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창녕 ‘따오기 자연학교’ 이인식 교장

여러 가지 단체 활동도 접고 30년 넘는 교직 생활도 접고 이태 전에 우포늪이 있는 창녕군 유어면 세진 마을로 들어간 이인식 선생. 그이는 지금 들어간 마을에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어디든지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운동이 제대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이가 하려는 운동은 마을 어르신과 함께 자연학교를 운영하고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는 생태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고향 세진 마을을 떠나 사는 자식들의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마을 어르신들이 교사로 참여해 가르친다. 옆에서 보기에는, 조금씩 뿌리가 내려지는가 보다.

창녕 세진 마을에 스며들다

이인식 선생을 만난 날은 3월 25일 일요일이었다. 이 날 일본 손님을 맞았다. 선생은 알려진대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신이다. 그 때 인연이 이어져 18년째 교류를 하고 있는 일한합동수업연구회 유키오 요시모토(善元 幸夫) 대표 일행이다. 명지대학교 일본어과 강사로 있는 재일동포 3세 윤조자씨도 함께 했다. 윤씨는 의령이 친정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이를 한일합동교육연구회라 이른다.

이번 걸음은 3월 23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2012 합천 비핵ㆍ평화대회' 참가가 목적이었다. 합천에서 행사를 마친 다음 창녕 유어 세진 마을 이인식 선생을 찾은 것이다. 유키오 요시모토 대표는 지난해 8월 5~8일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17차 교류회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의 피해와 2011년 3월 터진 후쿠시마 쓰나미와 핵발전소 폭발은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에까지 큰 충격을 준 역사적 사건이며 생명과 인권, 평화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학습해야 한다”는 발표를 했다.

우포늪 들머리 한 밥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선생이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창녕군 유어면 세진마을에 있는 그 집은 들머리 담장부터 달랐다.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시도 한 편 적혀 있었다.

‘누가 이 낱말을 만들었을까?/ 누가 땅 위에 흙을 덮었을까?/ 누가 모기들을 만들었지?/ 누가 피에로를 만들었나요?/ 누가 태양을 노랗고 하늘을 파랗게 칠해놓았을까?/ 누가 바다에 물을 담았지?/ 왜 내가 우는 걸까요?/ 누가 포크를 만들고 숟가락을 만들었을까?/……’

창녕 따오기 자연학교 이인식 교장./김훤주 기자

이인식 선생은 이 집을 빌려 살고 있다. 허름한 한옥을 일부 고치고 그 대가로 빌렸다. 짚으로 만든 삼태기랑 그릇 따위가 곳곳에 놓여 있었다. 대청마루에도 쓰다 남은 물건들이랑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만든 여치집 같은 공예품들이 가득했다. 마당에는 바지랑대가 받치고 있는 빨랫줄이 쳐져 있었다. 또 커다란 개도 한 마리 있어서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날뛰고 있었다. 사람이 반가워 그런 모양이었는데 사납지는 않았다. 선생이 목줄을 풀어주자 신나게 돌아다녔다. 저 쪽 개집 앞에 있는 개밥그릇에 먹이를 주니 눈 깜짝할 새 핥아먹어버렸다.

창녕 따오기 자연학교 이인식 교장과 개 '해피'./김훤주 기자

선생은 개 이름이 행복이, 해피라 하면서 “주로 행복하고 때로 성가시다”고 했다. 개 때문에 어쩌다 귀찮기도 하지만 개로 말미암아 누리는 재미가 작지 않다는 얘기였다. 이인식 선생이 잠자는 사랑채는 길게 옆으로 트여 있었다. 사랑채에 있던 방 두 칸을 터서 하나로 만든 모양이다.

바깥바람을 막기 위해 창틀을 비닐로 감싼 사랑채 앞에서 선생은 말했다. “한꺼번에 열 명은 잘 수 있어요. 아이들이 오면 여기서 함께 자고 놀고 공부하고 하지요. 잠자기 전에 아이들이랑 아궁이에 불도 때지요.”

우포늪 가에서 ‘따오기 학교’ 만들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 담벼락에서는 ‘따오기 학교’라 새긴 나무 현판이 걸려 있다. 2010년 8월 31일 명예퇴직을 하기까지 33년 동안 정규 학교에서 교사로 있던 이인식 선생이 여기에 마련한 주말 학교다. 아이들 11명 안쪽으로 받아 1박2일을 함께 지낸다.

따오기 학교 이인식 교장은 1953년 창녕에서 났다. 고향은 지금 사는 데가 아니다. 들어와 살기 시작한 때는 명예퇴직을 하던 해 8월 1일이다. 선생은 평생을 교육운동과 환경운동을 하면서 살았다. 지난 성과를 바탕 삼아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거점으로 지금 여기를 잡았다.

선생과 우포늪은 관련이 깊다. 우포늪 지키기 운동은 1996년 어름에 이인식 선생이 처음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우포늪은 거의 버림받은 땅 취급을 받고 있었다. 원래부터 가치로운 습지였던 이곳이 제 값어치를 인정받아 오늘날 이런 정도로 보전되도록 만든 데는 이인식 선생의 이바지가 적지 않다.

여기서 선생은 두 가지를 꿈꾸면서 실행하고 있다. 습지 복원·생물 다양성 복원을 위한 모델 만들기가 하나다. 선생은 밤낮 없이 우포늪 일대 모니터링에 열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관련 자료와 정보를 모아 우포늪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복원하는 데 기초 자료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른바 환경인식증진= 자연 생태 교육의 새 지평 열기가 다른 하나다. 평생을 교사로 지내왔지만 학교 안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학교 밖 현장에서 실현해 보겠다는 얘기다.

창녕 따오기 자연학교 이인식 교장./김훤주 기자

해를 따라 살면서 모니터링 하다

이인식 선생의 일상은 단조롭다. 해를 따라서 한다. 해를 시계로 삼는다는 말이다. 새벽 5시 50분 즈음해 눈을 뜨고 일어나서는 우포늪으로 모니터링을 나간다. 다음에는 오전 10시~10시 30분 가까운 밥집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은 다음에는 집에서 자료를 정리하거나 글을 쓰거나 요청 받은 강의에 나갈 준비를 한다. 다시 오후 4시~5시 오전에 갔던 밥집에 가서 저녁을 먹은 다음 다시 우포늪으로 나가 밤이 깊을 때까지 모니터링을 한다.

모니터링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하루에 움직이는 거리가 적게는 5km, 많으면 15km남짓 된다. 보통은 8km안팎이다. 이러니 단조로운 일상이라고 할만하지만 사실은 전혀 단조롭지 않다. 모니터링 나가는 현장이 날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현장에 나가더라도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이 또 날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죽 둘러보면서 모니터링을 하기도 하고 특정 지점에 고정해서 계속 모니터링을 하기도 한다. 어떤 야생동물이 나오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눈여겨보고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이다. 이런 모니터링은 선생의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우포늪 일대에서 시도되는 따오기 복원을 위해서도 소중한 자료가 되리라고 본다.

이런 식이다. 그이가 살그머니 보이지 않게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한 채로 이를테면 대대제방에서 고라니가 몇 마리 나타나고 멧돼지는 몇 마리나 돌아다니고 두루미가 어떻게 옮겨다니는지 살핀다. 이렇게 계속해서 지켜보면서 그런 동물들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지 아닌지도 관찰한다. 이렇게 나름대로 철두철미하게 관찰하면서 결과를 페이스북에도 올린다.

이런 활동을 두고 정부나 자치단체 지원을 받아 해보라는 권유나 제안이 있었지만 선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유롭게 하고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고? 연금이 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한 번 파면됐다가 복직됐기 때문에, 금액은 정상보다 절반이지만 먹고사는 데는 충분하다.

아이들 불러모아 마을 어르신을 교사로…

다른 한 축은 따오기자연학교와 이를 통한 자연 생태 교육이다. 명예퇴직 이전인 2007년부터 비슷한 일을 해오다 2011년 3월 12일 문을 열었다. 주말 기숙학교라 보면 된다. 전통 방식 모내기라든지 아궁이에 불 때기라든지 도끼로 장작 패기라든지 감자 심기라든지를 몸소 겪게 한다.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아이들을 모아 이렇게 한다. 아이들은 선생의 주말 모니터링에 조수로 활용되기도 한다. 함께 모니터링을 나가 철새가 몇 마리나 되는지 세어보게 하고 거기서 본 풍경이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을 가르치고 마을 어른들이 살아온 삶을 익히게 하는 셈이다.

지역 아이를 최우선 대상으로 하고 창원이나 울산 같이 멀리 떨어진 데서 오는 아이도 있다. 자유롭게 오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받는다. 아이들이 성가시지 않으냐는 물음에 선생은 명답을 남겼다. “대부분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때로는 나를 거추장스럽게 합니다.”

앞서 집에서 키우는 개 ‘행복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했었다.

선생은 이를 두고 이렇게 글로 표현한 적이 있다. “지난 33년의 교단은 ‘한여름밤의 꿈’이었지만, 지금은 짧은 주말의 1박 2일 프로그램이지만 현실로 하나씩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 꿈꾸어 왔던 자연에서 스스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지요.”

보람이 넉넉하게 짐작되는 글이다. 올해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올해 봄방학 때는 3박4일로 마을에서 캠프를 했다. 동네 어르신도 함께하고, 그 어르신들 손주손녀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20명 규모로 마련한 세진마을 생태학교였다.

“할아버지가 닥나무 껍질을 가마솥에 삶아 채를 만든 다음 팽이를 돌립니다. 당산제도 했습니다. 일부나마 몇 십 년만에 재현했습니다. 자식들은 다 나가 살고, 그 아이들은 사촌도 모르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왔다가도 그냥 휑하니 가버리잖아요. 이렇게 동네 어르신들 참여하는 가운데 즐겁고 재미나게 보내면서 친척 관계도 알게 되는 효과까지 거뒀지요.”

선생이 이렇게 시골에 들어와 사는 까닭은 그동안 교육운동을 하면서 품었던 아쉬움 때문이다. 생태 복원을 하고 보전을 하려 해도 지속되지 않았다. 마을 이장이 나름대로 잘해 왔어도 바뀌고 나면 끝장이었다. 새 이장이 협조하지 않으면 그랬다. 안에 박힌 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인식 선생은 운동과 인생의 종착점을 이것으로 삼아야겠다고 여겼다. ‘내가 뿌리내리지 않으니까 제대로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사니까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 전체가 마을을 떠난 자식들과 그들의 자식까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우포늪을 전문적으로 소개·안내하는 일을 한다. 짤막한 소개나 간단한 안내를 맡아 할 사람은 주변에 많지만 밤샘을 한다거나 새벽 또는 늦은 밤에 우포늪 현장에 나가 그에 알맞은 해설과 함께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런 요청은 대부분은 그이 몫이다.

마을기업 ‘집 속의 집 우포늪 감동공간’ 준비

창녕 따오기 자연학교 이인식 교장./김훤주 기자

이인식 선생은 마을기업도 하나 준비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생태도서관이다. 세상살이나 운동 과정에서 지치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어린이나 가족이 와서 우포를 느끼도록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름은 ‘집 속의 집 우포늪 감동공간’이라고 지어놓았다. 가까운 대지면 관동 마을에 퇴직금을 헐어 9000만원 들여 사놓은 500평 크기 창고가 바탕이다. 커다란 창고 건물을 그대로 살리고 그 안데 필요한 게스트하우스랑 도서관 건물을 지어넣으니까 ‘집 속의 집’이라 한다.

개인 소유로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이를 출연해 비영리법인으로 따오기재단을 만들려고 한다. 공동소유로 한 다음 동네 주민 등을 재단 이사로 모시고 완벽하게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우포늪에 온다고 할 때 책이나 텔레비전으로 사전 공부를 하지 말라 합니다. 책이나 텔레비전은 우포늪에서 좋은 장면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거든. 그런데 실제 우포늪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니 기대만 잔뜩 하고 왔다가 실망하고 갑니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라는 것입니다. 자연 체험 학습 가운데 야생 동물 체험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다른 체험 교육은 머리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한데, 야생 동물 경우는 오래 관찰하고 경험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거든요. 우리나라서는 제대로 하는 데가 한 군데도 없다고 할 정도지요. 여태 우포늪 일대에서 너구리를 관찰한 경험을 바탕삼아 이를 몸으로 표현하고 누려보는 너구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합니다. 한편으로 뒹굴뒹굴 놀고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해서 자연을 익히도록 하자는 얘기입니다.

다행히 정부 지원을 일부 받을 수 있게 됐어요.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지을 사람은 어떻게 구하느냐고요? 페이스북이 해결해 줬습니다.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을 올리니까 어떤 사람은 추천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원을 했어요. 자원 봉사 개념으로 젊은 실험 건축가들이 하기로 돼 있습니다. 하하.”

이인식 선생은 페이스북 친구가 1700명 안팎인데 이 소통하는 공간은 선생에게 커다란 자산이기도 하다. 여기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 평균 50명 가량이 ‘좋아요’를 눌러준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공감이 표현하는 셈인데, 이것이 앞서 말한 것처럼 선생이 일을 해나가는 데 힘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 달에 50만원으로도 살아지더라고요”

인터뷰를 마칠 즈음해서 돈이 무엇이라고 여기시는지 물어봤다. 조금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잠깐 생각하더니 “명분이 있으면 돈이 있고 명분이 없으면 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명분이 있으면 일을 기획해 사람을 설득할 수 있고 그러면 돈이 생기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니까 선생에게 돈은 목적이 아니라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수단 정도인 모양이다.

선생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그리고 마산교사협의회와 경남교사협의회)를 시작으로 운동에 나섰다. 전교조가 결성된 해인 1989년 해직됐다가 1994년에 4년 8개월만에 복직됐다.

해직돼 있던 동안 선생은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마산창원 공해추방운동연합의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마산창원 시민연합이라는 단체의 사무처장도 했다. 마산 청소년의 전화도 경남대학교의 강정기·김종덕 교수와 함께 만들었으며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지역에 꽤 영향을 미친 민간 도서관인 책사랑 탄생에도 이바지했다. 책사랑을 하는 데 3000만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없는 살림이었는데도 600만원을 선뜻 내놓았던 것이다.

“혈기 왕성한 시절이었으니 열심히 했습니다. 2010년에도 제가 맡고 있던 단체 대표가 여남은 개였습니다. 명예퇴직하면서 싹 다 정리했습니다.”

창녕 따오기 자연학교 이인식 교장./김훤주 기자

지금 선생은 아내와 자녀랑 떨어져 혼자 지낸다고 했다. 불편하지 않으시냐 물으니까, “이게 아무래도 좋은 것은 아닌데, 그냥 혼자 사는 데 익숙해져버렸어요”라며 웃었다.

이인식 선생은 이렇게 버리고 우포늪이 있는 세진마을로 들어와 살고 있다. “일상을 단순하게 해 놓으니까 한 달에 40만~50만원으로도 살아지더라고요. 15년 된 갤로퍼 자동차가 있기는 하지만 나다닐 때는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걷습니다. 돈 쓸 데가 별로 없어요. 게다가 연금 말고도 이런저런 강연이나 기고, 자문에 따른 수입도 있으니까요.”

지금 맡고 있는 직책은 셋뿐이다. 우포늪따오기학교 교장과 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공동대표와 우포늪 따오기 복원위원회 위원장. 따오기학교는 지금 여기 들어와서 하는 일이고 이 일을 하기 위해 이름을 걸쳐놓은 것이 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공동 대표다. 그리고 우포늪 따오기 복원위원회 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서 따오기를 들여와 여기 창녕 우포늪에 복원하자고 주장한 데 따른 것으로 그냥 명예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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