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in] 오카리나 만드는 홍대일 씨

흙이 사람의 숨을 만나 소리를 낸다. 귓전을 긁은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공간은 곧 음률을 만든다. 음률을 감지한 사람의 준비된 숨이 다시 흙을 만난다. 그렇게 오카리나가 연주되자 소지로의 용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1평 남짓한 홍대일(41) 씨의 남루한 작업실에서 오카리나 연주의 거장 소지로의 <춤추는 용>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썩 탁월한 연주라고는 할 수 없지만, 또박또박 음을 짚어가는 그의 손길이 어린애처럼 정직했다. 그렇게 불편한 연주는 아니었다. 직접 듣는 오카리나 연주는 생소했기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만큼의 수준은 됐다.

2005년 찰흙으로 첫 도전, 7~8개 중 1개 성공

"잘 부시네요." "정식 연주가는 아니니까 감안해서 들어주세요." "그래도 워낙 훌륭한 곡이라 기분좋게 들었습니다." "그럴 겁니다. 곡이 좋으니까…. 하하."

'흙피리'라고도 불리는 '도자기 오카리나'를 만드는 홍 씨의 작업장은 앞서도 말했듯이 마산회원구 교방동 자택의 작은방 한 칸이 전부다. 방은 오카리나를 만들 때 필요한 석고 틀과 각종 도구들, 완성이 덜 된 수십 개의 작품들로 어지럽다. 대화는 그곳에서 간헐적인 그의 연주와 함께 계속됐다.

가수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연주한 뒤 "이게 랭글리(둥근 형태) 오카리나인데요. 보기에도 다른 랭글리에 비해 구멍이 많죠? 제가 고안해서 만든 겁니다. 운지 구멍이 9개나 돼 두 옥타브를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죠." 설명이 끝나자 곧바로 동요 '퐁당퐁당'의 연주가 이어졌다. 그는 말을 주고받는 내내 '고향의 봄' '나비야' '개나리' 등의 동요 연주들을 중간중간 양념 삼아 끼워넣었다. 근데 왜 이렇게 동요를 많이 연주하는 거지? 그건 홍 씨의 직업이랑 관련이 있다. 초등학교를 돌며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전문강사가 본업인 홍 씨는 오카리나를 자신의 수업에 곧잘 써 먹는다고 했다. 직접 들려주기도하고, 상으로 활용하기도 한단다. 수업효과는 당연 만점이다. "아이들의 수업참여도가 꽤 높아져요. 상으로 아이들에게 나눠준 오카리나가 어림잡아 100개는 넘을걸요. 아이들 정서를 위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화학약품 하나 없는 순수 자연의 악기니까요."

   
 
홍대일 씨와 오카리나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다. 처음 오카리나를 만난 것은 2005년 말께다. "창원 용지호수 근처에서 대나무 피리를 샀어요. 소리가 좋기에 직접 만들어 봤지요. 소리가 나더군요. '그럼 오카리나에 도전해보자' 해서 찰흙으로 처음 만들어봤어요. 물론 당연히 실패했지요. 7~8개를 만들었는데 소리 나는 건 고작 1개뿐이었거든요." 그때부터 홍 씨의 지난한 집착의 고행이 시작됐다. 연구와 제작은 되풀이됐고, 그럴수록 그의 욕심도 늘었다. '소리만 나면 돼'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멜로디, 음색, 음역, 모양의 영역까지 번져나갔다. 변변한 직장(이라고 해봐야 과외를 하며 버는 몇 푼이 전부였다)도 없이 몇 년을 오직 오카리나에 매달렸다. 홍 씨도 인정했다. "그때는 폐인이었습니다. 오카리나 폐인."

그가 걸어온 '오카리나 길'은 상당히 외로웠다. 학원을 다닌 적도, 명인에게 사사 받은 적도 없다. 오직 인터넷과 책이 유일한 스승이었다. 오카리나를 만들기위해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운 그였다. "수천 개를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고요. 보기에는 단순해도 상당히 예민한 악기거든요."

본업 초교 영어강사…수업시간 활용 효과 만점

말이 나온 김에 오카리나에 대해 물었다. "도자기 오카리나를 연주용으로 만드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래서 이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죠. 하지만, 어렵습니다. 도자기를 오래한 사람도 금방 포기하는걸 여러 번 봤어요. 흙을 다루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거든요. 구멍 크기에 따라 음이 달라져요. 특히 초벌구이 후에는 구멍이 수축하니 그것까지 고려해야 해요. 저도 상품으로 판매한 지는 1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홍대일 씨가 판매하는 오카리나는 '리프'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리프(leaf), 나뭇잎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모든 오카리나에는 나뭇잎 문양이 있다. "사업자 등록도 했습니다. 호응이 꽤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팔지 않아요. 학교 일 때문에. 작업하는 것들은 모두 아이들 선물용이에요. 그래도 언젠가는 또 나만의 악기를 만들어야겠지요."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아니, 영원히 식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도 일과 후나 주말, 오직 악기 만들기에만 몰두하는 그다. 오카리나에 전부를 건 그에게 뻔한 답이 보이는 질문을 했다. 꿈이 있냐고. "좀 더 나은 리프 오카리나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이 이 악기도 똑같습니다. 내가 만든 오카리나에서는 내가 바라는 나만의 소리가 나도록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기술에 혼을 더하고 싶다고나 할까요. 아마 평생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하하."

이야기를 마친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악기를 입으로 끌어올렸다. 눈을 감은 그가 운지한 손가락 하나를 떼며 숨을 불어넣자 소지로의 또 다른 곡, <대황하>가 그와 나를 휘감고 돌았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푸른 강줄기가 생겨나더니 잔잔한 수면을 덮은 남풍과 함께 나뭇잎 하나가 유유히 흐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