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경 함안 법수중 2

하늘이 조금 끄느름한 것을 빼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체육시간이었다. 체육선생님께서 뜬금없이 우리에게 같은 속도로 운동장을 뛰라고 하셨다. 나는 잠깐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우리가 같은 속도로 뛰어갈 거라고 생각하셨나?' 결과가 뻔히 보이는 그 지시가 왠지 참 씁쓸했다.

언젠가부터 아니,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반에게 '우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겨우 일곱 명밖에 없어도 말이다. 사람들은 가끔 확신에 찬 말투로 "너희들은 일곱 명밖에 없으니까 서로에 대해 뼛속까지 알고 패가 나누어지지도 않겠네." 말한다. 적어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여섯 명의 친구들과 나 사이에는 이상한 기운이 흐른다. 그 기운이 경계선이라 해도 좋고 거리감이라 해도 좋고, 어색함이라 해도 좋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시골이라도 학생 수가 100명은 넘었다. 그런데 법수중학교는 전교생이 서른 명도 안 되는 매우 아담한 학교였다. 입학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설렘이 느껴졌었다. 낯선 곳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두근거리게 한 것은 바로 새로 만날 친구들이었다. 법수중학교에는 법수면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오기 때문에 군북면에서 학교를 다닌 나와는 서로 초면인 셈이다. 성격이 내성적인 나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부담이 컸지만 한번 부딪혀 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1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수줍게 인사를 했다. 교실에는 모두 여섯 명이 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반은 모두 일곱 명. 늘 활기찬 웃음을 머금은 수지, 아라, 나리. 뭐든지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희은이와 김효열, 조용한 성경이. 나는 우리 일곱 명 모두가 조화롭게 어울려 함께 노는 상상을 했다. 법수중학교를 선택한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내 기대는 힘없는 촛불처럼 훅 꺼져버렸다. 항상 외로움과 쓸쓸함의 연속이었다. 그 아이들의 집합에 내가 끼어든 느낌이 시도때도 없이 들었다. 그들은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했고,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나를 굴러온 돌이라고 나 스스로 정의했다. 그래도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관심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새로운 친구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라고 나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순간, 난 후회했다. 내 선택을. 친구들이 다 싫어졌다.

그 후부터 나는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막말도 하고, 살갑게 대하지도 않고, 인사도 잘 받아주지 않았다. 내 속에서 어떤 것이 날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만큼은 가식적이 되기 싫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마다 '오늘부터라도 다가가야겠다' 다짐도 했다. 마음먹은 대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난 그대로였다. 1년이 지난 지금, 내 태도는 완전히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와 그들은 많은 것을 공유한 것처럼 보이나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더 멀어진 것 같다.

같이 뛰어보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멀리 떨어져 운동장을 돌았다. 늘 붙어다니는 아라, 수지, 나리를 기준으로 10미터쯤 앞에는 솔직하고 담백한 희은이와 유일한 남학생 김효열이, 뒤에는 나와 말수가 적은 성경이가 걷는다. 그 거리가 우리들의 지금을 표현한다. 나만 없었으면 모두 같이 웃으면서 운동장을 돌았을 텐데. 괜히 우리의 세 토막이 내 탓인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쓰리다.

일곱 명이 전부이지만 우리들은 정말 많이 다르다. 우리들의 속에 있는 다양한 나와 넘쳐나는 개성들. 사람들은 수많은 개성들 속에서 자신과 맞는 사람과의 관계를 추구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너는 왜 따로 다니느냐고 물어보신다. 일곱 명뿐인데 친하게 지내면 좋지 않으냐고.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회는 따로따로 살아갈 수 없다. '함께'가 진리다.

나는 우리 세 토막이 의아했다. 처음에 내가 기대했던 우리의 그림과는 윤곽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들로 인해 무엇이든지 '함께'에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상에는 수지, 아라, 나리처럼 활발한 사람도 있는 반면, 나와 성경이처럼 조용한 사람도 있다. 또 희은이와 김효열처럼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서로 많이 다른 사람들을 억지로 묶으면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은커녕 서로에게 아픔만 줄 수 있다.

우리들의 10미터쯤 떨어진 이 거리가 마음의 거리가 아니라 자신의 색깔, 자신만의 개성에 대한 삶의 태도를 배우고 있는 듯 싶다. 서로의 개성을 인정하며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도 조화로운 우리를 만들지 않을까? 우리가 조금 더 마음이 성장했을 때 우리는 서로의 빛깔을 내고 다른 사람의 빛깔도 존중하며 조화로운 사람이 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친구들에게, 나에게, 우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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