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붉게 불타고 마음엔 시가 흐르고

깊어가는 단풍 색깔만큼이나 도내 문인들이 한 해 문학농사 수확을 풍성하게 해냈습니다. 개인에서 동인에 이르기까지 발붙이고 선 자리도, 꿈꾸는 문학세계도 제가끔이지만 이런 다양한 작품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이 가을, 문학의 숲에서 단풍만큼 화려하기도 하고 스산하기도 한 시어의 향연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김미정 제2시집 <흙을 훔치다> = 동화와 수필가로서도 활동하고, 사회봉사자로서 적극적으로 살고 있는 김미정 시인이 두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첫 시집 <그대 앞에 풀잎처럼>과 에세이집 <안개바람> 이후 15년 만의 나들이입니다. 김정자 시인은 "관조와 사유의 세계를 조용한 목소리로 편 그의 시는 얼핏 읽어 그 진정한 뜻을 놓치게 된다. 천천히 깊이, 그의 시들을 읽어냄으로써 마침내 그의 시의 참 정신을 이해하고, 시의 깊숙한 생명의 근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평했습니다.

특히 시집 제목이기도 한 '흙을 훔치다'라는 시에서 시인은 '가장 적합한 해답 / 오직 한 곳에 있었으니 / 언젠가 나도 네가 될 것이다 / 이윽고 보태질 것이다'라며 자연과 일상에서 느끼는 잔잔한 깨달음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어쩔 수 없다 / 사랑할 수밖에는 / 어쩔 수 없다 / 아파할 수밖에는 / 죽도록 잊을 수밖에는'('그리움 속에서는' 부분)이라고 강렬한 열정을 뿜어내기도 합니다.

143쪽, 책나라, 9000원.

◇객토문학 동인 제8집 <각하께서 이르기를> = '…… / 등록금이 비싸다고 하면 / 장학금 받으라 하시고 / 손님이 줄어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 하면 / 인터넷으로 물건 팔라 하시고 / …… /울 언니의 가슴 속에 20년이 지나도 / 비수처럼 꽂혀있는 / 가난의 하루를 펼쳐 보인다면 / 그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할까 / ……'(최상해 '각하께서 이르기를' 부분).

1990년 공장과 학교, 노동자와 학생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이 동인을 결성하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노동문학'을 부여잡고 씨름해온 '객토문학' 동인이 제8집 <각하께서 이르기를>을 내놨습니다. 문학 판 한 쪽에서는 '노동문학은 죽었다'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노동문학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하는, 이율배반적이기도 하고 일맥상통하기도 한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노동문학'을 실천해왔기에 여덟 번째 작품집이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들어보면 그동안 위기도 많았고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데 대해 손뼉 쳐 줄만 합니다.

이번 8집에는 문학적 지향이 비슷한 청주의 '엽서시 동인'들이 작품을 보탰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 환경 속에서 시를 통한 실천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지 견줘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119쪽, 갈무리, 7000원.

   
 

◇소나무 5길문학회 <소나무5길> 10호 = 창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에서 수학한 문학 지망생들로 구성된 '소나무5길 문학회'가 열 번째 작품집을 내놨습니다. 지난 2002년 결성된 소나무5길문학회는 지금까지 문학기행 열두 번, 격월간 작품집 제작, 동인지 열권 발간 등 왕성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지난 5일에는 출판기념회를 하며 시화전도 열었는데, 이달 말까지 창원시 진해구 이동에 있는 북카페 '마중'(동심냉면 맞은편, 545-8814)에 가면 시화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동인지에는 전문수·홍진기·김복근·정목일 작가의 초대작품과 함께 회원들의 시·소설·수필 60여 점을 담았습니다.

175쪽, 도서출판 경남, 8000원.

◇섬진시조문학회 <섬호정 맑은 바람 댓닢소리 정겨웁고> = 하동을 중심으로 시조 숲을 가꿔가는 '섬진시조문학회'의 스물여섯 번째 작품집입니다. 섬진시조문학회는 1983년 창립했으며, 1985년 동인문집 <섬진시조> 창간호를 냈습니다. 해마다 한 권씩 내왔으니 인생으로 치자면 한창 힘이 넘쳐흐르는 청년기라 하겠습니다. 이번 호에는 하동의 대표적 정자인 섬호정에 착안해 '누(樓)·정(亭)·대(臺)에 올라'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우리나라 3대 누는 평양 대동강 가에 있는 부벽루, 진주 남강 가 촉석루, 밀양 밀양강 가의 영남루입니다. 우리 조선(祖先)은 그밖에도 산 좋고 물 좋은 전국 방방곡곡에 누각이나 정자를 짓고 음풍농월 해왔으니 그 숫자가 부지기수입니다. 무오사화의 사초가 된 함양의 학사루, 남원 춘향과 이도령이 조우했던 광한루, 삼척의 죽서루 같은 누각이 있습니다. 낙화암 삼천궁녀 전설이 서린 백화정이나 관동팔경 중 하나인 월송정, 조선 초기 하륜과 조준이 소일했다는 하조대나 경포대, 해운대, 몰운대도 있습니다.

섬진시조시인들은 선조가 서당이나 향교에서 글을 읽다 머리 식힐 때나 바쁜 농사일에도 망중한의 기분으로 시를 읊거나 담소하고자 올랐던 누·정·대에 올라 어떤 시적 감흥을 느꼈을까요?

135쪽, 유승인쇄출판, 7000원.

◇시조집 <화중련> 12호 = 통도사 서운암 성파 큰스님이 정재를 내어 사회에 회향하는 시조전문지 <화중련(火中蓮)>은 일 년에 봄·가을 두 번 나오는 반연간지로 12호를 냈습니다. 이번호에는 '정예시인 특집'으로 이솔희 시조시인이 원로·중진·신진 시조시인인 조동화·김삼환·임채성의 작품을 분석했습니다.

제28회 성파시조문학상도 발표했는데 본상은 김소해·리영성 시인에게 돌아갔으며 김철학 시인이 특별상을 받습니다.

207쪽, 도서출판경남,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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