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아라클럽' 펜션지기 천종욱·하태무 씨…단순 부유함이 아니라 '품격' 갖춰

새해를 하루 앞둔 날 남해군에서 품격 있는 노 부부를 만났다. 남해사람들은 이들 부부를 '천하부부'라 부른다. 천종욱(71), 하태무(65) 부부의 성씨를 붙여 읽으면 천하가 되는데 실제로도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다.

부부는 남해군에서 펜션을 운영한다. "펜션 이름을 '아라클럽'이라고 지어 사람들이 펜션인지 찻집인지 궁금해 하더라. 보통 펜션에 방 하나 더 놓아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좋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아 고집해서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 '더 블루'에는 누구나 와서 놀다 갈 수 있다. 찻값도 무료다. 대신 남해군의 고학생을 위해 조그만 정성을 보이면 된다. 부부는 1년 남짓한 기간에 200여만 원을 모금했고 틈틈이 남해군 향토장학재단에 기탁하고 있다.

부부는 각각 취미가 있다. 남편은 사진을 찍고 부인은 글을 짓는다. 둘의 작품은 책으로도 출판됐다. 하 씨는 글쓰기를 좋아해 <남해시대> 논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제1회 남해 유배문학상에서 '신선의 섬, 꽃밭에서 놀다'라는 작품으로 입선했다. 또 하 씨는 문예지 <문예한국>, <시조월드>를 통해 등단한 작가다.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학보사 편집장도 했었지요." 남편 천 씨는 사진 말고도 국화가꾸기를 좋아한다. 남해국화사랑회에서 활동하며 키운 국화는 남해 꽃길 가꾸기에 사용됐다.

천종욱(오른쪽) 하태무 부부가 더 블루 다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종금 기자

부부는 여행도 즐긴다. 크루즈 여행만 8번, 세계 100여 개 나라 이상을 다녔다. "여행을 하니 젊어지더라고요. 실크로드계의 석학 정수일 교수, 그리스 신화에 해박한 유재원 교수 등과 함께 공부도 겸하며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기 역시 책으로 출판됐으며 블로그(천하부부의 여행 그리고 삶, blog.chosun.com/cheonhabubu)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부부는 더 블루 카페를 예술의 전당처럼 활용하고 있다. 한번은 <남해시대> 사장의 소개로 이순신 장군 교향곡을 작사한 음악가 정창민 씨 가족이 방문했다. 이날 열린 즉석 연주회에서 하 씨는 수필을 읽었다. 또 한 번은 수녀 10여 명이 이들의 펜션에 묵으러 왔다. 식사 대접에 감동한 수녀들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불렀다. 이러한 감동들이 날마다 쌓여가면서 남해 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는 부부다.

부부는 교사 출신이다. 1969년 하 씨가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첫 부임한 의령초등학교에서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교사 시절도 화려하게 보냈다. 공동발표한 논문(초등학교 고학년 성교육 지도와 실제)은 당시 교육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저희 부부는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이 논문으로 교육부장관상을 받았고 지금도 국회도서관에서 논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길로 계속 갔다면 대한민국 성교육계의 시초가 됐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편 천 씨는 교사로는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판단해 교단을 떠났다. 시멘트 판매업에 손을 댔지만 쉽지 않았다. 친구의 배신에 빈털터리가 된 적도 있다.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던 하 씨도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교단을 떠났다. 이 대목을 이야기할 때 분위기가 잠시 숙연해졌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논술 과외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어요. 그때 고생을 생각하면 말로 다 못합니다." 듣고 있던 천 씨도 "이 사람이 1인 3역을 하며 도와줘서 이런 날이 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정직과 신뢰가 성공의 밑바탕이었습니다." 후일 부부는 1년에 100만 포대라는 판매고를 올리며 재기에 성공한다.

우리 사회 여러 분야가 불신으로 가득찬 지 오래다. 부유층에 대한 불신이 특히 심하다. 이것이 단순한 시샘으로만 비치지 않는 것은 이들의 도덕성과 교양 수준이 썩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하부부는 상식이 통했다. 품격 있는 부유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금전적 여유가 아닌 품격.

잔잔한 남해바다를 배경으로 선 부부는 그렇게 쪽빛 바닷물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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