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파워] 권수열 도리원 대표

삶은 부단히 선택을 강요한다. 그런데 그 선택을 하는 처지라는 게 항상 같지 않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있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도 있다. 그 선택이 낳는 결과는 최선일 수도 있지만 최악이 될 수도 있다. 또 가까스로 최악은 면하지만 따지고 보면 최선은 아니기에 '차선' 또는 '차악'이 되는 선택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제법 잘나가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가맹점이 여럿이고 거래처도 100곳이 넘는다. 게다가 가맹점과 상관없이 잘 풀리는 한식집도 덤처럼 하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연찮게 어느 날 우리 전통음식에 꽂힌다. 이거 하나 제대로 살려보려고 하니 지금껏 쌓아놓은 모든 것을 한 번에 쏟아 부어야 할 판이다. 당연히 미래는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세가 잘 들어오는 빌딩이 10채쯤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한옥이 멋져 보인다고 빌딩을 모조리 팔고 한옥을 짓겠다는 것이다. 얼핏 고민할 것조차 없는 이 질문이 10여 년 전 권수열(47·도리원 대표) 씨에게 던져진다. 그가 그 순간 빌딩을 선택했다면…. 최소한 현재 전통 장아찌 '대한명인'은 없다. 당연히 경남 창녕이 자랑하는 음식점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점 100집'이라는 이름이 빛나는 '도리원'은 없다.

권수열 도리원 대표./박일호 기자

◇꿈의 시작, 만두 가게 = 권수열 씨는 어렸을 때부터 테니스 선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키 때문에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테니스를 계속할 수 있는 학교로 진학하지 못했다. 일찍 군대를 갔다 왔고 그때까지도 가장 자신 있는 것은 테니스였다. 동호인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던 그에게 어느 날 선배가 만두 가게 운영을 권했다.

"마산 봉암동에서 우연찮게 만두 가게를 시작했는데, 그때가 22살이었네요.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외식업계 외길을 걸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도리원은 작은 만두 가게에서 시작됐다. 선수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운동으로 배운 마음가짐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강한 승부욕과 집중력, 그리고 성실함은 운동선수에게만 필요한 성공 조건은 아니었다. 권수열 씨는 8년 남짓 만두가게를 운영해 거둔 열매로 돼지고기 전문점을 열게 된다.

"외식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기반이 잡힌 시기였지요. 일이 되려고 했는지 큰 위기 없이 잘 풀리더라고요. 계속 사업을 키울 수 있었지요."

권수열 씨는 가맹점을 만들며 덩치를 키웠다. 6년 남짓 지나자 권수열 씨는 직영점 8개, 거래처 130여 곳을 보유하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창원 북면에 대나무 밥 전문점을 하나 더 열게 된다. 30대 사장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삶은 권수열 씨에게 만만찮은 질문을 하나 던진다.

◇전통음식에 눈을 뜨다 = "전통음식문화연구원 이상숙 회장께서 가게에 한 번 오셨어요. 그리고 그분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통음식에 대해 눈을 뜨게 됐지요."

우연이 관심을 만들었고, 관심은 점점 목표가 됐다. 전통음식문화연구원 사무총장 일까지 맡게 되면서 전국에 전통음식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만남이 잦아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는 게 늘어갈수록 권수열 씨 눈길은 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저 잘 나가는 음식점 대표가 아니었다. 전통음식을 지키고 널리 알리면서 성공할 수 있는 길. 그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권수열 도리원 대표./박일호 기자

"일단 모든 가게를 정리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자금으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영점이 8개나 됐고 거래처가 130여 곳이에요. 정리하기 어려운데, 마침 직원들이 다 인수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장사를 잘했다는 증거겠지요. 덕분에 차곡차곡 정리할 수 있었고 도리원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도리원이 문을 연다. 지금은 별관에 공장까지 붙어 있는 도리원이지만 당시는 기와집 형태인 본관 하나뿐이었다. 목표가 정해지자 아쉬운 게 보였다. 아쉬움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배우는 것이었다.

"먼저 전통음식을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전통음식문화연구원 일을 하면서 알게 된 훌륭한 스승이 있었지요. 전통음식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선생님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스승은 선재스님, 능인스님, 적문스님, 홍성스님, 대안스님이었다. 권수열 씨는 스님들에게 전통음식과 사찰음식을 배우며 내공을 쌓았다. 그리고 그 배움 속에서 얻은 장단점을 배우고 보완하며 새로운 맛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 번 시작한 배움은 더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낳았다.

인제대, 연세대, 대구 가톨릭대, 경남대 등을 돌며 외식 과정을 닥치는 대로 이수했다. 6~12개월 과정을 배우면서 얻은 이론과 기능 그리고 사람들이 고스란히 도리원 재산이 됐다.

권수열 도리원 대표./박일호 기자

◇삶의 전환점, 농림부 ‘한국신지식인농업인 장’ 선정 = 권수열 도리원 대표는 삶에서 가장 큰 전환점으로 ‘한국신지식인농업인 장’ 선정을 꼽았다. 이 역시 우연한 계기였는데, 권수열 씨 삶에는 이런 굵직한 우연이 제법 된다.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이 도리원에 왔었지요. 그리고 완전히 맛에 반했어요. 그러더니 결국 저를 신지식인으로 만들었지요. 가공부분 1호 신지식인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권수열 씨는 강연도 많이 다니게 된다. 전통음식이 좋아서 시작했던 일에 책임감까지 얹힌 셈이다. 그때부터 자존심만 내세울 수 없었다. 그 자존심이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이 돼야 했다. 권수열 씨는 자신을 더 다그쳤다. 그리고 그 노력에 대한 대가는 2009년 명인 선정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명인회에서 심사를 한다고 하기에 제가 어려서 사양했어요. 그런데 다음해 다시 명인 심사를 받게 됐지요. 그리고 대한명인 201호로 지정받았습니다."

한 분야에 한 명에게만 주는 이름이 '명인'이다. '장아찌 명인'이라는 이름은 권수열 씨가 존재하는 한 다른 사람에게 갈 수 없는 이름이다. 잘나가는 음식점 대표에서 다시 전통음식 바닥에서 시작한 권수열 씨가 10년도 되기 전에 이룬 성과이자 명성이었다.

"운동 선수 경력이 장점이 있어요. 승부욕이 강하고 끝을 보는 성격이지요. 그리고 한길만 파요. 만약 제가 예전 음식점을 포기하지 않고 이것저것 다 벌였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요. 스님들께 전통음식을 배울 때 궁중음식을 배울 기회도 있었는데 배우지 않았어요. 전통음식과 분야가 다르거든요. 다른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전통음식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 그럼에도 큰 위기가 없었던 지난 시간을 권수열 씨는 이렇게 돌이켰다.

권수열 도리원 대표./박일호 기자

◇도리원의 음식 그리고 목표= 130여 가지가 넘는 도리원 장아찌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보다 제조 과정이다. 소금에 절이기만 했던 장아찌를 발효음식으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그런 시도에 깔린 철학은 단순했다.

"음식이 곧 약입니다. 무슨 음식이든 몸속으로 들어가면 약이 돼야 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 주는 사람, 먹는 사람의 마음이 일치돼야 음식은 약이 되지요. 그래서 저는 음식을 만들 때는 혼을 담아야 하고 혼이 담긴 음식은 반드시 우리 몸에 약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음식은 우리 몸에 들어가면 독이 될 수도 있지요."

'전통음식을 지키고 널리 알리면서 성공할 수 있는 길'. 쉽지 않은 선택을 하면서 품었던 목표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들이 권수열 씨가 세운 새로운 목표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후배를 키워야지요. 전통음식을 배울 길이 사실 막막해요. 제가 배울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알고 있는 것은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수열 씨는 도리원 뒤쪽에 농장을 만들고 있다. 이르면 내년 정도 마무리될 듯하다. 이 농장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전통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이게 된다.

"제가 만든 장아찌가 후배들에게 표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식이라고 하면 김치보다 장아찌가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실제 수출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고요.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권수열 대표가 추천하는 도리원 장아찌 5선>

1. 미니 양파 장아찌 = 창녕이 양파 시배지다. 마늘 한쪽만 한 미니 양파를 재료로 3년 동안 연구해서 만들어낸 것인데 완전 창작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수출도 많이 하고 인기가 많다.

2. 매실 장아찌 = 매실 액기스를 뽑지 않고 그대로 장아찌를 만든다. 그래서 3~5년 숙성한다. 몸에 좋고 맛도 좋다.

3. 명이 장아찌 = 울릉도에 나는 특산품 명이로 만든 장아찌다. 전국에 도리원을 알리게 된 장아찌다. 좋은 고기 좀 판다고 하는 식당에서는 대부분 명이 장아찌를 내놓을 것이다.

4. 민들레 장아찌 = 말 그대로 약이다. 간에 좋지 않은 사람들이 상복하면 매우 좋다.

5. 방풍 장아찌 = 약재 이름이 방풍이다. 풍을 막는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좋은 약초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래서 음식을 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도리원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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