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주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남해군 어시장 봉정식당

눈부시게 맑은 아침이다. 막 비구름이 걷히고 해가 난다. 뜻밖의 따뜻한 햇볕에 마치 여름날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난다. 이때 김주완 편집장이 말한다. “나는 아직 술이 안 깼다.” 피곤한 얼굴의 국장과 함께 세 기자는 남해군으로 가는 길이다. 물메기탕을 찾아서. 기대하시라. 두둥.

남해 맛 자랑

가는 내내 김주완 편집장의 남해 자랑이 이어진다. 남해는 파래 무침에 물기가 많다거나 갈치구이를 특이하게 조선간장에 찍어 먹는다는 이야기다. 나름 미식가인 김 편집장은 요즘 고동우 차장의 등장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고 차장은 입맛이 무려 15등급이다. 이를테면 이승환 기자는 3등급(맛없다/맛있다/아주 맛있다), 이서후는 2등급(먹을 수 있다/없다)이다.

남해마을. /이서후 기자

승환 - 남해만의 유명한 음식이 있나요? 남해는 딱 뭐다!

주완 - 별로 없지. 아, 옛날에 봄 되면 동네에 장사치가 트럭에 생멸치를 싣고 와. 그걸 뭐라고 하지? 나무로 짜인 사각형 판자때기 있잖아? 우리는 그걸 학구라 그랬는데, 거기에 생멸치가 가득 차 있어. 그걸 가족이 많은 집은 두 학구 사고, 적은 집은 한 학구씩 사고, 그래서 멸치조림 해서 쌈밥도 해 먹고 그랬는데. 요즘 남해 식당에 멸치 쌈밥이 유명하거든.

동우 - 그럼 멸치 쌈밥의 원조를 이쪽이라 보면 되는가요?

주완 - 멸치 쌈밥의 원조는 오히려 남해보다는 통영이지. 통영이 하여튼 경남의 수산업의 중심기지거든.

서대 회무침./이서후 기자

동우 - 서대 같은 것도 꼭 남해가 중심인 건 아니죠?

주완 - 서대는 남해에서 많이 먹지. 남해에서는 제사나 명절 때 고기 중에 서대가 빠지지 않거든.

동우 - 전라도 쪽에서도 많이 먹는 걸로 아는데.

주완 - 전라도는 여수나 순천같이 남해에 인접한 곳에서 많이 먹지. 여수에 유명한 음식이 서대 회무침이야. 여수에서 먹은 서대 회무침은 식초가 좋더라고. 막걸리 식초라고.

동우 - 서대는 회무침으로 먹지 그냥 회로는 먹지 않죠?

주완 - 회로는 잘 안 먹지.

봉정식당./이서후 기자
수필가 사장님

오전 11시 20분 남해 어시장. 아침나절 왁자한 시간이 지나 한산하다. ‘식사하고 가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정겨운 시장이다. 그중에 봉정식당이라는 곳으로 들어간다. 오문자(63)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오문자 -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주완 - 한 보름 전에 와서 먹어보니까 그때 갈치구이를 먹었는데 갈치도 맛있지만, 이 밑반찬이 그냥 대충하는 게 아니고 하나하나 다 남해 음식 맛을 내더라고. 여기 사장님이 수필가야.

오문자 - 저 남해신문에 글을 쓰는데, 읽어보시면 다 시장 이야기, 내 이야기에요.

승환 - 글 쓰시는 거 좋아하시나 봐요?

오문자 - 네, 좋아해요.

주완 - 원래 수필이나 이런 거 쓰셨나요?

오문자 -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많이 쓰긴 했지요. 2007년 1월부터 정식으로 썼는데 김광석(남해시대신문 발행인) 씨가 우리 집에 식사하러 자주 오거든요. 시장에 재미난 일이 많은데 한번 써 줄까요? 그랬더니 써 보래. 그래서 한 번 썼어요. 그랬더니 계속 쓰래. 계속 쓰니까 손님들이 와서 글이 참 꾸밈이 없고 재밌네, 그러더라고.

주완 - 그러면 남해시대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거네요. 그전에는 안 썼고?

오문자 사장 /이서후 기자
오문자 - 그전에는 안 썼어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백마부대 청룡부대 등 월남 간 사람 많았잖아요. 그때 학교에서 위문편지를 무조건 쓰라 그랬거든. 반 애들은 글을 잘 안 쓸라 그러더라고. 내가 전부 도맡아 썼어요.

승환 - 글은 컴퓨터로 쓰시나요? 아니면 손으로?

오문자 - 손으로 써요. 컴퓨터는 생각은 있는데, 옛날에 학교 다닐 때 타자 부기 배웠는데 생각보다 손이 빨리 안 움직이더라고.

승환 - 신문사에 글 보내실 때 손으로 쓰셔서 팩스로 보내시나요?

오문자 - 아니요. 가지러 오라카지요. 하하하. 엊그제 쓴 걸 예로 들면, 시장에 아이들이 많이 와요. 그러면 전통시장에는 애들이 많이 오니 여기는 바로 학습장이다. 그런 식으로 주제를 잡고 쓰고. 시장 아줌마들이 또 싸움을 많이 해요. 그러면 그것도 유심히 봤다가 글로 쓰고. 손님 이야기도 귀담아들었다가 쓰고.

물메기탕. /이서후 기자

죽인다! 물메기탕!

우선 서대 회무침을 시킨다. 추가로 메기탕 2인분, 갈치구이를 해서 2인분씩 주문한다. 사장님이 열기 구운 걸 내온다. 열기는 돔 새끼(아니, 새끼 돔인가?)라고 할 수 있다.


오문자 - 밑반찬은 다 우리가 농사지은 거예요.

동우 - 아, 직접 지으신 거예요?

상차림. /이서후 기자

승환 - 다 농사지은 걸로 했구나. 다 사려면 그것도 돈인데.

동우 - 농사지은 건 다 여기 식당에만 쓰시는 거예요?

오문자 - 하모, 많이 안 하고 식당에 쓸 정도만 해요. 마늘은 많이 드니까 경매하는 데서 사고.

동우 - 그러고 보면 유럽의 유명한 식당들은 다 자기 농장을 두고 있더라고요. 재료 자체가 음식의 맛이기 때문에. 시금치도 맛이 예사롭지 않은데요. 이런 시금치는 정말 오랜만인데요.

상차림. /이서후 기자

주완 - 남해 시금치가 유명하지.

동우 - 아! 맞다. 남해 시금치가 유명하지. 맞아요.

(이때 물메기탕이 나온다.)

서후 - 겉으로 보기엔 멀건 게 그냥 풀 끓인 물 같은데?

동우 - 이거 바로 먹으면 되는 겁니까?

오문자 - 예, 그거는 오래 끓이면 안 돼요.

동우 - 음…. 국장님이랑 물메기탕 세 번째 먹는 건데 이 집이 제일 좋은데요. 처음이랑 두 번째는 물메기 특유의 맛이 안 났던 것 같고, 여기는 그 맛이 그대로 있네요.

서후 - (한입 뜨고) 아~ 이 탕을 먹으니까 어제 술을 안 먹은 게 후회되네.

오문자 - 물메기탕 개운하지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요.

동우 - 재료를 아낌없이 많이 쓰신 거 같네요. 육수를 어떻게 내십니까.

오문자 - 메기탕은 육수를 안내요. 이건 그냥 맑은 물로 해요.

동우 - 다시마 이런 것도 안 넣으십니까?

갈치구이. /이서후 기자

오문자 - 아무것도 안 넣어요. 그냥 맑은 물에다가 무하고 미나리만 넣어서 해요. 오히려 뭐 많이 들어가면 맛없어. 메기 그 맛으로 먹어야지.

주완 - 이 집의 비결은 대부분 직접 재배한 재료를 쓴다는 거야.

동우 - 물메기탕은 제철 아니면 서울 같은 데선 죄다 냉동이거든요. 다들 메기 맛 자체보다는 육수와 양념 많이 쓰고 해서 맛을 낼 수밖에 없는데, 여기는 깜짝 놀란 게 그냥 메기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맛이 난다는 거죠. 그럼 물메기는 시장에서 바로 잡아서 요리하시는 거네요?

오문자 - 예, 요 앞에서 바로 살아 있는 고기를 잡아요.

주완 - 바로 여기가 어시장이니까.

오문자 - 우리는 뭐 미리 사서 냉동실에 넣을 필요도 없어. 바로 옆에 어시장이 있으니.

받들 봉 머물 정

우리 말고 손님이 들어온다. 갈치조림됩니꺼? 예 됩니더! 주방으로 나서는 사장님을 따라가 본다. 테이블이 있는 공간과 방이 있는 공간 사이 시장 통로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주방이다. 주방기구가 벽을 기대 줄을 서 있다. 이쪽 벽에는 구이가 다른 쪽에는 탕이 끓는다.

봉정식당. /이서후 기자

주완 - 어데 여고, 나왔는데요?

오문자 - 진주 선명여상. 친정이 진주거든.

주완 - 우째 남해로 시집을 왔어요.

오문자 - 남해 얼마나 좋아요!

주완 - 신랑은 어떻게 만났는데요?

오문자 - 신랑은 중매로.

주완 - 만나보니 남해 사람이었나 보네?

오문자 - 남해 사람 얼마나 좋다고! 그래 갖고 아들딸이 몇 갠가 압니꺼? 8남매예요. 근데 남해에는 하나도 없고 전부 다 서울 있어. 애들이 다 얼마나 예쁜지 어디 나가면 영화배우 왔느냐 그래. 막내가 인자 대학 졸업했다.

서후 - 식당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오문자 - 18년 전에.

서후 - 그럼 그전에는 농사를 지으셨어요?

오문자 - 전에도 여기 시장에서 옷가게 했지. 애들을 키우다 보니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랬는데 처음에는 조금만 하고 말라 했는데 하다 보니 장사가 잘되더라고. 그래 하다 보니 올해 18년째 하고 있다.

서후 - 그럼 음식 솜씨가 좋으신 거네요. 사람들이 인정한 거잖아요.

오문자 - 특히 아침에 손님이 많아요. 공 치러 가는 사람도 많고 노가다하러 가는 사람도 많고 시장 아줌마도 많고 낚시 가는 사람도 많고.

오문자 사장과 이승환 기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이서후 기자

승환 - 그럼 8남매는 식당으로 다 키운 거예요?

오문자 - 애들 아빠가 공무원 생활을 오래 했어요. 거기서 돈도 나오고. 지금은 집에서 농사지어요.

서후 - 식당 이름 봉정은 무슨 뜻이에요?

오문자 - 받을 봉, 머물 정!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서후 - 어머니가 지으신 거예요?

오문자 - 예.

서후 - 집이 이 근처세요?

오문자 사장. /이서후 기자

오문자 - 우리 집? 촌인데 요서 한 3㎞ 가거든요. 아침에 4시 일어나서 5시에 우리 집 아저씨가 태워주고 저녁에 한 8시 마치면 태우러 오죠.

동우 - 아까 막내가 대학 졸업했다 하셨나요?

오문자 - 졸업해서 취직했어요.

동우 - 그럼 이제 식당을 그만두셔도….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요.

오문자 - 집에 있으면 농사밖에 더 짓나.

동우 - 아니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요. 새벽에 나오고 그래야 하니까.

오문자 - 피곤하고 힘들다 그런 맘은 전혀 없어. 손님들하고 이야기하고 하면 얼매나 재밌다고.

다 먹고 나오는데 어머니가 살아 있는 문어 몇 마리를 양동이에 담고 있다. 그런데 문어가 양동이를 타고 넘는다.

서후 - 도망간다! 도망간다!
오문자 - 도망가면 이렇게 잡아넣으면 되지.

서후 - 어! 또 도망간다!

문어는 싱싱하고 힘이 넘친다. 이게 바로 봉정식당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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