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 중 70대 주민 사망…뒤늦은 보도에 주민 '섭섭함·분노'

[3보] = 보라마을 주민들은 천막 바로 옆에 모닥불을 피워두고 시신을 지키고 있었다. 일부 마을 주민들은 "결국 사람이 죽어야 언론에서 이제야 찾아온다"고 뒤늦은 보도매체의 관심에 섭섭함과 분노를 함께 나타냈다.

특히, 마을 주민들을 격앙시킨 것은 이 씨의 죽음을 두고 경찰이 들깨 말린 짚에다 불을 피우다 '안전 사고'로 몸에 불이붙었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힌 점이었다. 마을 주민이기도 한 김응록(70)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산외면 대책위원장은 "망자께서 스스로 기름을 끼얹고 건설 반대를 위해 이런 모진 일을 벌이셨는데, 무슨 안전 사고 따위를 입에 담느냐"며 경찰의 사건 조사 과정에 대해 상당히 격한 반응을 나타냈다.

16일 오후8시10분께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마을 주민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7일 새벽 마을회관 앞에 분신에 사용된 기름통이 놓여져 있다. /김구연 기자

마을 주민들이 시공사인 동양건설과 하도급 업체가 철탑 공사 현장에 공사를 하고자 가려는 것을 막아선 지는 지난해 10월 31일부터였다. 이 씨의 분신은 이런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 씨가 숨진 발단은 이날 오전 4시께 한전 소속 감독관·동양건설·하도급 업체 직원 10여 명과 용역업체 직원 50여 명이 마을 주민이 막아선 곳을 뚫고 들어와 공사를 강행하면서였다. 시추기와 포클레인으로 낮에 작업을 한 이들은 포클레인을 공사현장에 놓아두고 이날 오후 4시께 철수하려 했다. 주민들은 포클레인도 함께 나가지 않으면 마을을 나갈 수 없다고 막아섰다. 이날 숨진 이 씨도 이들이 철수하려는 길을 막고 나섰다.

이 씨는 오후 7시께 휘발유통을 들고 와 "우리가 얼마나 더 억울함을 당해야겠느냐. 저 차들 다 불 태우고 나도 죽겠다"며 기름통을 들고 오는 것을 주민들이 한두 차례 제지했다. 집으로 들어가시라는 주민들 얘기를 듣고 사라졌던 이 씨는 마을회관 앞에서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 오후 8시께 다시 대치하던 곳으로 왔다.

16일 오후8시10분께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마을 주민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7일 새벽 현장을 방문한 엄용수 밀양시장이 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돌아가고 있다. /김구연 기자

16일 오후8시10분께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마을 주민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7일 새벽 현장을 방문한 엄용수 밀양시장이 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돌아가고 있다. /김구연 기자

16일 오후8시10분께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마을 주민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7일 새벽 현장을 방문한 엄용수 밀양시장이 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돌아가고 있다. /김구연 기자

이곳에는 새벽녁 공사현장에 하도급 직원들이 오는 것을 막고자 보초를 설 때 몸을 녹이려고 장작나무와 불쏘시개로 쓰는 들깨 줄기 말린 짚단이 한 편에 있었다. 이 씨는 사고 당시 이 짚단을 깔고 앉아 있었고, 혼자 갑자기 불을 피우려 했다. 근처에 김응록 대책위원장이 잠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틈에 이 씨의 몸에는 불이 붙었다. 김 위원장과 경찰 등이 급히 불을 끄려고 점퍼로 덮었지만 끄지지 않았다. 이에 다른 경찰이 간이 소화기를 급히 찾아 불을 껐지만 이 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인 보라교에 모여 간이 천막에 이 씨의 시신을 모셔두고 분노를 좀처럼 누그려뜨리지 못하고 있다. 이 씨의 시신에는 이불만 덮여 있는 상태였다.

김 대책위원장은 이 씨가 숨지기 직전 불을 붙이는 듯 하더니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불이 잘 붙지 않느냐"는 말을 무심코 했는데, 이 말을 그냥 지나쳐버렸다며 가슴 아파 했다. 이 씨가 실제 목숨을 내던지려한 행위였는데, 순간적으로 그런 판단을 못한 데 대한 자책이었다.

또 다른 주민은 "피해 보상을 현실화하고자 관련 법 개정을 위한 제도 개선위원회를 하고 있는데, 왜 공사를 강행해 이런 암담한 사태를 발생하게 했는지 한전과 시공사가 너무도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1시 보라교 입구에서는 잠시 거친 말이 오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엄용수 밀양시장이 시청 직원들과 함께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격앙된 일부 주민은 "도장 찍어 주고(건립 승인 절차 인가해주고) 우리 이렇게 고생시킨 것도 모자라 사람까지 죽게 만들어 놓고 무슨 낯으로 이 곳을 찾아왔느냐"며 거친 발언을 내뱉었다. 엄 시장은 밀양시청 직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결국 고인에게 절을 하고 떠났다. 

16일 오후8시10분께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마을 주민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7일 새벽 주민들이 불을 피워놓고 마을입구에 모여 있다. /김구연 기자

16일 오후8시10분께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마을 주민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7일 새벽 마을 입구 분신현장에는 나무가지들만 뒹굴고 있다. /김구연 기자

16일 오후8시10분께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마을 주민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마을회관 앞 도로에 기름을 부은 흔적이 보이고 있다. /김구연 기자

[2보] = 16일 오후 8시께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을 하던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인근에서 이 마을 주민 이모(73) 씨가 기름을 몸에 뿌린 상태에서 불이 몸으로 붙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숨진 이 씨가 이날 자신의 집에서 휘발성 기름을 몸에 뿌린 상태로 농성장으로 와서 숨진 장소에서 잔가지로 불을 피우려다 몸에 불이 옮겨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초 분신의도은 있었지만 사고 당시 분신을 했는지 아니면 잔가지로 불을 피우던 중 몸에 불이 붙은 안전사고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견해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씨가 공사를 강행하려고 농성현장을 철거하려는 용역업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분신을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분신 여부 등 정확한 화재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한편, 16일 오후 11시 40분 현재 농성 현장에서는 주민과 용역업체 직원이 대치 중이다.

‎16일 오후8시10분께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송전탑 건설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마을 주민이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시신이 모셔져 있는 천막. /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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