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서 50년 넘게 지낸 한 주민은 "한때 50개 넘던 다방이 이제는 11개밖에 안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읍내 군청 주변에는 '다방'이라는 글자가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11개는 더 되겠는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침 목도 타고, 취재 동선도 짤 겸 해서 다방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왕이면 시골 다방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2층에 자리한 어느 한 곳에 눈길이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방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부업체 사무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컴퓨터는 켜져 있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싸한 느낌이 들어 후다닥 뛰쳐나왔습니다. 나와서 다시 보니 '직업소개소'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실패를 두 번 경험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하며 함양읍 주변을 계속 돌았습니다. 한 곳을 찍었는데 박민국 기자는 "내가 보면 아는데, 저기는 아닌 것 같다"며 과거 다방깨나 다녔음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지하에 있는 어느 다방을 택했습니다.

함양읍 어느 지하다방에서 잔일을 처리하고 있는 박민국(왼쪽)·이승환 기자./남석형 기자

네댓 개 테이블 중 우리는 널찍한 중앙 테이블에 자리를 틀었습니다. 음악은 들리지 않았고, TV 소리가 적막감을 깼습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다방 여주인은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을 만큼 손님을 대했습니다. 지하 혼자 있는 가게에 낯선 남자 3명이 온 것에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싶어 우리는 들으라는 듯 일 얘기를 크게 했습니다.

테이블에 차가 석잔 놓이고, 담배 연기가 자욱해지니 제법 다방 분위기가 났습니다.
이 집은 배달은 하지 않고 가게 영업만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쓰지 않고 혼자 꾸려가는 곳이었습니다.

주인은 "이젠 다방 장사 재미없죠. 함양에 7~8개밖에 안 돼요"라고 했습니다. "11개는 더 될 것"이라는 우리 신념도 흔들렸습니다.

냉커피 한잔 5000원, 뜨거운 커피 두잔 6000원, 모두 1만 1000원을 찻값으로 치렀습니다.
시골 다방에서 에너지를 충전한 우리는 일두 정여창 고택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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