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생물의 특성 중 하나가 자기 복제이다. 길거리에 보이는 수많은 돌멩이들은 자신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자기 복제라는 방법을 택하지는 못한다. 반면에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자기 복제 수단으로 성행위를 하며, 인간은 특히 쾌락의 수단으로서 섹스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화류병(성병)이라는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20세기 초 한 보고서는 정신병동에 수용된 환자 3분의 1이 매독 희생자라고 밝히고 있다. 1911년 미 국방성 보고서는 해군의 25%가 성병을 앓았으며, 이 가운데 임질이 가장 많고 매독이 두 번째라고 밝혔다. 당시 유럽에서는 성인의 10% 이상이 성병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매독을 비롯한 성병 감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매독(Syphilis)은 스피로헤타과(Spirochaetaceae)에 속하는 트레포네마 팔리둠(Treponema pallidum)이라는 나선 모양의 세균에 의해 유발된다. 'Syphilis'라는 용어는 1530년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내과의사인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Syphilis sive morbus gallicus>라는 제목의 라틴어로 쓰인 자신의 서사시에서 'syphilis'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당시 매독은 혐오의 대상으로 이탈리아·독일에서는 '프랑스 질병'으로,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질병'으로 불렀다. 매독은 초기 단계에서 천연두(smallpox)와 비슷한 발진을 나타내, 16세기 때 매독과 천연두를 구분하기 위해 매독을 'great pox'라 부르기도 하였다.

1909년 독일의 의사이자 과학자인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박사는 놀라운 신약 하나를 발견했다. 그 신약을 소개하는 기사가 <뉴욕 타임스> 등 많은 신문에 보도됐지만, 이상하게 그 약이 무엇을 치료하는지 밝힌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그 중 가장 구체적인 설명으로 "수백 년 동안 인류의 재앙이 되었던 병"이라고 언급한 기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 질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독자들은 길거리 소문을 통해 그 약이 무슨 병을 치료하는 것인지 알아야만 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사람들은 '매독'이라는 말만 들어도 움츠러들었으며, 매독이라는 말을 감히 사용하지도 못했다. 이런 점에서 거대 신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만큼 매독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파울 에를리히 박사는 제자인 일본인 과학자 사하치로 하타(Sahachiro Hata)와 함께 매독에 감염된 토끼를 이용해 여러 종류의 비소와 관련된 화학물질을 검사하던 중 606번 합성물인 아르스페나민(arsphenamine)이 매독에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1910년 4월 19일 에를리히 박사는 독일에서 열린 국제의학회의에서 강연을 했다. 수많은 과학자가 그의 강연을 들으려고 비스바덴(Wiesbaden)의 행사장에 모여들었다. 그의 연설을 듣고 있던 과학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자신의 강연에서 '쾌락이 선물한 잔혹한 형벌' 매독의 치료제를 개발한 사실을 밝힌 것이다. 아르스페나민은 살바르산(Salvarsan)이라는 상표명으로 1910년부터 임상에 사용되었으며, 1912년에는 독성을 개량시킨 네오살바르산(Neosalvarsan)으로 개발되어 시판되었다. 그 후 살바르산은 페니실린이 나올 때까지 30년간 매독 치료제로 사용되었다.

   
 

살바르산의 발견은 설파제와 페니실린을 비롯한 항생제 개발의 유도에 기폭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성병 치료용 항생제의 중요성도 동시에 부각시켰다. 오늘날 우리들의 건강한, 그리고 축복된 성생활은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기인됨을 평소에 몇 사람이나 인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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