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 상이군경회 박성진 창원지회장

"국기를 달아야 하는 강제적 조항이 없습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세월이 갈수록 퇴색되어 안타깝습니다."

지난 9일 한글날 아침, 창원시보훈회관에서 박성진(73·사진) 상이군경회 창원지회장을 만났다.

박 지회장은 태극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라 이미 수차례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한 정보는 부족해 그를 다시 찾았다.

   
 

그는 첫 인사를 나누자마자 사무실 입구와 내부 벽면에 부착된 대형 태극기를 소개했다.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다. 박 지회장이 평소 도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국경일 태극기 게양 사진과 관련 메모 자료는 책장을 다 채우고도 남는다. 이 자료에는 아파트 단지 별 태극기 게양 가구 수까지 적혀있다. 또 노태우, 김영삼 씨 등 전직 대통령께 보낸 친필 편지와 각 기관 단체장에게 보냈던 정책건의문도 내보였다. 박 지회장은 올해로 14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창원시에서 보훈을 담당하는 신병권 계장은 "국경일에 빠짐없이 전화를 해 태극기 관련 제보를 해 주는 굉장한 분"이라며 박 지회장을 소개했다.

그의 태극기 사랑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는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해 수많은 난민들이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헤매었지만 어느 나라도 그들을 받아들이는 나라가 없었다"며 "그래서 나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사랑을 실천하는데 국경일 날 국기게양만큼 적합한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에도 많은 관공서에서 현충일에는 조기를 게양해야 하지만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면서 아쉬워했다.

이후 그는 1960년대 군생활 시절을 추억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군 생활 도중 대간첩작전에 투입돼 3일 동안 첩첩산중을 헤맸다고 한다. 동료 전우가 개울에 넘어져 그대로 잠이 드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외에도 그는 군복무 당시 엿장수와 술집여자로 위장한 남파간첩이 육군 장교들을 꼬임에 넘어가게 해 군사기밀을 빼 가는 것을 적발해 체포했던 기억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박 지회장은 1997년 지회장에 취임한 이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고취시키고자 관내 초등학교 및 유치원생들을 충혼탑에 초청해 교육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선배 세대에게 존중과 감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물질문명 시대지만 누구 때문에 내가 풍요롭게 사느냐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소위 보수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친일, 민간인 학살 등의 문제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귀를 막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갈등을 해소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또 그는 지난 2001년 본보에도 보도된 바 있고 현재 창원시 충혼탑 제일 첫머리에 이름이 올라 있는 박진경 대령에 대한 이야기를 일화로 소개했다. "박 대령은 제주 4·3사건의 총책임자로 국방경비대 시절 연대장이었습니다. 4·3사건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고 박 대령 위패를 충혼탑에서 빼려고도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당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끝마치며 그가 삶을 통해 경험한 것들은 보수와 진보라는 잣대를 넘어서 있는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리들의 할아버지고 또 아버지이다. 귀를 열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쟁 체험 세대를 그리고 왜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돌이켜봤다. 그들이 '수꼴'이라 불리고 소통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도 전쟁의 트라우마를 굴레로 안고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손자세대들이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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