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평범하고 삼삼한 회사원들과 기자의 카페·커피 품평회

<등장인물 소개>

하세린(세린): 삼삼한 나이 회사원. 자칭 '하부지런'이라 말하지만 삶에 너무나 게으른 여자.
서민교(민교): 28세 회사원. 70억 지구인 가운데 사는 평범한 한국남자.
이동욱(동욱), 이서후(서후): 기자

세린, 동욱, 민교

<서론>

어느 날 세린이 말했다

-세린 어쩌면 우리가 가장 살기 좋은 때에 사는 건지도 몰라요.

-서후 응? 무슨 소리야?

-세린 그러니까 음…. 그러니까 문명도 적당히 발달해서 편리하고, 자연도 어느 정도 보존이 돼서 쾌적하잖아요. 앞으로는 이것보다 더 나빠질 거 같아.

-서후 디스토피아를 꿈꾸는구나.

-세린 그래서 이제는 자식을 낳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세상은 더럽고 범죄도 잦아지고.

-민교 와, 이기적이다.

-세린 나도 안 낳으면 되지!

-민교 어느 책에 보니까 인류라는 역사도 앞으로 300년인가 밖에 안 남았다던데.

-서후 인류가 지구를 너무 더럽게 썼어. 공룡이 한때 지구에 살다가 멸망했지만 그래도 4억 년은 넘게 살았거든? 근데 인류는 이제 만년 조금 넘었는데 지구 멸망이 어쩌고 하잖아. 정확하게 말해 지구 멸망이 아니라 인류 멸망이지.

-세린 그래도 바퀴벌레는 매일 마지막에 살아남지 않을까?

...

-세린 근데 오늘 날씨 참 좋다. 이렇게 좋은 날에 우리가 바퀴벌레가 살아남을지 아닐지 걱정이나 하고 있다!

좋은 날에 바퀴벌레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우리는 카페 탐험을 나서기로 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카페 탐험이면 커피가 주제인가요? 위치나 분위기나 기타 등등도 포함인가요?

솔직히 커피만으로 따지면 너무 전문적이 돼서, 좀 부담스러운데. 전체적인 분위기나 그런 게 중요한 듯.

전문가도 아닌데 맛 평가하긴 그렇지 않니? 그리고 대부분 맛집 기사도 맛 평가하는 건 아니잖아? 맛을 평가하는 거 말고 뭔가 조금 독특함을 표현하는 건 괜찮을 것 같아요.

재미를 찾는 거지. 재미. 가면 볼거리가 있고 커피도 그럭저럭 맛있고 그렇더라. 그래요, 수다 떨기 좋고 예쁘고 커피 맛도 좋고 사장님 친절하고 서빙남이 잘생긴 카페만 찾으면.”

여기는 고성 소담수목원카페 (with 서후 세린 민교)

소담수목원카페 인근 고성 경치 /이서후 기자

고성이다. 햇빛은 찬란하다. 창포에서 고성 가는 동진대교를 지나자마자 내리막길 끝에서 좌회전. 바닷가 도로를 따라 쭉 가다 보면 왼편으로 빨간 간판이 나타난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소담수목원 카페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고향은 우주 그 자체였습니다. 저 산 너머 다른 도시가 있다는 것을, 저 바다 건너 다른 섬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고된 유학 생활, 그리고 이어진 40여 년의 객지 생활. 나에겐 가난만을 준, 역경만을 준 고향이었지만, 내가 세상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잠시도 잊어 본 적 없는 나의 우주, 돌아갈 고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곳에서 고향을 위해 이루어내야 할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담 수목원은 나의 꿈이었고, 고향에 돌려주는 선물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고향에, 가족에게, 친지에게,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아들이 태어난 1978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휴일마다, 휴가 때마다, 비행기로 서울에서 진주로 내려와 나무를 가꿨고, 풀을 뽑았습니다. 20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 한 2000년 10월부터 조금씩 수목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소담수목원 홈페이지 www.sodam.org)

소담수목원카페로 들어서는 길. 검은 개 한 마리가 일행을 맞이(?)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소담수목원은 이렇게 그 자체가 이야기다. 마침 휴일이어선지 사장님의 잘 생긴 아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페퍼민트, 로즈메리, 허브과일차를 주문했다.

-서후 이 허브과일차는 몸에는 좋을지 모르나 맛이 거의 밍밍해.

-민교 과일인데 맛있겠죠.

-서후 맛이 달콤하지는 않아. 그래서 시럽을 넣지.

-민교 페퍼민트는 색깔이 제일 별로다. 색깔은 허브과일차 빨간색이 예쁘네.

-세린 음, 밍밍한데 괜찮아요. 당분이 없는 말린 과일을 넣은 것 같네.

-민교 맛있네! 쓴맛은 안 나서 좋다.

-서후 쓴맛이 나는 과일이 있나?

-세린 단감?

-서후, 민교 ......

-민교 노래 좋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나온다.

-세린 노래가 재즈풍이야.

-민교 아, 씁으라!

-세린 아이 촌스러! 좀 쓰네, 그래야지!

-민교 예전에 친구하고 스타벅스를 갔는데 아메리카노를 시켰거든요. 이동통신 카드로 사이즈 업그레이드가 되잖아요. 거의 사발에다 나오는 거야. 한약 먹는 거 같았어! 마시니까 또 엄청나게 쓴 거야! 설탕을 5개 넣었어요. 아직도 스타벅스에 가면 그 얘기해. 설탕 5봉지라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우리는 카페를 둘러본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다. 수목원이다 보니 자생식물이니 하는 책이 많다. 야외 테이블에서는 바다와 함께 동진대교가 한눈에 보인다. 올해 이곳에 레스토랑이 새로 생겼다. ‘봄’이란 이름이다.

소담수목원카페 내부 모습. /이서후 기자

“아부지 이름 정하셨어요? 니가 정해. 소담수목원도 니가 정했잖아. 이렇게 해서 또 네이밍을 맡게 됐습니다. 한 달 동안 무지 고민했는데, 불어로 할까, 스페인어로 할까, 지명으로 할까, 신화에서 따올까, 한 10여 가지 정도 네이밍했었는데 다 맘에 안 든다 하셔서. 여러분은 레스토랑 ‘봄’은 어떠신가요?” (소담수목원 홈페이지)

수목원은 그리 크지 않다. 둘러보다 보면 이런 곳에 예쁜 집 한 채 짓고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린 나도 돈이 있으면 아파트 말고 주택을 사고 싶다.

-민교 아파트가 편하긴 편하죠.

-세린 예전에는 아파트가 참 편하니까 아파트 살면 좋겠다고 생각 했는데, 아파트 값도 너무 많이 오르고, 좁은 땅덩어리 위에 수백 가구잖아. 한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거 보면 그냥 내 땅에 내 집 지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민교 내 땅에 내 집 짓는 돈이 더 들어요.

-세린 그러니까. 하하하. 아파트 값이 비싸다고만 생각했지.

-민교 땅 사는데 돈이 많이 들고, 집을 잘 지으려 해도 돈 들고.

-세린 교외가 시가지에 짓는 것보다는 낫겠지.

-민교 교외면 차도 있어야 하고, 돈 더 많이 들죠.

-세린 아니야 그래도 내 땅이 있는 게 좋아! 언제 이런 생각이 들었느냐면, 우리 아파트에서 앞쪽 아파트가 보인단 말이야. 뭐 TV 보는 사람도 있고 운동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는 안보이지만 나는 그 사람들 하는 일이 동시에 보여. 아 참 세상살이가 저렇구나, 저렇게 사각형 속에 갇혀 아옹다옹하고 사는구나 싶은 거지.

그럴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의 자유란,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의 자유다. 코스모스가 한창인 소담수목원 주차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틀 지워진 삶에 대해 생각한다.

소담수목원카페 외부 테라스 모습. /이서후 기자

장소 이동. 여기는 창원 토모 (with 서후 세린 동욱)

밤이다. 창원대 앞. 우영프라자 주변을 헤맨다. 분명히 이 근처 주택가에 있다고 했는데. 그러다 문득 유난히 밝고 따뜻한 빛이 보인다. 그 빛을 따라가니 역시나 토모(TOMO)다. 지난 8월 27일 문을 연 새 카페다.

“TOMO란 Totorono Mori의 준말이며, 창원 한일교류 카페로서 일본인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Japanese Cafe입니다.

맛있는 커피 및 음료와 함께 일본현지인들을 만나서 일본어 공부도 할 수 있으며 때론 세계각지의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글로벌 카페입니다. 또한, 문화와 언어의 교류뿐 아니라 따뜻한 만남과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토모 다음카페 cafe.daum.net/totoronomori)

‘Totorono Mori’란 ‘토토로의 숲’이란 뜻이다. 토토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커다랗고 귀여운 숲의 정령.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에 토토로 인형이 놓여 있다.

우리는 아메리카노, 차이라떼 그리고 ‘카라멜, 모카, 그린티, 민트초코 토모치노’란 긴 이름의 음료를 시킨다. 창원대 축제 기간이어선지 손님이 무척 많다.

카페 '토모' 입구./이서후 기자

(왁자왁자 왁자왁자)

-서후 여기 잡지가 전부 일본어다.

-세린 일본어 할 줄 알아요?

-서후 아니 그런데 일본 애니를 많이 봐서 자주 나오는 말은 알아.

-동욱 노래도 일본노래네요. 시부야 음악이네.

-서후 오, 일본 노래 좀 아네?

-동욱 조금이 아니라 대충 압니다.

-세린 여기 아메리카노, 부드러워요.

-서후 그래? 실내장식도, 조명도 그렇고 잔 색깔도 그렇고, 부드럽고 은근하니 좋다.

-동욱 (카라멜, 모카, 그린티, 민트초코 토모치노를 한 모금 마시고는) 제가 맛을 표현해 볼게요. 치약에 초콜릿 섞은 맛이네. 피스타치오란 비슷하네.

메뉴를 고르는 카페 탐방대원들. /이서후 기자

-세린 (빨대로 한 입 맛보며) 나쁘지 않아.

(왁자왁자 왁자왁자)

-세린 제가 우리 팀장님한테 안 좋은 버릇을 배웠는데, 원두를 날로 먹어요.

-서후 쓰잖아!

-동욱 안 볶은 상태에서요?

-세린 볶은 거를 가루나 알갱이 상태로 그냥. 그냥 알갱이를 먹어 봤는데 쌉쌀한 맛이 괜찮은 거예요. 처음에 알갱이를 먹다가 팀장님이 가루로 된 거를 사오더라고.

-서후 가루를 퍼먹어?

-동욱 그거 먹고 살짝 웃으면 진짜 재밌는데.

-서후 그건 마치 커피믹스를 물 없이 먹는 거잖아!

-동욱 아니죠. 질이 다르죠.

-세린 씹히는 맛이 있고요.

-동욱 옛날에 커피 원두 과자가 있었어요. 그건 진짜 맛있는데.

-세린 그거를 자꾸 먹으니까. 카페인 때문인가 가끔 가만있다가 보면 생각이 나요, 자꾸.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욱 카페인 중독일 수 있습니다.

-세린 그런가?

-서후 땡긴다며?

-세린 사실 나도 중독인가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데 그 씹는 느낌이 좋아요. 뭐랑 같을까, 찐쌀 먹어봤어요? 시장에 가면 팔아요. 그거를 먹으면 쌀이 딱딱하지 않고 입에 있으면 침이랑 섞어서 말랑말랑하게 해서 먹는 거죠.

(왁자왁자 왁자왁자)

손님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일본어 잡지를 뒤적거려 본다. 진짜 일본어를 좀 배워볼까.

“10월 주중 스터디 매일 진행합니다. 이번 주부터 주중 스터디 쉬는 날 없이 진행예정입니다. 월, 수, 금 아키코 선생님께서 스터디 진행 예정이며, 화, 목, 토 바바 선생님께서 스터디 진행 예정입니다. 주중 월~금 저녁 7시부터 8시30분까지이며 주말 토, 일 오후 1시30분~3시까지입니다. 그럼, 많은 참여 바라며 잼있게 열공하시기 바랍니다.” (토모 다음카페 cafe.daum.net/totoronomori)

(왁자왁자 왁자왁자)

   
 

-세린 여기 바깥이랑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서후 딴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아!

-동욱 저는 아주 맘에 들진 않은데요. 조금 어수선한 느낌.

-세린 나도 그런 거 느껴요.

-동욱 일본 카페라는데 일본어 적힌 거, 일본 책 있는 거, 여기도 추천 음료라고 있거든요. 여기서 일본의 깊은맛을 알 수 있다면. 이 물이 후지산에서 퍼온 눈이라든지. 후지산의 눈을 형상화했다든지. 그런 거 해줘야지.

-세린 근데 사진으로 보기에는 조용할 것 같았거든요.

-서후 사람들 피해서 찍다 보면 그런 느낌이 나겠지.

-세린 전체적으로 속닥속닥 하는 분위기는 아니네요.

-동욱 요즘 카페들이 대게 개방이 돼 있거든요. 여기도 그렇고 스타벅스나 카페 베네도 그렇거든요. 나는 이런 데서 커피 마시는 사람이야! 하는 것 같은 느낌.

-세린 저는 조명이나 의자, 테이블 색깔이 맘에 드네요. 근데 의자가 편하지는 않아.

(왁자왁자 왁자왁자)

카페 '토모'의 테라스. /이서후 기자

-서후 이 집 좌석을 참 다양하게 해 놨다. 2인석, 4인석, 안에 방도 있어.

-세린 만일 내가 카페를 하면 인도식 실내장식에 저렇게 좌식으로 하고 싶어. 조그만 방에다 낮은 테이블을 두고 말이야. 전에 그런 좌식 카페가 있다고 들었어요.

-동욱 이게 일본 카페면 맞은편에 중국 카페 열고, 그 옆에 한국 카페 열면 되겠네요. 그러면 완전 한·중·일 삼국지인데.

-서후, 세린 ......

카페를 나왔을 때는 밤 11시. 카페는 들어올 때 그대로 왁자하다. 맑은 가을밤은 제법 쌀쌀하다. 여기 외로운 영혼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안녕.

/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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