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에 담긴 지역문화]인분으로 키운 함양 흑돼지 화장실·축사 동시 해결

함양에서 내로라하는 먹을거리에도 험한 지형과 이로 인해 넉넉하지 못했던 삶, 그리고 정신적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 흑돼지 = '서울 사람들에게 맛보였더니 환장하더라'는 함양 흑돼지. 중국 북부지역에서 사육되던 몸집 작은 재래종이 고구려 때 들어온 것이 유래라 전해진다.

함양 흑돼지 하면 인분 먹여 키운 '똥돼지'로 곧 귀결된다. 사실 똥돼지는 중국·일본, 그리고 국내에서도 함양뿐만 아니라 산골 곳곳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땅이 넉넉지 못한 산골에서는 재래식화장실·축사 두 공간을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특히 인분·돼지배설물·볏짚이 함께 어우러져 더없이 좋은 거름이 생산됐다. 똥돼지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 여건에 의해 똥돼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흑돼지는 흰돼지에 비해 천천히 자라 상대적으로 질감이 좋다. /박민국 기자 

이러한 똥돼지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 지붕개량·위생 문제 등이 대두하면서 전국적으로 자연스레 사라졌다는 얘기가 있다.

반갑게도 함양 마천면 실덕마을에 가면 그 흔적뿐만 아니라, 실제 똥돼지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40년째 살고있는 방영호(48) 씨는 유독 함양, 특히 마천면에서 똥돼지 명맥이 이어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천면은 지리산을 낀 깊은 산중에 있어 농토가 좁은 특징이 있다. 농토가 적다 보니 다른 지역보다 생활도 어렵고 개발도 덜 됐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것보다는 예전 것이 좀 더 오래 남게 되면서 지금까지 똥돼지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시중에 유통되는 함양 흑돼지는 모두 사료 먹인 것들이다. 같은 사료를 먹이더라도 흑돼지는 흰돼지에 비해 천천히 자라 상대적으로 질감이 좋다. 특히 마천 흑돼지는 찾는 이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등급이 낮게 나온다. 이유는 이 지역에 철분이 많은 것에서 설명된다. 철분 많은 물을 먹은 탓 혹은 덕택에 기름기가 덜 끼어 마블링이 덜 형성되기 때문이다.똥돼지는 기껏 1~2마리밖에 키우지 못한다. 대량생산 시대에 경제성은 이미 상실했다. 그냥 주변 부탁을 받고 특별히 키우는 정도를 넘지 못한다.

함양군 마천면 실덕마을에서 만난 옛날 똥돼지. /박민국 기자

◇ 어탕국수 = 풍족함과 거리 먼 생활은 어탕국수를 낳기도 했다. 김성진(77) 함양문화원장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6·25전쟁 후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강에서 물고기 잡으면 국수를 넣어 끓였다. 아마 함양에서 최초로 했을 것이다. 못살고 영양실조에 걸리던 때 아니냐. 생산량이 많지 않으니까 탕으로 끓이고 국수를 넣어 최대한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어탕국수가 식당 메뉴로 나온 것은 30년 전쯤으로 이 역시 함양이 최초였다는 얘기가 있다. 어탕국수 전문점 '조샌집'을 운영하는 임명자(68) 할머니 얘기다. "지금이야 여기저기 있지만, 30년 전 내가 시작할 때 함양에 한집 있었다. 그 집도 내가 하기 1년 전에 시작한 것으로 들었다. 산청은 함양보다 뒤에 생겼지."

그럼에도 최근에는 어탕국수 하면 함양보다는 산청이 더 자연스레 연상된다. "함양사람은 자기 것을 홍보하고 알릴 줄 모른다"는 자신들 얘기가 답이 된다.

◇ 안의갈비탕 = 함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안의갈비탕에도 독특한 얘기가 있다. 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가면 함양의 정신적 토대인 효 문화가 스며있다. 안의면에는 '효자백정조귀천지려(孝子白丁趙貴千之閭)'라는 전국 유일의 백정비가 있다. 글공부하던 조귀천이라는 젊은이가 눈먼 아비를 위해 백정을 자처, 소간 1000개를 봉양해 마침내 눈 뜨게 했다는 전설이다.

근자에는 면 단위치고는 큰 우시장이 있어 자연스레 갈비탕·갈비찜 집이 형성됐다. 특히 안의갈비탕은 40년 전, 이웃 거창 부군수가 그 맛에 반해 문턱이 닳도록 찾은 것이 입소문 타며 유명해졌다고 한다.

현재 안의면에는 예닐곱 가게가 저마다 '갈비탕 원조, 갈비찜 원조'라는 이름을 내걸고 손님의 80~90%인 외지 사람에게 손짓하고 있다.

◇ 솔송주 = 함양만의 조금 더 특별한 것을 찾으면 이곳 사람들은 '솔송주'를 주저하지 않고 꼽는다. 원래 이름은 '송순주'지만, 주조 허가 과정에서 '솔송주'로 바뀌었다. 일두 정여창 선생 가문에서 500년 가까이 이어 내려오는 전통명주다.

이 집안에서 빚은 술을 한잔 더 얻어먹기 위해 애교 부리는 사람까지 있었을 정도로 입에 쩍쩍 달라붙었다고 한다.

술맛에 빠진 이들이 "좀 많이 만들어라"고 하도 아우성쳐 이 집안 며느리 박흥선(52·경남지방무형문화재 제35호) 선생이 18년 전 상품화했다. 박 선생은 고려시대~조선시대 술을 복원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청와대 초청을 받아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건배사까지 했다. 아쉽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 해야 할지, 박 선생은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한다. 자신이 만든 술은 혀끝으로만 살짝 맛볼 뿐이다.

함양은 협곡 탓에 농특산물을 대량생산하지 못하지만, 맛에서는 최고임을 자부한다. 그 원천을 게르마늄에서 찾는다. 이태식(51) 함양군 문화관광과장 말이다. "항암 작용을 한다는 유기 게르마늄이 백두대간을 타고 함양 땅에 형성돼 있다. 똑같은 딸기라도 당도가 높고, 똑같은 상태에서 보존하면 우리 것이 훨씬 오래간다."

소량으로 생산하는 양파·사과·딸기·산양삼, 그리고 마천면 중심인 토종꿀·곶감·장뇌삼·고로쇠수액은 이 지역민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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