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본질외면…여, 강행처리 시사에 민주·민노당 반대 고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둘러싼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FTA 발효 3개월 내 미국과 재협상' 제안을 민주당이 거부하면서 한나라당은 사실상 강행처리 절차에 돌입할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한나라당과 야권 대립각 여전 =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여야 합의로 본회의가 예정된 오는 24일까지 합의되지 않을 경우 단독으로 처리할 태세다. 홍준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에 대해 "우리는 이제 설득할 만큼 했고, 민주당의 요구를 100% 받아들인 상황에서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다"며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는 한미 FTA 문제를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강행처리할 경우 또다시 '날치기'라는 오명을 얻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도 작용한다.

17일 오후 국회 246호 회의실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홍준표(오른쪽 끝) 대표와 황우여(오른쪽 두 번째) 원내대표 등 최고위원들이 서로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나라당은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FTA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날 회의의 비공개 부분에 대해 김기현 대변인은 "오늘 오후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금년 들어 가장 중요한 의총"이라며 "한미 FTA 처리 방향에 관해 오늘 의원총회서 끝장토론을 본 다음, 그 후 지도부가 의논해서 당의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또 이날 한나라당의 '농어촌대책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 비공개 부분에 대해 "홍 대표가 '민주당이 한미 FTA를 반대하는 탓에 합의처리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한미 FTA가 처리되고 나면 그동안 한나라당과 정부가 제시했던 농업·수산업·축산업에 대한 피해보전 대책은 반드시 실행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민주당 등 야권은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등 한미 FTA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한미 FTA 저지를 위해 육탄전이라도 치를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민노당은 여전히 국회 외통위 회의장 앞을 막아선 채 감시를 계속 하고 있다. 민노당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 절대 다수가 한미 FTA를 지지'하고 있으며, 'FTA 반대 시위에 나선 사람들은 극소수 반미세력'이라고 말했다"며 "대통령이 FTA 반대 집회에 나선 국민들을 극소수 반미세력으로 낙인찍은 것은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의 내부 사정은 복잡하다. 이 대통령의 제안을 민주당이 받아들일 경우 한미 FTA 반대 여론이 높은 20~40대 젊은 유권자 등 야권 지지자들이 민주당을 외면할 수 있다는 압박에 대한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FTA 자체' =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 비준안 처리가 이뤄지면 3개월 내에 ISD에 대해 재협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처럼 한미 FTA 문제에서 'ISD라는 독소조항만 해결되면 괜찮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실상은 차이가 있다. ISD란 외국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법적·제도적 장치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이는 단순히 관세를 철폐하는 것을 넘어 국가의 규제 권한을 시장에 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서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한국은 재산권 행사에서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이 있고, 미국은 '재산권의 보호'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의 권력을 강화하는 한미 FTA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배경이 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시장의 기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한미 FTA라는 통로를 통해 미국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 FTA 처리 결과, 내년 총선·대선에 적잖은 영향 = 한미 FTA 비준 문제는 연말 정국은 물론 내년 4월 총선 이후 대선까지 직결되는 중요 사안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명박 정부와 집권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해 민심이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녹록지 않은 모양새다.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이 한미 FTA 강행처리를 위한 명분 쌓기의 교두보가 되면서 야당 쪽의 우려는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 이 대통령 국회 방문 이후 여야의 대치는 더욱 첨예해졌고,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등 지도부가 한미 FTA를 강행처리 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야당 입장에서 순순히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를 지켜볼 리 없다는 점은 올해 연말 국회가 진흙탕 싸움으로 얼룩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강행처리가 사실상 마무리된다면 이후 정국은 급속도로 냉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어지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맞물리면서 국회가 혼란에 빠질 경우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한미 FTA와 예산이라는 내부의 이중부담과 함께 내년도 총선과 대선에서 대중의 외면도 감수해야 할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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