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40) 오얏나무와 자두 그리고 풍개

-풍개와 자두가 오얏

늘 이맘 때면 먹는 풍개가 자두고 자두가 바로 오얏(李)이란다. 풍개가 오얏이고 자두라는 사실을 나는 왜 이렇게 늦게 알았을까? 대한제국의 국기 태극기는 대한민국까지 계승됐는데 대한제국의 꽃 오얏꽃은 왜 대한민국에서 무궁화로 바뀌었을까? 오얏은 500년 조선 왕실의 상징 나무이고 꽃이다. 대한제국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식 꽃이었는데 왜 이렇게 자료도 찾기 어려운 꽃이 돼 버렸을까? 오얏을 죽은 고어라고 하고 풍개는 사투리라서 틀린 말이란다. 조선 500년 역사와 대한제국의 공식 꽃이 왜 죽은 말이 됐을까? 한자로 자도라고 쓰고 읽을 때는 자두라고 읽어야 옳다고 한다. 오얏나무는 한글 맞춤법처럼 보면 볼수록 참 어렵다.

수확을 앞둔 자두. /정대수

-자도가 맞을까 자두가 맞을까?

자두는 한자로 자도(紫桃)라고 쓴다. 보라색 자(紫)자에 복숭아 도(桃)자를 써서 자줏빛이 도는 복숭아를 닮은 과일이란 뜻이다. 분명히 한자로 쓸 때는 자도가 맞다. 그러나 발음하기 쉽게 자도에서 자두로 바뀐다. 호도가 호두, 앵도가 앵두, 자도가 자두가 되었다. 표준어는 자두가 분명히 맞다. 오얏은 죽은 말이라 하고 풍개는 사투리라 틀린 말이라 한다. 오얏은 사람들이 쓰지 않아 죽은 말(死語)이 된 옛말(古語)이고 풍개는 경상도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라고 하면 될 텐데 틀린 말이라고 하면 참 기분이 나쁘다. 오얏 이(李)씨는 모두 자두 이씨가 맞는가? 토종 오얏과 서양 개량종 자두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는가?

-국어학자-식물학자 누구의 잘못?

오얏도 풍개도 다 죽여 버리고 자두만 살려두려는 국어학자는 아마 군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양성이 존중되지 못하는 우리말 맞춤법은 볼수록 멀미가 난다. 사과와 능금은 다른 종이라고 식물학자들이 정리를 해서 사과도 능금도 모두 표준어이지만 오얏과 자두는 식물학자가 명확하게 정리를 해 주지 않아 아직 같은 나무라고 한다. 진짜 같은 나무면 다행이지만 토종과 개량종에 대한 연구가 안 되어 생긴 일이라면 참 불행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자두는 1920년대 들어온 서양 개량종 자두나무다. 연세 지긋하신 어른들이 말하는 풍개와 자두의 차이는 사과와 능금, 감나무와 고욤의 차이처럼 서로 다른 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얏 이(李)씨는 자두나무 이씨?

이상희 선생의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와 이선 교수의 <우리와 함께 살아 온 나무와 꽃> 책을 꺼내 오얏과 자두나무 관련 자료를 읽어 본다.

궁중유물전시관(지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97년에 펴낸 <오얏꽃 황실생활유물>이란 책을 도서관에 가서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연결된 원문정보를 돈을 내고 프린트를 해서 읽어본다. 강판권 교수와 박상진 교수의 책까지 한 번 훑어본다. 대한제국 오얏꽃 문양을 연구한 석사 논문과 박사논문까지 찾아 읽어본다. 국내 모든 논문과 단행본까지 검색해 보고 블로그와 카페까지 훑어본다.

-오얏·자두, 같은 나무일까 아니면...

가장 정리가 잘 된 민경탁 선생의 '오얏론'과 국립국어원의 의견까지 읽어 보니 결론은 자도와 오얏이 식물학적으로 다르다고 식물학에서 공인해 주어야 오얏과 자두 모두 표준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학도의 석사 박사 논문도 있고 국어학계의 자료도 보이는데 식물학계의 자료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풍개·오얏·추리·고야·깨끼·꽤…

오얏 이(李)에 자두까지는 알겠는데 사투리로 들어가면 자두 사투리가 모두 35개나 된단다. 자두를 무어라 부르는지 들으면 그 사람의 고향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자두가 이렇게 사투리가 많은 것은 옛날 옛적부터 마을마다 오얏나무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투리를 찾아보면서 끊임없이 드는 의문은 표준어를 정하는 학자는 중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참 아쉽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우리말이 많은데 한자를 꼭 써야 교양있는 중산층인가?

-오얏꽃의 역사

토종 오얏 나무는 2000년 전 백제 온조왕 때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백제 궁남지에 오얏꽃이 나온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도 자두나무 이야기가 있다.

신라말기 도선국사의 도선비기에 목자득국설(木子得國說)로 한양에 오얏나무를 심었다가 반드시 모두 베어 버렸다고 한다.

조선이 들어서면서 오얏나무(李氏)는 나라의 근본이 된다. 조선시대에 오면 자두나무는 궁궐이나 사대부 집 후원에 심는 조경 과실수가 된다.

동네마다 양반집에 심은 오얏나무는 춘향전에 가장 잘 표현된다. 이도령 어머니가 오얏꽃을 받는 태몽을 꾸고 이(李)도령을 낳게 된다. 이몽룡은 태몽이 자두나무꽃이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당시로서는 가장 좋은 태몽이었을 것이다.

오얏꽃을 자두나무꽃(李花)이 아니라 배꽃 이화(梨花)로 생각하기 쉽다. 이화여대에 이화가 배꽃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화 하면 배꽃을 생각하지 자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얏꽃을 공식 꽃으로 쓴 대한제국 고종 황제.

-대한제국의 꽃 오얏꽃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1897년 대한제국을 만들면서 나라의 공식 국기와 문장(마스코트)이 필요하게 되었다.

오얏꽃이 훈장과 군복 동전까지 모든 황실 재산에는 오얏꽃이 새겨진다. 도자기에서 우표까지 오얏은 짧지만 굵은 나라의 주인꽃이 되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오얏꽃 문양이 새겨진 독립문.

훗날 후손들이 나라를 되찾지만 나라꽃은 무궁화가 되고 오얏은 표준어도 아닌 죽은 말(死語)과 고어(古語)가 되어 틀린 말이 되는 치욕을 맛본다. 그 치욕도 잠시 이제는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잊혀 가고 있다.

/정대수(함안중앙초등학교 교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