어요. 그리고 2005년부터 이장직을 맡았습니다.”

농촌 살리기 차원의 각종 정부 시책 사업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직접 문서를 작성해 면사무소에 제출하면 10∼20억 원대 사업비가 척척 내려오기도 했고, 동네 길도 하나씩 닦아 나갔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때 공무원들에게 찍혔다"고 했다. 시골 어르신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곧바로 군청이나 면사무소로 달려갔고, 법리 해석을 잘못하는 점을 지적하고 따지기를 수없이 했다. 30대 후반의 계팔리 이장이 관공서에 나타나면 공무원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부영 경남도의원./박일호 기자

창녕 군내 285명 이장의 구심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연소에 가까운 이장이었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주전자 들고 다니며 물심부름하면서도, 군내 이장들의 권리와 복리를 위해 ‘총대’를 메다 보니 신망 또한 두터워졌다.

2008년 조해진 국회의원의 선거 운동을 도우면서 이장직은 사퇴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승만 정권 시절 고무신 밀가루 선거보다 못한 선거를 해 왔더라고요. 입에 담기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창녕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고, 선거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발전은커녕 후퇴하기만 한 창녕을 새롭게 바꾸고 싶었습니다.”

도의원에 당선됐을 때 자신감이 넘쳤다. 고시 공부 경험도 있고, 모든 게 훤히 보이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제가 건방졌죠. 완전 초보 운전이었습니다. 제가 하면 남들보다 잘 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지역균형 발전에 정치적 생명 걸겠다”

김부영 의원은 요즘 예산 분석, 토목·건설 현장 전문지식, 그리고 지역분권 철학에 기반한 발전 방안을 등을 깊이 있게 연구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 균형발전에 정치적 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신공항 특위 부위원장 활동을 하면서 “가슴으로 울었다”고도 했다.

최근 김 의원의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가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그동안의 연구와 공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김 의원은 지난 3월 6일 경남도의회에서 ‘동남권 광역연합 추진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수도권 중심의 비대 권력에 맞서는 경남·부산·울산의 동남권 광역연합이 경남도의회에서 본격 논의되기에 이른 것이다.

김부영 경남도의원./박일호 기자

동남권 광역연합은 3개 시도가 공동의회를 꾸리고 연합지방정부 사무총장을 임명해 상호 업무 조율은 물론 공동의 사업을 추진하는 기구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큰 틀거리만 그려졌을 뿐 구체적인 역할은 채워 넣어야 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

3개 시·도가 벌이는 자원 분쟁과 비생산적인 경쟁을 해소함은 물론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안된 ‘동남권 광역 연합’구상은 지역민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여타 광역 지방자치단체와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3개 시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 부산에서는 이미 경남과 울산이 투항하는 것으로 해석하려는 분위기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연합이 구성돼도 특정 자치단체가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고 갈등이 발생하면 하나마나죠. 앞으로 경남도의회 특위에서 심도있는 연구를 해야하는 이유입니다.”

김 의원은 분권주의자이자 농촌 땅에 뿌리를 내린 고향 지킴이이기도 하다. 농민 도의원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있으며 그것을 곧 가족의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다. 창녕의 특산품인 양파와 마늘 농사는 물론 ‘100마지기(약 2만 평)’ 논농사도 짓고 있다고 한다.

“죽을 맛이죠. 새벽에 나가서 농사일하고 (의정활동 등으로) 밤늦게 들어오니 몸이 말이 아닙니다. 요즈음에는 비닐에 파묻힌 양파와 마늘을 뽑아내는 일에 정신없어요. 곧 못자리도 해야 하는데, 국회의원 선거도 있고 일이 태산입니다. 제가 바쁘니까 일꾼을 불러서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그것도 고충이고요.”

농사 규모는 전문 영농인에 버금가고, 의정활동 역시 활발하다. 이장 출신 농사꾼이자 도의원이라는 직함을 지닌 정치인으로서 김 의원이 풀어내고 있는 ‘지역정치’가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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