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보고서 살펴보니

창원, 거제 등 대규모 산업단지의 활성화로 경남도는 전국 3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달리 이야기하면 창원, 거제, 김해 등을 제외한 대다수 시·군에서는 여전히 1차 산업이 주 소득원이다.

김두관 도지사 역시 최근 도의회 시정연설에서 "1차 산업이 비록 우리 도 총 생산액의 4.4%에 불과하지만 절반의 시·군에서는 농림어업 부문의 생산액이 제조업보다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언급하면서 "농어업 등 1차 산업은 순전히 경제적 가치로만 재단할 수 없는 환경정책이자 국가안보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한미 FTA가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되면 '경남 농업'은 어느 정도의 타격을 받을까? 농업 생산액이 점차 감소하다가 10∼20년이 지나면 현재 규모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 경남의 농업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최근 국가의 자주권을 침해할 것으로 우려되는 각종 '추가' 독소조항이 큰 문젯거리로 부상하긴 했지만, 한미 FTA 협상이 사실상 종결된 2007년에 이미 국내 농업은 시한부 판명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행 즉시 생산액 136억 감소…15년동안 총 1조 1141억 줄어
농림어업 총생산의 50% 손실…쇠고기·돼지고기 타격 최대

지난 19일 저녁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저지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한미FTA 법안 처리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한미 FTA 체결 논란이 달아올랐던 지난 2007년 경상남도는 <한미 FTA 체결에 따른 경남 농어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 및 대책>이라는 용역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한미 FTA 발효를 염두에 두고 경남 농업의 피해 정도를 예견하는 한편, 정부와 경남도 차원의 지원책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한미 FTA 발효 후 각 산업 영역에서 발생할 피해 예측치가 제대로 공개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로는 경남도의 선제적인 대응이었던 셈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가 이행되자마자 경남 농산물 생산액은 136억 원이 감소한다. 이후 기하급수적 감소세를 보이다가 15년 차에 이르면 1129억 원이 줄어든다. 이를 합산하면 총 1조 1141억 원의 손실이 발생함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조사가 진행됐던 2007년 당시의 경남 농림어업 총생산이 2조 8000억 원이었던 사실을 견주어 보면 그 손실액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업종은 축산업으로, 쇠고기 3124억 원 감소, 돼지고기 1650억 원 감소세가 예상된다. 국내 생산액의 54.4%를 차지하는 단감 농가의 피해액.은 1252억 원에 이르며, 닭고기(↓304억 원), 사과(↓470억 원), 낙농(↓302억 원), 포도(↓213억 원), 배(↓168억 원), 수박(↓141억 원), 양파(↓129억 원) 등의 순으로 생산액 감소가 나타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이 보고서는 한미 FTA 이행 후 10년간 정부와 경남도 예산 2조 4041억 원이 '경남 농업'에 지원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치상으로만 따지면 피해액과 지원액이 서로 상쇄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지원책 상당수가 소위 '퇴출 농민'에 대한 소규모 지원에 머물러 있어 농업 체질 개선을 위한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이다. 경남도 농업정책과 관계자 역시 "여전히 융자보다는 보조가 많고 현대화 시설을 갖추고 농업 경쟁을 키우는 데는 역부족이다"라고 토로했다.

'농업 경쟁력 확보'라는 구호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전국 농민회도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한미 FTA 대응책으로 정부가 자신 있게 내놓고 있는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박민웅 전농 부경연맹 의장은 "엄청난 재원이 한미 FTA 피해를 보완하기 위해 투자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 추진되던 사업 예산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소위 글로벌 경쟁력을 추동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박 의장은 "식량 자급률이 26%인 상황에서 그나마 농업 규모가 반토막 나면 국내 농업은 붕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명목으로 국내 농업이 이윤만 추구하다 보면, 소규모 경작지는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고 심각한 환경 문제도 도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만약에 경남 농업이 붕괴했다고 가정해보자. 분명한 건 이 모든 책임을 한미 FTA에만 돌릴 수는 없다. 앞으로 한-중, 한-일, 한-호 FTA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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