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마산 문화유산 보존 앞장서는 경남대 유장근 교수

진정 '마산다운' 마산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7대 도시의 옛 영광을 되찾는 것? 서울처럼 우후죽순 높은 빌딩을 세워 으리으리한 도시로 만드는 것? 이와는 정반대로 100년도 더 된 근대 마산의 옛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과거에 대한 동경이나 향수 따위 때문이 결코 아니다. 유장근 경남대 교수는 그것이 쇠락해가는 이 도시를 살리고, 번창하게 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저도 그쪽엔 가기가 싫어요, 삼광청주…."

공기 좋고 먹을거리 넘치는 마산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로 화기애애할 줄 알았던 인터뷰 분위기는 시작부터 천근만근이었다. 마산 등 경남지역의 문화유산 보전을 위한 활동을 펼치는 유장근(60) 경남대 사학과 교수(경남문화자원관리포럼 회장)를 만나기 전 취재진은 철거가 진행 중인 마산합포구 신흥동 삼광청주에 들렀다. 작은 굴뚝이 있는 일부 건물만 남았을 뿐, 높이 20여m의 큰 굴뚝과 주요 건물 등 102년 '마산 최후의 양조산업 유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삼광청주 공장 철저 전(좌)과 철거 후(우)./김구연 기자

"무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남아 있는 게 뭐가 있나요? 전망도 어두워요. 마산 주민들이 관심이 없는데 나아지겠나요. 더구나 이젠 중심지도 창원으로 넘어갔잖아요."

강렬한 중앙지향성, 지역 문화유산 홀대로

사실 이 대목에선 <경남도민일보>도 할 말이 없다. 지난 2009년 유장근 교수가 '마산역사 탐방대'를 꾸려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기 전까지 마산의 문화유산에 무심하긴 마찬가지였다. 보수·진보 가릴 것도 없다. 유 교수는 "마산·창원에 다양한 시민단체가 있는데 문화유산 보전을 위해 싸우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렇다면, 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유 교수는 이 지역 출신도 아닌 충남 부여 태생이다. 1982년 경남대 사학과 전임강사로 취업하며 정착해 꽤 오랜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어쨌든 마산의 소중함을 더 먼저 깨닫고 행동에 나선 사람은 이 낯선 이방인이었다.

"처음 마산에 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고색창연한 창신학교 건물, 100년이 넘은 문창교회 석조 건물 같은 건 근대 마산의 풍경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었어요. '이런 게 다 남아 있네?' 했죠. 그런데 어느 틈에 모두 사라져버렸어요. 그 누구도 보전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던 거죠. 외형적으로는 1960~1980년대 진행된 대규모 산업화, 개발붐 탓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람들 내면에 있는 강렬한 중앙지향성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지난해 9월 유장근 경남대 교수가 허정도 창원대 초빙교수 등과 함께 철거 전 삼광청주를 둘러보고 있다./김구연 기자

강렬한 중앙지향성. 이는 말 그대로 '주변부'에서 벗어나 '중심부'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뜻한다. 예나 지금이나 툭 하면 흘러나오는 '7대 도시 영광을 되찾자' 같은 구호는 마산 주민들의 이러한 정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히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은 사라지고 '남의 것'만 크게 보인다.

"이 곳에서 또 놀란 것 중 하나는 경남대와 마산 주민들의 관계였습니다. 왜 '마산고 나와서 경남대 가면 수치다'라는 말 있잖아요? 지역사회에 대한 경남대 쪽의 태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남대와 마산 사람들 서로서로 경멸하는 구조, 이 또한 중앙지향성과 관련이 있는 거죠. 가까이 있는 것, 함께 있는 것을 이렇게 무시하는데 지역 문화유산이 소중하게 보일 리 있겠습니까?"

새로운 것만 좋아하는 천박한 문화

이러한 분위기는 또 '식민지시대의 유산'이기도 하다는 게 유 교수의 진단이다. 과거 마산의 번화 기반이 된 조선시대 조창, 유정당 등이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데서 알 수 있듯이, 오래된 것, 지난 시대의 것, 새 시대에 걸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인식이 지역 엘리트를 비롯한 주민들 머릿속에 뿌리 깊이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도 정나미가 떨어질 법하다. 삼광청주 등 보물들이 눈앞에서 가루가 되는데도 대다수는 침묵하는 현실, 외치고 절규해봤자 행정당국 역시 먹통인 현실, '될 대로 되라' 확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일 것 같다.

유장근 경남대 교수./김구연 기자

유장근 교수는 그러나 여전히 멈출 생각이 없는 듯하다. 지난해 11월 허정도 창원대 초빙교수, 이종흡 경남대 박물관장 등과 함께 경남문화자원관리포럼을 결성해 좀 더 체계적인 문화유산 보전 방안 모색에 나선 것도 그렇고, 2009년부터 꾸준히 진행 중인 도시탐방대 활동도 어느덧 2년째에 접어들었다.

"애증 같은 게 생겼나 봐요. 되든 안 되든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신화에 빠지지 말자, 갑자기 팽창한 시대를 가장 이상적으로 보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지요. 박완수 창원시장이 1000억 원을 들여 산업사박물관을 짓겠다는데, 삼광청주 하나도 보전 못 하면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새로 짓는 것만 좋아하는데, 개발만이 멋진 도시를 만들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거죠. 한일합섬 공장과 터도 마찬가지에요. 일부를 남겨 산업박물관으로 쓰자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싹 밀어버렸죠. 얼마 전 한 지역 경제인이 사석에서 '일부라도 남겨 활용해야 했다'며 후회를 하더라고요. 다 사라진 뒤에야, 망한 뒤에야 반성을 하는 거죠. 슬픈 현실입니다."

지난 11월 19일 도시탐방대는 모처럼 마산·창원을 벗어나 대구시를 다녀왔다. 수백 년 된 마산의 골목을 어떻게 개조해 활용할지 그 대안적 모델을 대구에서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시당국과 문화계 관계자들이 보전에 앞장선 대구의 근대 풍경은 탐방대 일행이 풀이 죽을 만큼 상상 이상 훌륭했다. 대구시 중심부는 제일교회, 동산병원, 계산동 성당 등으로 대표되는 기독교문명, 약령시와 영남대로를 중심으로 전개된 전통문명, 그리고 이상화, 서상돈으로 상징되는 근대민족주의 문명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특히 이러한 문명은 도심지 한복판, 즉 예전의 경상감영과 읍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 유적지에 집중되어 유적을 연결하고, 경관을 서로 이어주며, 걷기에 편한 조건까지 갖추고 있었다.

유정당과 조선시대 포구 복원한다면

유장근 경남대 교수./김구연 기자

많은 문화유산이 사라지긴 했지만, 마산 역시 시대별 특징이 도시 공간에 잘 남아 있는 곳이라고 유 교수는 전한다. 창동 등 중심부는 1760년대 조선시대 도시구조가 1899년까지 이어진 곳이며, 개항기와 일본강점기는 신마산과 중앙마산을, 1960년대 후반부터 불어 닥친 산업화 흐름은 동마산을 각각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유장근 교수는 현 상황에서 마산을 '마산답게' 보전하고 복원하는 방안은 크게 두 방향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초기 근대화 상징이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어시장을 보물처럼 잘 가꾸는 건 일단 기본이다. 유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유정당 등을 복원해 조선시대 마산 포구를 되살리는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주장한다. 유정당은 지방에서 생산된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시설인 조창을 관할하던 건물로서, 현 창동 제일은행 4거리 일대에 1900년대 초까지 남아 있었다. 8동 53칸으로 구성된 조선시대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빛나는 건물이었다.

"창동·오동동을 살리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 회의적이에요. 매력이 없는데 살아날 방법이 있겠어요? 전 마산이 가진 역사적 자원을 과감히 드러내는 게 대안일 수 있다고 봅니다. 조선시대 항구 모습이 어땠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실체를 보기도 힘들잖아요. 마산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항구도시인 부산·인천·군산 등은 다 개항 이후 형성된 것이에요. 청계천도 다시 파내는데 마음만 먹으면 못하겠어요? 마산이 죽어가는 이유가 자꾸 바다로부터 멀어지고 내륙화하는 것입니다. 유정당과 포구를 복원해 볼거리, 휴식공간을 만들고 어시장 등을 기반으로 풍성한 먹을거리까지 즐길 수 있게 한다면 마산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유 교수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은퇴한 사람들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더는 이전과 같은 개발로는 발전할 여지가 없고, 개발을 한다 해도 사람이 몰려들거나 이득이 날 가능성이 없다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음식들을 보세요. 전주, 광주 등 전라도 음식이 최고라고들 하지만 해산물 음식에 관한 한 마산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저렇게 오래된 어시장이 있다는 건 그만큼 역사성과 노하우를 갖췄다는 이야기죠. 또한, 어떤 곳에 있어도 창동·오동동 등 중심부와 가까운 구조예요. 나무도 심고 길도 잘 만들면 편하게, 쾌적하게 걸어다니면서 많은 걸 즐길 수 있다고 봐요. 기후는 또 어떻고요. 마산에 와서 제일 반했던 게 기후였는데,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이런 도시가 드물어요. 마산은 왜 '해양음식 축제' 같은 걸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강원도에서는 산천어 하나 갖고도 요란하게 축제를 하는데 마산과는 상대가 안 되죠. 겨울에 좀 따뜻할 때 해양음식 축제를 열면 전국 곳곳에서 몰려들지 않겠어요?"

유장근 경남대 교수./김구연 기자

변방에서 역사를, 마산에서 동아시아를 보다

공주사범대를 나와 고려대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유장근 교수는 1982년 마산에 정착하기 전 마산에 딱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다. 1979년 어느 겨울날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 느낌을 유 교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마산이 겨울에도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따뜻한가, 혼자 훌쩍 기차를 탔죠. 삼랑진에서 기차를 갈아 타 마산으로 왔는데, 바람이 벌써 다르더라고요. 훈풍. 그때는 마산역이 지금 서성동 삼익아파트 자리에 있었어요. 역에 내려 가포까지 쭉 걸었는데, 진달래도 피어 있고 정말 얼마나 따뜻한지. 마산은 또 3.15 의거 등 정의의 도시라고 해서 인상이 좋았어요. 바다와 피 끓는 항거가 공존하는 '물과 불의 도시'랄까. 그때는 전혀 몰랐죠. 이곳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그가 마산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전공인 동아시아 역사 연구 방향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중국사를 연구하면서 중심부와 가장 먼 광동지역에 관심을 두게 됐는데, 마산 역시 '변방에서 보는 역사'를 탐구하기에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변 동료 교수들이 몇 년도 안 돼 하나 둘 서울로 다른 지역으로 떠나갈 때, 마산을 공부하고 느끼고 즐기며 보내온 시간이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지난 2004년에는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부모님을 마산으로 모셔와 함께 살기도 했다.

"지식이라는 건 사회적 공공성을 가져야 해요. 그런데 오직 자신의 영달, 돈과 권력을 얻는 데만 쓰려는 거 같아요. 전 마산 사회의 엘리트들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구도 그랬지만, 중국을 보면 지식인·경제인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공공 투자를 참 많이 해요. 복지시설, 학교, 도로 등을 짓는 데 기부를 하는 거죠. 오히려 영토가 크다 보니 자기 지역에 대한 애정이 더 강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한일합섬이, 창동이, 부림시장이 이렇게 쇠락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개발 위주 사고에 벗어나, 마산의 특성을 잘 살린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 엘리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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