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국회의장이 한미FTA 결단의 시간이 임박했다고 밝혀 국회가 또다시 아수라장이 될 처지에 놓였다. 사전 희석용인지 모르겠지만 일부 방송에서 과거 국회 난투극 장면을 방영하기 시작한 속내를 짐작해볼 때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 뻔해 보인다. 의장석 점거나 멱살잡이 시비를 좀 한 뒤에 청경이 끌어내면 여당은 상기된 얼굴로 잘 했다 할 것이고, 야당은 분통한 표정으로 비난을 쏟아낼 것이다.

상호 비방과 욕설이 난무한 다음에 잠시 냉랭한 기운이 돌다, 국민의 눈치 좀 보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렁이 담 넘을 게 눈에 선하다. 다시 한 번 국민은 신물 날 정도로 실의에 빠질 것이요, 무책임한 정쟁에 국민만 새우등 터져가며 통한의 눈물을 삼키게 생겼다.

돌이켜보면 한미FTA에 대한 찬반 논의에 이성과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장밋빛 환상만 늘어놓고 있고 반대하는 이들은 을사늑약이라며 선동하고 있다. 냉정하게 합리적 효율성을 따져보는 논리는 설 자리가 없고, 어느 편에 서는가만 남아 있다.

하지만, 국제협약이나 시장경제의 경쟁에 오로지 제로섬 논리로만 맞서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 협상은 기술이 필요한 분야요, 협상을 하는 데는 자기 쪽의 무장이 얼마나 되어 있는지를 따져가며 실익을 셈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결정적인 것은 협상의 장에 오르기까지 국가주권이나 국민 합의를 제대로 이끌어 내고 있는지가 관건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한미FTA 비준 처리과정은 제대로 대비하고 있다고 전혀 볼 수 없다. 오로지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으니 믿고 따르라는 것뿐이다.

설사 한미FTA가 필요악이라 이를 체결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행정시스템이나 민간기업의 조직체계에 우리 정부조직이나 산업조직이 맞설 수 있는지 꼼꼼히 검토하고 대비를 한 다음에 비준에 임해야 맞다. 대통령이 못한다면 국회나 지자체 단체장이라도 그 역할을 맡아 주어야 한다.

당장 반대입장을 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의 근거와 대안을 제시하는 게 더 중요하다. 김두관 지사나 박원순 시장이 앞장서 반대의지를 밝혔지만 그 이상 향후 대처방안까지 제시해줘야 신뢰받는 정치지도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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