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그녀가 원하는 세상을 그려보자

나는 김진숙이 누군지 모른다.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 여길 뿐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인간적 면모와 크레인에 목숨을 걸어야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을 공감하게 됐다.

이 책은 김진숙이 노동운동을 해 오며 조우했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시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따뜻한 가슴을 지녔다. 가족들과 동지들에게 가졌던 부채의식이 그러했고 이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에게 보냈던 추모사도 그렇다.

그녀는 10대 때부터 가족의 따듯한 품을 떠나 사회와 맞닥뜨렸다. 시내버스안내양, 화장품 외판원, 신문배달, 해운대 해수욕장 아이스크림 장사 등을 전전하다가 19817월 한진중공업(대한조선공사)에 취업했다. 이때 그녀의 나이 21살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소의 유일한 여자 용접공이 됐다.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것은 한진중공업 입사와 함께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야학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그리고 그 경이로운 만남을 "처음으로 자신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지리산 계곡처럼 꺼이꺼이 울었다"라고 기록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세상은 노동자부터 생채기를 냈다. 김진숙은 그러한 세상에 맞서 싸웠다. 취업한 지 만 5년째인 19867월 한진중공업(대한조선공사)은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김진숙을 해고했다. 당시만 해도 어용노조의 횡포가 극심할 때였다. 어용노조가 건넨 돈 봉투 앞에서 자신을 지지해주던 순박한 아저씨들의 눈빛이 생각나 유혹을 뿌리쳤다. 그 이유로 회사에서 찍히고 말았다. 해고된 그해 첫 투쟁은 도시락거부운동이었다. 이게 웬걸. 그녀는 이 투쟁에서 이겼다. 투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락 혹은 한 화장실 쓰기 운동에서도 투쟁의 불씨는 지펴졌다. 이후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투쟁이 계속된다. 그러나 권력과 결탁한 자본은 잔인하다는 표현도 과분할 정도로 추악하기도 했다. 몸도 못 가눌 정도로 강한 바람에 작업을 해야 했던 노동자의 사망은 부주의로 말미암은 사망이 되고, 죽은 노동자의 시신은 탈취당해 권력을 유지키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아직도 세상은 열사를 요구한다. 2002년 한진중공업 사측은 일방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650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이 과정에서 김주익 노조간부가 85호 크레인에서 목을 맸다. 곧이어 이를 안타까워하던 곽재규 열사도 크레인 근처의 도크에서 투신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김진숙은 85호 크레인에서 절규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신정윤 기자.

그녀가 바라는 세상이 과연 올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그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말을 빌리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인간이 돈에 왕따 당하는 이 지리멸렬의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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