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다룬 청소년 소설

가장 좋은 방법은 경남에 추모공원을 겸한 유해안치시설을 조성해 그곳에 모시는 것이다. 같은 국가범죄에 의한 불법학살이지만 특별법이 먼저 제정된 거창과 함양·산청학살사건의 경우 이미 위령공원이 조성돼 있다. 그러나 그 외의 민간인학살사건 희생자 유해는 이처럼 발굴이 되어도 갈 곳이 없는 처지다. 심지어 지난 2004년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된 163구의 유해도 안치할 곳이 없어 우선 경남대 예술관 밑 공터의 컨테이너 속 플라스틱 상자에 보관돼 있는 실정이다.

<경남도민일보> 2009년 7월 13일자 17면

국민보도연맹. 줄여서 '보도연맹' 또는 '보련'.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따로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1949년 6월부터 정부에서 조직했던 단체로 전국적으로 가입자 수는 약 30만 명에 이릅니다.

점차 모집 인원 늘리기로 변질되어 실제 대다수의 가입자가 평범한 농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듬해 전쟁이 터지자, 경찰과 퇴각하던 한국군이 이들을 집단학살했습니다.

경남에서도 산청 외공리를 비롯해 마산, 진주, 거제 등등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민간인이 재판 절차도 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조사 결과 최소 5000명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청소년 소설로 탄생한 <잠들지 못하는 뼈>는 이렇게 학살당한 보도연맹원들의 유해 발굴과 한국전쟁 때 아버지와 오빠가 학살당하고 숨죽인 채 살아왔던 남주의 기억을 양 축으로 해서 전개됩니다.

1950년 6월도 지나갈 즈음, 충북 청원의 한 시골마을에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보도연맹은 마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오빠를 찾으러 청주로 갔습니다. 그사이 마을에 보도연맹 소집이 떨어지고 남자들은 농기구를 하나씩 둘러메고 면 소재지로 향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는 70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창고에 갇히게 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소집이 있기 전에 미리 몸을 피한 보도연맹원도 있었지만 대신에 그 가족들이 고초를 겪게 됩니다. 창고에 갇힌 지 엿새가 지나고, 야산에서 총성이 울리고, 보도연맹원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마을에 전해집니다.

남주는 무논에서 일하다 바짓가랑이를 걷은 채 면 소재지로 향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보도연맹 소집이라는 말을 전한 것은 남주 자신이었습니다. 창고에 갇히기 전 꼭 아버지 피하시게 해야 한다며 선생님이 몰래 일러 주기까지 했는데 그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죄스럽습니다.

지난 2009년 7월 공개된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민간인학살 유해발굴현장에서 참석자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유해를 보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청주에서 영화배우를 보고서 크면 배우가 될 거라고 했던 여동생 향주는 미군 비행기 폭격으로 청각을 잃고 결국 스무 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집 안의 자랑이었던 중학생 오빠는 전쟁이 끝났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열심히 하루를 살았던 남주 가족의 비극과 슬픔은 지켜보는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 남주만큼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태오'입니다. 처음에 태오는 새 기타를 사기 위해 유해 발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났을 때 보도연맹을 학살한 헌병이 양심 고백을 한다기에 동료들과 기자회견장을 찾아갔는데 그 헌병이 바로 자신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진로를 바꿔 체질인류학을 공부하고, 계속해서 발굴작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삼 년 기한의 보도연맹 유해발굴사업은 끝이 나고 진실화해위도 해체를 합니다. 아직 수십만 피해자가 땅속에 묻혀 있고, 이미 발굴된 유해도 갈 곳이 없어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있는데 말입니다.

태오는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홀로 전국의 학살 장소를 찾아 다니며 아직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는 뼈들을 위해 기타 연주를 들려 줍니다. 태오만의 위령 공연을 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현실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해자의 참회와 반성, 그리고 진정한 화해의 길까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자는 '태오'라는 인물을 통해 유해발굴사업의 안타까운 현주소를 자세히 알 수 있고, 유족들의 슬픔을 보다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화해의 길도 함께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8쪽, 미세기,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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