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를 닮은 충무공이 여기 있다

239.17㎢로 면적이 경남에서 가장 작은 지자체 통영. 이 작은 곳에 이야기는 넘쳐흐른다.

이 지역 사람들은 통영 얘기를 하는 데서 "식상하더라도 이순신을 빼면 설명이 안 되죠"라고 한다.

제승당·세병관·충렬사·착량묘…. 이 가운데 착량묘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해저터널을 사이에 두고 잘 드러나지 않은 얘기를 품고 있다.

1598년 이순신 순국 후 나라에서는 그의 사당을 따로 짓지 않았다. 3년이 지나서야 여수에 사당을 만들었다. 이순신만이 아닌 공동 사당이었다. 조선이 이순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6·25전쟁 중에 건립된 남망산 공원 이순신 장군 동상. /박민국 기자

지역민들은 참 비교가 된다. 이순신 순국 이듬해 민초들이 직접 나섰다. 이순신 위업을 기리고 기신제를 모시는 작은 초가집 한 채를 지었다. 착량묘 시초다. 300년 후 고종 임금 때 이순신 직계 후손인 이규석이 통제사로 오게 되는데, 초가집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1877년 기와집으로 고쳐 만들었다.

착량(鑿梁)이란 '파서 다리를 만들다'라는 뜻으로 당포해전에서 참패한 왜군들이 도망가다 미륵도-통영반도 사이 협곡에 돌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달아난 데서 붙여졌다.

이러한 착량묘 바로 밑에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해저터널이 있다. 통영∼미륵도를 연결하는 동양 최초 바다 밑 터널로 1931년 착공해 1년 4개월 만에 완성됐다. 길이 483m·너비 5m·높이 3.5m. 바다 양쪽을 막고 그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로 만들었다. 해저터널 이용 계획서에는 예상 연간교통량을 사람 9만 명·우마차 1000대·자전거 100대·자동차 1000대·가마 1000거로 기록해 놓았다.

해저터널은 통영∼미륵도를 연결하는 터널이지만 이전에도 썰물 때에는 도보로 오갈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어민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또 다른 배경이 숨어있다.

한산해전에서 이순신 장군 손에 숨을 거둔 일본 송장이 이곳에 얼마나 쌓였는지 송장목이라고까지 불렸다 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자기 조상 뼈가 묻힌 곳을 조선인들이 밟고 지나가면 안 된다 해서 해저터널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1931년 착공해 1년 4개월 만에 완성한 해저터널. /박민국 기자

이순신 최초 사당 착량묘, 바로 그 아래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해저터널…. 한일 역사의 묘한 교차점이라 할 만하다.

착량묘와 같이 민의 마음이 담긴 또 다른 것이 있다. '통영의 남쪽을 망보던 산'인 남망산공원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통영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건립했다.

이를 두고 이곳 사람들은 말한다.

"이순신의 여러 동상이 있지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담긴 동상입니다. 민초 마음이 새겨 있으니까요."

그곳의 이순신은 지금까지 한산도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 사람들은 이순신에만 마음을 준 것이 아니다. 김춘수 시비·청마 흉상 같은 것도 주민 손에서 만들어졌다.

통영이 예향이라는 것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300년간 이어진 궁중 고급문화, 십이공방 발달에 따른 장인정신, 경제적 여유로움과 아름다운 풍광…. 이런 역사적 뿌리와 사회적 풍토 속에서 배출된 수많은 예술인. 윤이상 기념관·윤이상 거리, 박경리 기념관, 청마문학관·청마거리, 전혁림 미술관, 김춘수 유품전시관, 초정 김상옥 거리에서 그 기운을 느끼게 된다.

윤이상 기념관은 도천테마파크에 있다. 처음 찾는 이들은 가기까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윤이상 기념관'이라는 표지가 없다.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 한 느낌이다.

통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최정규(61) 시인은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껄끄러운 부분도 있고 하니…"라는 답을 주었다.

도심지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유인도 44개·무인도 482개가 점점이 펼쳐져 있다.

윤이상 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그가 생전에 타던 자동차. /박민국 기자

박태도(57) 통영시 관광과장의 표현은 이렇다.

"위에서 보면 수제비 반죽 뚝뚝 던져놓은 것 같아요."

최근 500만 명을 돌파한 미륵산케이블카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박정욱(56) 통영시티길라잡이는 또 이렇게 말한다.

"직선적인 미는 조금만 지나면 싫증 납니다. 동해에 처음 가면 좋다고 하지만, 조금 지나면 눈 안가잖아요. 통영은 수평선에 섬…섬…섬…. 이렇게 직선과 곡선이 혼재해 있는 곳이에요. 같은 섬도 보는 각도에 따라 또 바뀌죠. 높이만 좀 달라도 또 다르게 보이죠." 

민초들이 직접 만든 이순신 장군 사당을 기와집으로 고쳐 지은 착량묘. /박민국 기자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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